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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2.01.26 23:44

흙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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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아침부터 더웠다.

자기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던 소년의 귀에, 어머니의 질책이 들려왔다.

[얘, 게임만 하지 말고 정원 좀 정리하렴. 엄마랑 약속했잖니?]



소년은 생일에 가지고 싶은 게임을 사는 대신, 여름방학 때 매일 아침 정원의 잡초를 뽑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TV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탁 트인 시원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조금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의 소년이었지만, 단념한 것 같다.



게임기의 전원을 끄고 대충 정리한 후 종종걸음 쳐서 아래 층으로 내려간다.

손바닥만하다는 말이 어울릴만큼 작은 정원이었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인 소년에게 정원 정리는 중노동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에다 한여름의 타는듯한 더위가 내려쪼인다.



10분도 되지 않아 소년은 온 몸이 땀투성이가 된다.

사방 1m도 정리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앓는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정원 한 구석의 은행나무로 다가간다.

푸르디 푸르게 잎이 우거진, 이 정원에서 유일하게 그늘이 있는 곳이다.

나무 밑에 앉아서 소년은 숨을 돌린다.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지만 그래도 햇빛을 그대로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살 것 같다고 느끼는 와중에, 소년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이 조금 튀어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불룩하게, 마치 무엇인가 묻혀 있는 것 같은 모양이다.

소년은 심심한 나머지 그 곳을 파 보기 시작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것] 이 땅 속에서 나타났다.



기묘하리만치 흰, 그렇지만 얼룩덜룩 보라색으로 변색된 가냘픈 팔.

그 손 끝의 약지에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소년은 그 반지를 알고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소년의 머릿 속은 완전히 어지러워진다.

그렇다면 아까 자신에게 정원을 정리하라고 시켰던 그 [목소리의 주인] 은 도대체...?

[엄마...]






중얼대려는 도중, 어느새 툇마루에서 나오고 있던 [어머니] 와 눈이 마주쳤다.

수직에 가깝게 위로 쭉 찢어진 눈, 귀 부근까지 크게 웃는 것처럼 찢어 갈라진 입.

이상한 얼굴의 [어머니] 였다.



그 날도 아침부터 더웠다.

소년은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오늘도 땀투성이가 되어 가며 풀 뽑기에 열심이다.

그 덕인지 정원은 이전보다 훨씬 산뜻해져서, 훨씬 보기 좋게 변해 있다.



은행나무는 오늘도 나무 그늘을 만들고, 소년이 바람을 쐬러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밑동에는, 수북하게 쌓인 흙더미가 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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