소설
2011.07.28 05:33

취미는 수능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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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해서 레이드를 끝내고 크리스마스 분위기 낸답시고 셔츠를 입고 거리를 나서 평소에 혼자 찾지 않던 카페에서 라떼를 마시려 카운터에 다가갈 때, 하늘에선 눈이 내렸다.


기분이 팍 상한 나는 주문을 에스프레소 원액으로 바꾸고 그 쓰디쓴 물을 마신 채 거리를 걸었다.


하늘에서 눈이 온다.


어릴 땐 그렇게 좋았는데 저 눈이 싫어진다. 그 때 내 마음 같다. 2년 전 처음 그 애를 창가에서 보았을 때 두근거리던 마음이 녹고 녹아 질척해지고 그 질척함이 주변의 탐욕과 몸을 섞고 한없이 정신 사납게 날뛰다가 다시 때가 되니 사라지는 것과 같다.


조용히 걷던 내게 보이는 것은 노천 점집이었다.


판타지에서 나오는 점쟁이들의 그것처럼 고깔을 세워둔 듯한 뾰족한 지붕의 원통형 천막을 열고 들어가니 무속인들이 점을 보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나는 이런 저런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난 언제까지 살아요.


우리 부모님은?


이 나라는 통일 될까요?


옆 자리엔 커플이 있었다.


커플은 궁합을 봤고 나는 내 미래를 점쳤다.


커플이 계산할 때 2만원을 냈다. 그제서야 아차하는 심정으로 나는 얼마냐고 물었다.


만원이란다.


다행히 그정도 금액은 있기에 나는 본전을 뽑기로 하고 계속 물었다.


결국 세 커플을 처리할 시간을 나 혼자 썼다. 남 6만원 벌 때 내 담당은 1만원을 번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었다.


나와 그녀는 인연이 이제 없냐고 말이다.


인연이 아니기에 헤어졌다고 했다.


그제서야 나는 그것이 단지 미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쉽게 끝날 리 없다고, 희미하게 유대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 속은 이미 끝난 사실을 인정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아무튼 그 해의 크리스마스도 보내고 새해 보신각 종 치는 것을 구경하러도 갔다.


소감을 말해보자면 그냥 추웠다. 그리고 그 날도 어김없이 시위대는 시위를 했고 우린 종치는 것과 동시에 시위대와 전의경의 싸움을 구경하게 되었다.


재밌었다.


한참을 보던 우리는 막차를 놓칠 것 같은 불안감에 서둘러 지하철을 탔고 집까지 다섯 정거장 앞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당히 민증을 내고 술을 마셨다. 민증 검사하면 오히려 고마워하는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다. 참고로 난 어려보여서 아직도 민증 검사 한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고1 때의 친구를 붙잡고 내 오랜 연인에 대해 털어 놓았다.


헤어지고 나서, 그것도 술을 퍼먹고 나서야 그 애가 보고 싶을까.


그저 술주정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무신경하게 졸업식을 기다렸다.


몇주 뒤 졸업식. 사진을 찍고 식장인 체육관으로 가는데 그녀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언젠가부터 전교생이 정장을 입고 졸업식을 했는데 그녀의 옷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진한 화장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주 어색했다.


내가 아는 그 애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사진 찍자는 말도 거절한 채 지나쳤다.


졸업식이 끝나고 각자 집에서 휴식을 취한 뒤 술을 퍼먹으러 다시 나왔다.


누구는 무슨 대학 갔다, 누구는 취직한단다. 이런 저런 얘기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들 자기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사는구나.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뭐 해먹고 살지?


그 때의 나는 꿈도 흥미도 취미도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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