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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이야기 - 7 ver.ilbe

오
오타쿠첨보냐Lv.71로스터
15년 전인 2011년 6월에 올라온 글이에요 · 댓글은 지금도 달 수 있어요

한라산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 어느 때처럼 뒷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는데, 그녀가

순간 고개를 홱하고 돌려 버렸다.

 

나는 무안해져 손을 내렸다. 잠시 후 그녀의 친구인 J가 우

리를 보며 말을 했다.

 

"미친 새끼들이 술을 쳐먹으면 곱게 쳐먹어야지 쳐먹고 남한

테 전화해서 지랄대냐?"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제 전화를 받은

여자는 그녀였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목소리를 알아 들은 것이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애에게 말하려 했지만 그녀

의 분위기가 사피론의 브레스처럼 냉랭해 쉽게 다가갈 수 없

었다. 나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 일, 나는 몰랐어. 미안해.>

 

당연한 말이지만 답장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

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내 눈빛을 철저히 무시했다.

 

나도 자존심이란게 있는지라 그 이상 무언가를 하지 않았다.

 

대신 화가 미칠듯이 났다. 나에게도 났고 전화하게 만든 친

구들에게도 났다.

 

그리고 그 분노는 한라산을 오르다가 폭발했다.

 

조금 작은 신발로 가파른 길만 오르다가 발 뒷꿈치가 다 까

진 것이다.

 

발 뒷꿈치에서 피가 줄줄 새나와 양말과 신발을 적셨다. 나

는 바위에 앉아 쉬다가 지나가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반

창고를 얻어 붙였다.

 

그리고 홀로 내려왔다.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는데, 가슴은 뜨거워지는데 손발

과 머리는 차가워져 갔다.

 

눈물도 안 났다. 울고 싶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그게 더 화

났다.

 

목도 탔다.

 

나 같아도 화는 나겠지만.

 

어쨌든 그 날 내 표정이 무척 안 좋았던 모양이다.

 

친구들은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댔고, 나는 그들에게

아무 일 없다고 대꾸했다.

 

그 날 밤 우리 방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항상 개드립을 쳐대

던 녀석들 모두가 한라산 등반으로 인한 피곤함에 곯아 떨어

지고, 나는 그녀와의 원치않던 갈등으로 매사에 욕부터 늘어

놓았다.

 

그 정도로 그녀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날은 수학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추억을 만들고 싶었

지만 그 기분으로 될지 안될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다음 날을 위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우리는 우선 방부터 치웠다.

 

첫째 날 술과 과자를 쳐먹고 던져둔 부스러기와 술병으로 인

해 방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참고로 이렇게 수학여행 및 졸업여행 사정이 안 좋아진 것은

몇 년 전 분당의 레전드, 락의 신 아다폭격기 이홍기 때문이

라는 소문이 있었다.

 

평소보다 30분 씩 일어나 방을 치운 우리들은 씻고 버스로

다시 집합했다.

 

또 그녀와 마주쳤지만 이번엔 내가 고개를 돌려 버렸다.

 

곁눈짓으로 그녀를 보았는데 그녀는 날 쳐다도 보지 않고 있

었다.

 

씁쓸했다.

 

내가 잘 못 한 것은 맞지만 내가 보낸 사과 문자에 최소한

욕이라도 보내 주던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태도가 그렇게 화가 날 수 없었다.

 

그녀와 나의 자리는 버스에서 앞뒤였다.

 

때문에 창문을 보면 가끔 그녀의 얼굴이 반사되어 드러났다.

 

아무렇지 않게 옆자리의 친구와 웃고 떠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시렸다. 거기에 내 기분을 더 상하게 하는

것은, 그 때 듣고 있던 노래가 이별에 관한 노래란 것이다.

 

왜 거기에 날씨도 우중충해, 그 날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우선 수학여행 단체 사진을 찍고 우리 방 남자애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여자애들 중 몇몇과도 팔짱끼고 사진을 찍었는

데, 그녀와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보면 시선을 돌리기 바빴다.

 

이제 미안하기보다는 그녀가 너무 속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

고 화가 났다.

 

분명 내 고의가 아닌데......

 

다음 목적지는 유람선이었다. 유람선에는 노래방 기능이 있

었는데 언제나처럼 내가 방을 대표해 나가 내 친구와 듀엣으

로 분위기를 신나게 해놓았다.

 

당시 우리가 부른 곡이 싸이의 챔피언이었다.

 

신나게 뛰고 박수 좀 받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져 그 때부터

조금 웃었는데, 이미 수학여행은 막바지 상황이었다.

 

이제부터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아이들과 농담을 주고

받고 웃어댔다. 오늘 그녀 일은 생각하지 말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버스에 올라탄 나는 졸려서 잠이 들었다.

 

하긴, 그렇게 뛰어댔으니 졸릴만도 했다. 버스는 달리고 달

려 공항 근처의 기념품 판매점으로 갔고 내 옆의 Y를 비롯해

모두가 날 버리고 기념품을 사러 갔다.

 

어차피 기념품 살 생각이 없었기에 나는 우두커니 앉아 창

밖을 바라 보았다.

 

감기에 걸렸는지 가래가 끓어 창문을 열고 가래를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드는데 저기서 그녀가 걸어왔다.

 

나는 창문을 닫고 태연히 시선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녀가 버스로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갔

다. 그녀 주변의 친구들은 없었다.

 

"......"

 

"......"

 

그녀는 자리에 앉았고 버스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무언가 말을 할까. 지금이 기회같은데. 하지만 안 받아주면

어떡하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민했다.

 

그런데 목소리가 들려왔다.

 

"GDS."

 

그녀의 목소리였다. 이틀만에 그녀가 내게 입을 연 것이다.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그녀가 웃고 있었다.

 

"정말 너 일부러 전화한 거 아니지?"

 

"응?"

 

"너, 실수한거지?"

 

"아......"

 

왠지 이 때 가슴 속에 무언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정을 누르며 차분하게 답했다.

 

"응. 당연하지. 난 네가 받고 있는지도 몰랐어.

그리고...... 미안해."

 

"아냐. 이제 괜찮아."

 

그녀는 내 뺨을 살짝 꼬집었다.

 

"앞으로 진짜 하지마."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 내 뺨에서 떨어뜨리며 웃었다.

 

"응. 믿어도 돼."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들어오자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진심으로

웃었다.

 

S나 K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놈이 갑자기 지랄한다고

어이없어했고 L은 왠지 여자랑 관련된 일같다며 추측해댔다.

 

그리고 그 날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돌아왔다.

 

그 날도 우리는 전화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도 나도 피곤했지만 수학여행에서의 일을 떠들어대느라

바빴다.

 

행복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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