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 일어나. 밥 먹어야지."
지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늘도 잠에서 깼다.
옆집 사는 지민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커온 한살 어린 소꿉 친구다.
맨날 놀고 먹다가 백수가 된 나와는 달리 중학교 때부터 언제나 모범생의 타이틀을 달고 운동도 잘하는데다가 인기도 많은 그런 아이다.
여러모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 아이가 왜 나를 깨우냐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집을 비우시는 부모님 때문이다. 내 소식을 들은 지민이는 스스로 우리 집 현관을 두드렸고, 매일 내게 아침 밥을 해주고 있다.
"오늘은 오빠가 좋아하는 치즈 케익을 사왔지롱. 헤헤"
지민이는 지름이 한 뼘만한 치즈 케익을 내 눈 앞에서 예쁘게 자르기 시작했다.
"자, 많이 먹어."
그리고 내 접시에 치즈 케익을 담아 주었다.
혈당량이 높은 관계로 많이는 못 먹기에 지민이가 내게 덜어준 양은 극히 일부였다.
한참을 묵묵히 먹던 나는 오늘이 평일이고 또 이미 학기가 시작됬음을 깨달았다.
"너, 학교 안가냐?"
나는 치즈 케익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앞치마를 두른 채 커피를 끓이던 지민이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살짝 뛰었다.
"헉, 지각이다. 어떡해!"
지민이는 언제나처럼 단발을 휘날리며 현관을 뛰쳐 나간다. 그러고 보니 저기서 교복만 입혀 놓으면 작년 고등학교 때와 똑같다. 저 아이는 늙지도 않는 것일까.
다시 집에는 나 혼자 뿐이다.
"애니나 봐야겠다."
나는 어제보다만 애니메이션 '마법 소녀 마도카'의 파일을 실행했다. 현란한 영상과 함께 카와이한 마도카 쨩이 내 눈을 멀게 한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어색한 느낌이 들어 방 구석을 보니 이미 깜깜해진 방 속에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휴대폰 불빛을 향해 손을 뻗고 발신자를 보았다.
지민이었다.
"모시모시."
-오빠-?
지민이는 약간 술에 취한 듯, 반쯤 풀린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술 마셨어?"
-으응. 조. 조금...... 밥은 먹었어?
물론 먹지 않았다. 책상 위엔 마도카 쨩을 그리며 풀어낸 욕구의 산물-휴지 조각-이 몇 개 뒹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지민이에게 말할 수는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내 마음이 불안해지니까.
"응. 먹었어. 치즈 케익 맛있더라."
-헤헤, 다행이네. 나 조금 늦을 것 같은데.
"응."
-내일 아침엔 안 깨우도록 일찍 일어나야해. 잠 좀 일찍 자. 알았어?
"응."
대답은 했지만 마지막 말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은 왜일까.
삼주만에 나는 바깥 공기를 쐬기로 했다.
샤워하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물기를 깨끗이 닦은 뒤 넝마에 가까운 옷을 집어 던지고 옷장에서 그나마 멀쩡한 바지와 윗옷을 꺼내 입고는 거리로 나섰다.
선을 가르는 나나야 시키처럼, 한쪽 주머니엔 짧은 나이프를 푹 찌른채, 밤의 거리를 나섰다.
밤공기에 길어져버린 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내 눈을 찔러왔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이 정도는 가뿐히 이겼기에 나는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한 남자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어디론가 향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석과 나의 눈이 마주치자 내 입에서는 그동안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우렁찬 포효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외치며 나는 나이프를 빼내 그 남자에게 달려 들었다. 대충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지민이의 학교 선배, 그리고 지민이가 은근슬쩍 귀찮다고 한 남자다.
"뭐, 뭐야! 이 미친 놈이!"
그놈은 나를 미친놈 취급하며 칼을 피했다. 그리고 내 얼굴에 그 놈의 주먹이 꽂혔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신나게 얻어 맞았지만 녀석을 쫓아내는데 성공한 나는 지민이를 업은 채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옥션에서 산 나이프는 그 놈이 벽에 던지는 바람에 부러져 버렸다.
역시, 나나야 시키처럼은 될 수 없는 거구나.
오랜 히키코모리 생활로인해 허약해진 체력은 결국 우리 집과 유흥가 사이의 한 공원에서 고갈되었다.
벤치에서 그녀를 내 무릎 위에 눕힌 채 부어오른 얼굴을 휴대폰 거울로 살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다시 멀쩡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마도카 쨩을. 나데코 쨩을 포기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해내고 싶다.
"......오빠."
지민이는 머리를 뒤척이며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단발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이번엔 스스로 일어난 나는 어제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아침을 준비하는 지민이의 뒤에 서 물었다.
"넌 왜 머리를 안 길러? 어제 보니까 네 또래 애들은 다 머리 기르고 파마하고 염색하고 꾸밀대로 꾸몄던데."
"응? 오빠 어제 집에서 나갔었어?"
지민이는 기쁜 듯한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부어오른 내 얼굴을 보더니 잠깐 눈을 크게 뜨고는,
"무슨 일 있었어?"
하고 물었다.
"그냥 넘어졌어."
하고 나는 변명했다.
"나, 다시 사회로 돌아갈까.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공부도 하고. 보통 사람처럼...... 가끔은 나도 너한테 밥 해주고."
"정말? 진심이야?"
"어어."
나는 자신감은 없지만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다.
"근데, 너는 왜 머리 안 기르냐니까."
왠지 쑥쓰러워 주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야 당연히 오빠가 이쁘다고 했으니까."
지민이는 환하게 웃으며 단발 머리를 한번 찰랑인다.
소꿉친구...... 그 것은 오타쿠의 희망......
오타쿠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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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냐 나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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