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여행을 다녀와서는 그녀와 학원을 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반쯤은 그녀를 보기 위해 한달 몇십만원을 날
린 것이다. 그만큼 나는 그녀에게 미쳐 있었고 후레자식이었
다.
학원에서도 그녀는 늘 빛났다. 단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
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은 새벽 1시쯤이었는데 그녀와 그녀의 친
구 J,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함께 버스를 타고 오곤 했
다.
가끔 고1 때 친구 A가 찾아와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며
음흉한 웃음을 뿌리기도 했고 L이 내 뒷조사를 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행히 우리의 밀회는 잘 이루어졌다.
기말 고사가 다가오자 그녀는 더욱더 공부에 박차를 가했고
나는 공부에 별 생각이 없었기에 수업을 듣고 마는 수준에서
끝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이 때까진 나도 공부를 잘했었다. 중학
교 3학년부터 공부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아무리 망쳐
도 3등급 이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대부분 1등급
혹은 2등급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모의고사만 그랬다. 내신은 아니다.
어쨌든 그녀는 그런 나를 무척 부러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물론 지금은 정 반대의 상황이지만 말이다.
노력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녀에게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며 와우를 시작했다.
친구에게 가방을 받고 열심히 사냥하다, 그녀가 전화오면 스
피커를 끄고 공부 중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병신이었다. 나도 안다.
그녀는 이번에는 독서실에 가지 않겠다며 야자를 했고, 나는
야자를 하고 그녀와 함께 걸었다.
그녀는 내 얘기에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
는 대화의 연속이었지만 그녀도 나도 당시엔 뭐가 그리 즐거
웠는지 모르겠다.
집에 돌아온 나는 나의 유치함에 헛 구역질을 해댔고 그러면
서도 그녀와의 문자에 또 유치한 장난을 걸어댔다.
당시 내 친구 M(현재 예비 한의사 님)이 그 애를 좋아했는데
당시 그런 우리 모습을 보며 무척 부러워했다고 실토했다.
M은 그 애를 좋아했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좋아했을지도 모
른다. 솔직히 내겐 삼할 정도의 성욕이 있었지만, M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M은 공부만 아는 아이였다
.
친구도 많고 운동도 잘하는 M이지만 공부만 알기에 여자의
묘한 마음을 컨트롤할 줄 몰랐고 때문에 M은 그녀와 아무 것
도 못한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K는 달랐다. K는 성욕이 대부분이었다. 본심은 어땠는
지 모르지만, 우리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K는 "아 그년 먹고
싶다." 이런 식으로 항상 대화했다. 거기다 이 여자 저 여자
안 가리고 스킨십과 통화를 해댔다.
내가 K에게 그 애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면 아마 그런 말
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개 이런 일은 친구에게 말
하면 될 일도 안 되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언젠가부
터 여자애들 사이에 K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그 소문은 결국 반 전체로 퍼져 나갔다.
L이 활동한 것은 그 때 였다. 살다보면 지 앞가림도 못하면
서 남 연애사에 극진한 관심을 쏟아 넣는 사람을 찾을 수 있
는데 L이 딱 그 꼴이었다.
얼마 전 U라는 같은 반 여자애에게 차인 이후로 분노가 극에
달한 그는 나와 K에게 극딜을 했다.
쉽게 말하면 반 내 최고의 인기를 가졌고 교내 2번째로 인기
많은 그녀로 인한 어그로 획득이었다.
K의 경우 소문 때문이고 나의 경우엔 우리 둘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때문이었을 것이다.
L은 어느날엔가 그녀를 찾아가 헛소리를 해댔고 그녀는 울먹
이며 내게 와 불만을 토로했다. L과는 1학년 때부터 친구였
지만 은근히 짜증나는 구석도 있었고 또 그런 놈이 그녀를
귀찮게 했다는 것이 화가 났다. 나는 L에게 찾아가 말을 해
주었다.
중딩 때 남 연애사에 끼어서 설레발 치다가 좆된 놈의 케이
스를 말이다.(사실 나다.)
그 후 잠시 시들하던 L은 소문을 확장해 누가 누굴 또 좋아
한다, 둘이 벌써 사귄다. 이런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다 나와
K의 협공으로 U 이야기가 퍼뜨려지려하자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L외에도 많은 이들이 우리를 딜링
하기 시작했다.
K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뻤다. 왠지 이런 식의 어그로는 나와
그녀 사이의 분위기가 그만큼 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
기 때문이다.
반면 그녀는 아이들의 놀림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
다.
친구 N과 반 여자애 O가 사귀기 시작하자 그녀는 내게 사랑
이란 뭘까 자기에게도 사랑이 찾아오긴할까 등의 말을 해댔
다.
나는 그녀를 떠보기 위해 "K가 널 좋아한다던데." 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 "그냥 소문일 뿐" 이라고 답했
다.
침통한 그녀의 표정은 귀여웠지만 왠지 내 마음이 쓰라렸다.
소문은 점점 더 퍼지고 왠지 K에게 그녀를 빼앗길 것 같다는
뭣같은 예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된다. 나는 그녀의 스케줄을 다시 파악했다. 그리
고 가능한한 많은 시간을 그녀와 마주쳤다.
그녀는 항상 내게 말했다. 자신은 K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
고.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정을 억눌렀다.
나는 병신이었다. 인정한다.
소문이 퍼지자 K는 정말로 그녀에게 대시를 해볼까했다. 거
기서 나는 또 말을 하지 못했다.
언제나 여자보단 친구가 먼저인 것처럼 말하고, "여자란 존
재하지 않는다" 같은 헛소리를 해대던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상관 없는 일이지만 당시 내 이상한 자존심은 그
러했다.
어느 날엔가 K와 그녀가 함께 교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집이
내 집보다 K의 집과 더 가까워서, 마주쳤을 것이라고 자위했
다. 하지만 마음은 쓰라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집에
갈 때는 나와 함께 간다는 것이다. 또 그 때마다 그녀는 K에
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K도 같이 만나서 오는 것일 뿐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는
데 그 놈 말은 믿을 수가 없었다.
가끔 나는 일찍 일어나 운동이란 핑계로 빙둘러 학교를 갔는
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 때마다 그녀, 혹은 K가 혼자 있었다
.
그냥 쿨하게 고백했으면 될 일을 그 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
다. 그만큼 나는 병신이었다.
고백이라는 것을 생각 안 한 것도 아니다. 자기 전에는 근처
공원에 촛불을 꽂고 밤에 그녀를 불러 내 반지를 끼워주는
시뮬레이션도 돌려 보았다.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좋아한다, 사랑한다의 첫 음절도 내뱉
을 수 없었다.
같은 반 여자애들한테 무언가 얻어 먹으면 장난스럽게 "난
널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런 소리를 잘도 해대면서 그녀에게
는 그저 "고마워." 이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술을 먹고 그 기운으로 다가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수학여행에서의 참극과 그녀와의 약속 때문에 그럴 수도 없
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나와 그녀의 분위기를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내가 너무 답답했던 모양인지 K 얘기를 꺼낸다고 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K에게 감정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늘
속을 앓았다.
어느 날은 꿈을 꿨는데 그녀와의 추억이 하나 둘 나타났다.
처음 만난 날 눈 부시던 그녀의 모습이, 같은 엠피쓰리를 쓰
며 친해지던 날 내게 이어폰 한 쪽을 건네던 그녀의 모습이,
방송 사고로 내 신청곡이 안 나오자 울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 시험 망쳤다고 울고 불던 모습이, 생일 축하 편지를 받고
싶다며 떼쓰던 모습이, 써주니 고마워하던 모습이, 읽고 나
서 울먹이며 전화 온 날 내가 상상한 모습이, 내게 답장을
건네며 수줍어하던 모습이, 체육대회 때 내게 기대며 "넌 내
편이지"를 속삭이던 모습이, 함께 수학여행에서 만들 추억을
말하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수학여행에서 삐친 모습이, 또
화를 풀며 활짝 웃던 모습이, 그리고 매일 함께 갔던 매점과
같이 걷던 길에서 넘어질 뻔하고 신호등을 못 건너던 어리숙
한 모습이 떠올랐다.
"아 씨발."
나는 자다가 깨어 얼굴을 감쌌다.
잠에서 깨 처음 떠올리는 사람도 그녀였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채팅을 걸어왔다.
그녀는 그 채팅에서 사랑이 뭔가에 대한 몹시 심오한 질문을
해왔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마음에도 없는 현실적인
답안을 내놓았다.
-사랑은 돈이야.
=돈?
-그래. 돈. 돈 없으면 사랑도 없어.
=정말? 정말 그럴까?
-그래. 너는 그럼 거지를 사랑할 수 있어?
=당연하지.
-그렇다면 할 말이 없다.
=돈 같은건 아무 것도 아냐.
내가 3년만 어렸어도 저 소리에 동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나는 달라졌다. 나는 그녀에게 돈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 주입시켜주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 때 내 교육아
닌 교육이 지금 그녀를 보슬아치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녀와 나는 매일 밤 대화를 나누었다. 소소한 학교 얘기도
있었지만 심오한 내용도 있었다.
그녀는 주로 사랑에 대해 논했고 나는 현실적 방안을 말했다
.
가끔 그녀가 국제 정세같은 어려운 것을 물으면 나는 디씨인
사이드에서 본 병림픽에서 괜찮은 내용을 추려 설명해 주었
다.
그녀와의 대화는 당시 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지
만 한편으로는 쓰린 기억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사랑한다는 말을 꺼낼 용기가 없
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치를 보면 그녀도 날 좋아하는 듯 했다. 하지만 단
순히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또 며칠이 지나고 교내에서 봉사활동을 갔다. 그녀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불참했는데 그로 인해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는 그녀를 소재로 삼아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의 평가는 귀엽다였다. 그리고 나도 그건 인정했다.
몇몇 아이들이 그녀의 내숭에 대해 뭐라고 했지만 그런 것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내숭 때문에 더 귀여웠으니까.
그녀가 언제쯤 오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K는
그다지 그녀를 기다리지 않는 듯 했다.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다른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며 웃어댔
다.
화가 났다.
저런 놈에게 그녀를 뺏길까봐 속앓이를 했단 말인가?
절대 뺏기지 않는다.
그녀의 스케줄을 파악해 매일밤 만나기 시작한 것도 몇주가
흘렀다.
그녀가 날 좋아한 것은 분명했지만 여자의 마음이란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이라 나는 쉽게 그녀의 요구에 응해줄 수 없었
다.
여자 아이들은 K와 그녀를 밀어 주었고 남자 아이들은 "나도
그 애에게 대시해볼까?"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기타 떨거지는 다 빼더라도 내겐 K와 M이란 무시못할 라이벌
이 있었다.
확실히 그녀는 날 좋아했지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다
는 말처럼 언제 그녀의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거기다 왠지 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자신감을 더욱더
사라지게 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지낸 여자애에게 내 고민을 토로해
볼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여자들한테 부탁하는 것은 알려주세요 하고 부탁하는 것과
같다.
계속해서 기회를 찾다보니 어느덧 여름 방학이 다가오고 있
었다.
나는 내 머리를 후려쳤다. 벌써 100일도 넘게 고백을 미루고
있었다니.
100일 전부터 사귀었다면 그녀와 함께 기념일도 챙겼을 것이
고 어쩌면 키스도 했을텐데.
물론 그 이상을 바라긴 하지만 그건 생각없이 해선 안될 일
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옷을 챙겨 입고 산책을 핑계삼아 밖으로 나
섰다. 버스 정류장 주변을 서성이며 그녀를 기다렸다. 저기
저 편에서 그녀가 탄 학원 버스가 도착했다.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지만 그녀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그녀
의 친구 J가 붙어 있었다.
"아......"
나는 J를 노려보며 몸을 숨겼다. 병신같다. 아니 병신이 맞
겠지.
나는 정류장 뒤 수풀에 쪼그려앉아 그녀와 J의 수다가 끝나
기를 기다렸다. 구조상, 그리고 시간상 그녀들이 일부러 의
식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들킬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자의 수다는 상당히 길다. 공부에서
시작된 수다는 시험 후 롯데월드로 놀러갈 것, 그 때 새로
살 옷으로까지 번졌고 이윽고 남자 얘기까지 들렸다.
나는 거기서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내 얘기도 나올려
나?
내 얘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해졌다. J는 나보
다 K를 더 밀어주고 있다. 그리고 그녀도 천천히 마음이 기
우는 듯 말을 더듬었다.
위험하다.
위험하다.
나는 내 자신에게 경고를 날렸다. 이대로는 뺏긴다고. 기회
를 노릴 것도 없이 끝장을 내자고.
그녀들의 수다는 20분 정도 더 지속되었고 J와 그녀는 각자
의 집을 향해 찢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그녀보다 더 앞에서 우연인
것처럼 걸어야한다. 나는 커브길을 이용해 그 것을 성공했다
.
"GDS??"
그녀의 목소리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돌았다. 그
곳에는 여신이 서 있었다.
검은 비단같은 머리칼을 리본을 이용해 포니테일로 묶고 그
녀만을 위한 듯한 보랏빛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그 아래
엔 검고 굽낮은 구두를 신었다.
평소에도 차려입고 다니는 그녀였지만 그 날은 정말 천사나
여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줘야할 정도였다.
물론 콩깍지 현상으로 인한 것이 크겠지만 말이다.
"어...... 안녕."
나는 어색하게 인사하며 그녀의 옆에 섰다.
"어디가?"
"집에 가. 넌?"
"그냥 산책중이었어."
"그랬구나."
그녀와 나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마음 속에서는 지금이라
도 당장 끌어 안고 고백하라고 외쳐댔지만 내 이성은 그 것
을 억눌렀다.
그녀의 표정은 그동안과는 달리 밋밋했다. 때문에 나는 가슴
이 아팠다.
그녀가 날 떠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
"응?"
"아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빛나는 모습을 나만 영원히 가
지고 싶은데. 영원히 나랑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은데.
신호등을 기다리며 우린 다시 침묵했다. 자동차의 경적 소리
와 엔진 소리, 그리고 매캐한 매연이 눈코입을 자극했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을 잡고 싶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저 손을 잡고 싶다. 그
리고 끌어 안고 입 맞추고 싶다. 아무 때나 전화해도 화를
내지 않는 관계가 되었으면, 어디에 떨어져도 함께라면 행복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은 신호등이 바뀌고 깨졌
다. 그녀와 나는 매연으로 가득한 도로를 걸었다. 그리고 어
느 때처럼 그녀의 집 근처에 와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잠깐만."
그녀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왜 그래?"
"얘기 좀 해."
그녀는 나를 이끌고 근처 초등학교로 갔다.
초등학교 교정을 걸으며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다.
"나 있잖아. 오늘 안 이상해?"
그녀가 물었다.
"뭐가?"
"안 이상하냐고."
"이상하네."
"그래? 뭐가 이상해?"
"갑자기 이런걸 묻는 이유가 뭔지...... 난 모르겠다."
그녀는 한 숨을 쉬었다.
"오늘 K가 나한테 고백한댔어."
"......"
"그래서 이렇게 차려 입고 나왔거든."
"......"
"어때? 잘 어울려?"
"잘..... 어울린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것이 치솟았
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한심했다.
"어떨 것 같아."
"뭐가?"
"뭔지 물어야 알아?"
"......"
그제서야 나는 결심을 굳혔다. 이대로 뺏기지 말자. 사랑한
다고 말이나 하자.
"나랑 사귀자."
"어?"
"나랑 사귀자. 나 너 진짜 좋아한다. K보다 더."
"......"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그제서야 확신했다. 우린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나도 내가 진짜 잘난 거 없는거 아는데, 지금 널 좋아하는
놈들 중에선 내가 널 제일 잘 알고 제일 좋아하고 있을거야.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었어. 너도 알고 있었잖아."
그녀는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답했다.
"왜 항상 이렇게 느려, 넌...... 알겠어. 나도 널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나와 그녀는 그렇게 사귀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귄다고 홍보하지는 않았지만 그 후로 은밀하게 소문이 퍼
졌는지 그녀에게 추근대는 놈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K는
처음부터 성욕 때문이었기에 다른 여자를 쫓아 가버렸고(알
고보니 이 날 K가 고백한다고 한 것은 그녀의 거짓말이었다.
1년 후, 고3 때 K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분개했다.)
M은 속앓이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이상 그녀와 대화하지 않
았다. 그 외 찌꺼기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그녀는 결단을 내렸다.
"나, 문과로 갈거야."
"왜?"
"그냥.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이번 여름 방학은 그래서 기
숙 학원으로 갈려고. 3주 뒤에 돌아올게."
"핸드폰은? 연락은 못해?"
"응. 핸드폰 가져가면 압수래. 다녀와서 연락할게."
"그래. 열심히 하고 와. 그럼 내년엔 보기 힘들겠네. 이번 2
학기가 마지막인가?"
"아냐. 수능 끝나고 또 시간 많잖아. 사랑하는거 알지?"
그녀의 꿈이 학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기에 나
는 웃으며 그녀를 보냈다.
그 해 4개월은 폭풍과도 같았다. 많은 친구들을, 그리고 누
구보다 소중한 첫 사랑을 만났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 밤 새 러브레터를 구상한 것도 그 해
가 처음이었고 역겨워하던 사랑 노래를 들으며 달콤한 상상
에 젖던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고마웠던 것은 내게 주는 것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사랑을 알게 해준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아베노는 나데코 밖에 안봐여
흑픽션이라뇨 철썩같이 현실이라 믿고있었는데흐ㅡ어흐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