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013.08.26 18:14

The Bitch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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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가 뜨기 무섭게 쏟아진 비에 옷이 쫄딱 다 젖었다. 퇴근길은 언제나 고단하다. 자다가 출근해서 중간에 자다가 퇴근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집에 들어오면 텅빈 방에 퀴퀴한 곰팡이 냄새만이 나를 반긴다. 이 자취방도 2달 뒤면 방을 빼줘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옷을 벗어 던진 후 폐기 샌드위치를 뜯어 먹으며 컴퓨터를 켰다. 심지어 컴퓨터마저도 오늘은 부팅이 느리다. 머릿 속이 혼란스럽다. 안수정의 이름을 봐서일까?

 

하지만 그건 내가 아는 안수정이 아닐 것이다.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 그러니까 내가 갓 제대할 때 쯤 나는 얼마나 그녀를 찾아다녔던가. 88년생의 안수정은 한두명이 아니었고 그 중에 셀카를 메인에 올려둔 애는 거의 없었다. 아마 그 안수정은 그 안수정들 중 하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져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혹시 그 여자가 안수정이라면.

 

내 국민학교 2학년을 불태웠던 그녀라면......

 

이러거나 말거나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언제나처럼 나는 토렌트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야동,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내 하드에는 수백의 영상이 저장되어 있고 일이 없는 주말이면 나는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 그 영상들만 반복해서 보았다.

 

영화 속의 그들은 멋지고 애니메이션 속의 세상은 밝고 따뜻했다. 난 그들의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되고 때론 그들 자신이 되었다.

 

"나나미 상, 오마에노 코에와 혼또......"

 

"There is no more conversation."

 

그러다가 영상만 보는게 질리면 역시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게임을 실행하고 어릴 적의 지옥같던 기억을 떠올리며 눈 앞의 적을 도살하곤 한다.

 

폐기 샌드위치를 세 개 째 해치울 때 쯤 애니메이션 한 편이 끝났다. 갑자기 몰려온 피로감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어떤 긴 꿈을 꾸었는데 어떤 꿈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유 모를 그리움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9살 이전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텅 빈 방에 놓인 깁슨 레스폴을 꺼내든 나는 그 얇은 현을 하나 둘 퉁겨 보았다.

 

티틱 거리는 소리와 함께 음이 울렸지만 도저히 음악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음률이었다. 제대한 직후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비를 모아 산 나의 첫 기타이자 케이온의 유이가 쓰는 그 기타, 바로 깁슨 레스폴이었다.

 

중고를 - 것도 넥이 다 휘어져 사용하기도 힘든 그 기타를- 무려 180만원에 팔아제낀 사기꾼을 생각하면 아직도 혈압이 오르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 조선족은 타인의 명의를 도용했고 상습범이었는지 휴대폰은 대포폰이었고 거래 역시 현금 직거래로 했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를 해놓긴 했지만 중고딩 나라에선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에 나는 그저 속으로 울분을 삭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이 기타를 사고도 나는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이런 식으로 기타를 퉁기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이나마 덜 끔찍하게 비치길 바랄 뿐이다.

 

기타를 한참동안 만지작 대다가 왠지 모를 끌림에 고개를 들었다 책꽂이 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앨범이 꽂혀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시꺼먼 눈 앞이 2007년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2007년 초,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대개 한 해의 시작은 봄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겨울이 옳다. 누가 1, 2월을 봄이라고 한다고.

 

당연히한 해의 시작은 겨울이다. 200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떡볶이 코트의 시대였는데, 21세기에 들어서며 노스페이스라는 등산복 브랜드의 패딩 점퍼가 거리를 점거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요놈 조놈 요년 조년 할 것 없이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연놈들 뿐이었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자세한 사항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말한 적이 없지만 당시 나는 서울 이모의 집에 하숙 생활을 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이모에게 나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만 보탰을 뿐이다.

 

이모는 "너를 먹이는데에도 돈이 부족하다." 며 한 달 용돈을 1만 5천원으로 제한했고 2006년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나의 공식적인 수입은 한 달 15,000원, 연봉 180,000원이었다.

 

물론 이 땐 이미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 돈으로도 저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을 했지만 그 적은 금액으로는 내 또래와 같은 수준의 문화생활을 누릴 수 없었다.

 

2003년, 중학교 3학년 때 반지의 제왕의 최종편인 왕의 귀환이 나왔다. 물론 못 봤다.

 

2005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첫 편인 배트맨 비긴즈가 나왔다. 물론 못 봤다.

 

영화만 못 봤으면 말도 안한다. 군대 가기 직전까지 나는 아메리카노와 라떼가 어떤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문화적 지식이 낮았다.

 

물론 지금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식대로 가끔 유리병에 든 커피를 마시기에 아메리카노가 좀 쓴거고 라떼가 달달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딱히 그 이상 아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2007년 2월 경,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발렌타인 데이에 그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제 와 이런 말을 하면 믿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내게도 친구는 있었다는 사실이다. 것도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쭉 지내온 소중했고 유일했던 친구였다.

 

왜 과거형이냐고 묻는다면 지금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실수고 내가 잘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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