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대리의 야근 - 8
픽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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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됬을까.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스스로 모순된 감정을 느끼며 보대리는 문을 열었다. 식은땀이 흐르며 목젖이 한번 크게 들썩인다.
보대리는 긴장하고 있다.
현재 시간 9시 30분. 모두 야근으로 지쳐 간단한 야식과 함께 친목을 도모하러 요 앞 편의점에 간 사이, 보대리는 금단의 구역에 숨어 들었다.
보대리가 스며든 어둡고도 세련된 공간, 그곳을 여는 문에는 세글자가 새겨져 있다.
사장실.
보대리의 한 손에는 과일촌 포도쥬스 100%와 박주임이 정성스레 닦아둔 머그잔이 있다.
검지 손가락을 머그잔의 손잡이에 끼우고 다른 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쥬스의 뚜껑 부분을 집은 채, 창 밖의 네온사인들을 보며 보대리는 당당히 섰다.
영화의 한 장면이 이 순간 그의 눈 앞에 펼쳐진다. 지금 이순간 이곳은 서울의 한 구역이 아닌 저 먼 아메리카 대륙의 라스베가스다.
창문 앞에 서 있는 남자도 보대리가 아니다. 이순간 보대리는 라스베가스에 별장을 소유한 동부 아메리카의 명문 부호다.
"토미-"
보대리는, 아니 이제 유럽의 대 부호 'Bans' 씨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어두컴컴한 구석에서 올백머리에 나비 넥타이를 맨 중년이 걸어 나온다.
"따라."
그리고 Bans 씨의 귓가에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 김과장을 닮았다.
"예- 주인님."
꼬록 거리는 소리와 함께 머그잔에, 아니 이젠 굽은 잔에 얇은 목, 우아한 받침대를 가진 와인잔에 신의 물방울이 담긴다.
Bans 씨는 말없이 한모금 들이킨 후 탁 소리를 내며 사장실 탁자에 잔을 올렸다.
"아름다운 밤이지. 그렇지?"
Bans 씨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보대리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오늘 밤엔 저 카지노로 가봐야겠어. 듣자하니 Hollywood의 유명 배우가 단골로 찾는 곳이라던데."
"주인님이 가시기엔 너무 수준이 낮은 곳이 아닐지......"
"자네, 그 곳에 가보지도 않고 가치를 매기지 말게. 나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가치는 있는거야. 암...... 그렇고 말고."
늘 자신넘치던 Bans 씨의 입가에 쓴 미소가 흐르며 말의 끝이 흐트러졌다.
"자네 설마 늘 그런식으로 일해 온건가?"
"죄, 죄송합니다."
고개 숙이는 중년의 남자의 뒷통수는 영락없이 김과장을 닮았다.
한참을 말없이 Bans 씨는 머그잔, 아니 와인잔을 들이켰다.
사막에서 한참을 헤메다 발견한 오아시스에서 퍼낸 성수같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달콤한 음료였다.
Bans 씨가 잔을 들었다 놓는 소리만이 텅빈 사무실에 가득했다.
"그러고보니 자네는 늘 오만했어. 내 밑에서 일하는게 그리 대단한 일인줄 아나?"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하다는 말로 되는게 아니네. 그런식으로 매사에 남을 무시하면......"
"......"
"아닐세."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고개를 숙인 후 드는 중년 남자의 얼굴은 김과장과 거의 같았다.
"조심해주게.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정말 크게 화날지도 모르니까."
"예. 주인님."
"아 참, 그러고보니 그건은 어떻게 됬나?"
"서부의 j 가의 따님과의 혼담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이름이 pure 라고 하였나. 풀 네임 pure. j. 순수한 j라......"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pure. j. 씨의 현재 애인, Sed라는 친구로 인해 pure 님께서 마음을 정할 수 없는 듯 합니다."
"Sed 라는 친구는 뭐하는 친구인가."
"지하철에서 안전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취미는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보는 것이라고...... 그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런가. 본인이 싫다면 놓아줘야지. 어쩌겠나."
Bans 씨는 쿨한 척 와인을 마무리하고 웃었지만 씁쓸했다.
"이만 물러나보게."
"예."
Bans 씨는 가죽 등받이 의자를 꺼냈다. 그리고 몸을 깊숙이 묻고 조용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두 다리를 꼬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팔짱을 끼었다.
"후우...... 인간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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