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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3.05.03 01:15

[2ch] 리스트

조회 수 1218 추천 수 2 댓글 0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WAq2h



이 이야기는 10년도 더 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가끔 예지몽을 꾼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빈도가 적어졌지만 10대에는 참으로빈번하게 예지몽을 꿨었다.

이번 이야기가 예지몽에 관한 것인지는 확실히 구분 짓기 힘들다.

반은 꿈 반은 현실.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꿈을 꾸며 체험했던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써내려가보도록 하겠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기억법]이라는 것에 푹 빠져있었다.

TV에서 본 내용이었다.

이 [기억법]을 사용해면 친밀한 아이템을 100개 이상 순서대로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아마 이 방법을 알고있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간단히 설명해보겠다.


1. 먼저 친밀한 장소(집이나 방)을 떠올린다.


2. 집을 떠올렸다면 대문 → 현관 → 부엌 →침실 같이 실제로 머리 속에서 연상하기 쉬운 순서대로 상상을 하며 연상 순서를 정한다. 한바퀴 도는데 10~11곳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3. 마음속으로 정한 열군데에, 각각 관련있는 아이템을 하나씩 놓아두는 상상을 한다. 기억해두고 싶은 아이템이 만일 편의점 봉투라고 한다면 대문에 그 비닐 봉투가 걸려있는 광경을 연상하는 방식이다. 그 다음에 놓아두고 싶은 아이템이 귤이라면 현관 문 한 구석에 귤을 놓아두는 연상을 하면 된다.


한바퀴 돌며 열군데 전부 관련 아이템을 놓는 것을 완료했다면, 다시 한번 똑같은 코스를 반복해 돌면서 아이템을 놓는다.

두번째 바퀴 첫 아이템이 호치케스라면 문에 걸려있는 비닐 봉투 안에 호치케스가 들어있는 풍경을 연상하며 기억한다.

대략적으로 이러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것이 [기억법]이었다.

이 것을 2~3번 반복하는 것에 의해 누구라도 적어도 100개정도는 기억 하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이 [기억법]을 이용해 누가 더 많이 기억할 수 있는지 친구와 내기를 하며 놀았었다.

매일 연습하다보니 기억할 수 있는 숫자도 점점 늘어났고 연상하는 풍경도 점점 현실적으로 뚜렷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는 집 안을 천천히 걷고있었다.

내가 [기억법]을 연습중이던가.

꿈인지 현실인지 쉽사리 판단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우리 집은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있었다.


천천히 거닐던 나는 문득 거실에서 아이템 리스트를 발견했다.

나는 바로 그 아이템 리스트를 집어들고 당연하다는 듯 [기억법] 연습을 시작했다.

그 리스트에는 고작 40개의 아이템 밖에 적혀있지 않았고, 전부 평범하기 그지 없는 물품들이었다.

나는 아침에 꿈에서 깨어났지만 신기하게도 그 40개의 물품과 암기 순서를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친구에게 그 꿈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시큰둥하게 듣던 친구는 내 말이 끝나자 물었다.


"그런데 그 꿈속 리스트에 적혀있던 물품들 말이야, 다 너네 집에 실제로 있는 것들이었어?"


친구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의아했지만 확실히 리스트에 있는 물품들은 전부 집에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만일 내가 이때 친구의 말을 좀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그 후로 며칠 후 나는 또 꿈을 꾸었다.

[기억법]연습을 하는 꿈이었다.

거실로 가보니 예상대로 리스트가 놓여져 있었다.

집어들고 천천히 리스트를 확인해보았다.

 

첫번째 아이템은 신문지였다.

나는 대문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유모차를 밀고있는 노파였다.

허리는 굽고 머리카락은 백발이었다.

그 노파는 내가 있는 곳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번도 본적이 없는 노파였다.

나는 그냥 무시하고 대문에 신문지를 걸쳐놓기로 했다.

 


두번째는 장도리였다.

재미있게도 꿈속에서는 필요한 아이템은 곧바로 나타났다.

신문지도 장도리도 그냥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장도리를 현관 문옆에 세워두었다.

 

 

세번째는 야구 배트였다.

나는 그것을 현관 안쪽 신발장 위에 올려두었다.

 

 

네번째 아이템을 확인하고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유 였다.

어느새인가 나는 등유가 가득찬 플라스틱 통을 들고있었다.

나는 그 통을 거실에 놓아두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다섯번째 아이템은 식칼이었다.

이상했다.

아까부터 아이템들이 위험한 물품들로만 구성되어있다.

나는 흐릿한 불안감을 안고 일단 부엌에 있는 식탁 위에 식칼을 놓았다.

 

 

여섯번째 아이템을 확인했다.

전기테이프였다.

아, 드디어 위험하지 않은 물품이 등장했구나.

나는 안심하고 화장실 세탁기 위에 그것을 올려두었다.

 

 

일곱번째는 시멘트라고 적혀있었다.

시멘트라고?

나는 시멘트가 들어있는 봉투를 목욕탕 안에 놓았다.

이상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식한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할지 잠시 망설였지만 일단은 한바퀴 돌고 나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음 차례는 내 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현실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내 방이었다.

여덟번째 아이템은 밧줄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밧줄을 휙하고 던졌다.


문득 시선이 쓰레기통 쪽으로 갔다.

무엇인가 거뭇한 물체가 그득차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확인을 해보니, 그것은 검고 긴 머리카락이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방에서 뛰어 나왔다.

복도에서 나는 숨을 몰아쉬며 필사적으로 정말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마 꿈 속인데 위험한 일을 당할리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기억법]연습을 진행했다.


 

아홉번째 아이템은 마이너스 드라이버였다.

나는 그것을 2층 화장실 변기 위에 올려놓았다.

 

 

열번째는 가스팬히터였다.

나는 그것을 2층 복도 한구석에 놓아두었다.

 

 

열 한번째는 피아노 선이었다.

열번째 아이템까지는 우리 집에 있는 물품이었지만 분명 피아노선은 없었다.

손에서 피아노선의 미끌미끌하고 팽팽한 감촉이 났다.

피아노 선이 들려있었다.

우리집에 이런게 있던가?

이상했지만 일단은 계단 제일 밑쪽에 그것을 놓아두었다.

 

 

 

 

 

 

 

 

 


이 것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이상한 부분도 있었지만 꿈이니까 그런거겠지.

나는 두바퀴째를 돌기로 했다.

하지만 그 결정이 커다란 실수였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닫게 된다.

 

현관에서 나가 대문으로 향했다. 

리스트를 보니 다음 아이템은 라이터였다.

그 순간 뭔가 소리가 났다.

 


덜컥 덜컥

대문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다가가서 보니 아까 본 그 노파가 내가 대문에 걸어둔 신문지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하고 있었다.

나는 허둥지둥 대문 건너편에 손을 뻗어 노파에게서 라이터를 빼앗았다.

다행히도 불은 붙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이 꿈이 명백하게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무슨짓이야!!!!"


화가 난 내가 소리를 질렀지만 노파는 입을 굳게 다물고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대문에 걸어둔 신문지로 라이터를 둘둘 말아 우체통 안에 쑤셔넣고, 현관 앞에서 애써 사고를 정리해보려 노력했다.

 

 

이거....꿈 맞나?

이 기묘한 현실감과 정상적이지 않은 진행상태.

내가 [기억법]연습을 계속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됐다.

마치 나의 감이 경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이미 자각한 상태다.

무슨일이 생기면 잠에서 깨면 될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아이템 리스트를 확인해보았다.

눈길용 타이어체인이었다.

현관 문 옆쪽 구석에 그것을 놓아두었다.

 

 

다음 아이템은 인형이었다.

우리집에 인형같은 것은 없는데....?

하지만 어느새인가 내 손에는 인형이 들려있었다.

일본 인형이었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 것을 현관문 안쪽 신발장 위에 두었다.

 

 

그리고 다음 아이템이 무엇인지 리스트를 확인해보았다.

다음 아이템은 불이었다.

불?

그런걸 어떻게 놓으라는 소리지?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음 차례는 거실이었다.

그리고 거실에는 아까 놓아둔 등유가 든 플라스틱 통이 있다.

설마 통에 불을 붙이라는 말은 아니겠지......

 

 

그 순간, 현관에서 덜컥 덜컥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조심 현관문 밖을 내다보았다.

밖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까 내가 현관문 옆에 놓아둔 눈길용 타이어 체인으로 문고리를 칭칭 감고있었다.

나를 가둬둘 셈인가...?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했다.

내 다리에 부딪친 등유 통이 쓰러져서 콸콸콸 흘러나왔다.

등유는 순식간에 지면을 타고 현관 문 밖에까지 흘렀다.

 


틱, 틱.

아까 노파가 불을 붙이려 하던 라이터 소리였다.

분명 아까 내가 우체통 안에 넣어놨는데.

노파는 분명 그것을 끄집어 내서 불을 붙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나는 전력 질주로 부엌까지 달려갔다.


순식간에 현관에서 거실까지 불길이 올랐다.

탄내가 집안 가득 차올랐다.

이상하다.

꿈 속인데 뜨거움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부엌에서 불을 지켜보았다.

불길은 서서히 임박해오고 있었다.

이건 보통 꿈이 아니다.

악의가 있는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한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난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

꿈에서 죽는다면 현실의 나는 어떻게 되는거지...

 

나는 두려워서 어떻게든 타개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리스트를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다음 아이템은 다름 아닌 [발목]이었다.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다가오는 불길을 피할 요량으로 화장실 쪽으로 달려가기로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무엇인가를 질질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보니 신발장 위에 두었던 일본 인형이 첫 바퀴를 돌때 놓아두었던 야구 배트를 질질 끌며 다가오고 있었다.

 

어떡하지.

꿈이라고는 하지만 사태가 점점 심각해져갔다.

인형은 손에 든 야구 방망이로 화장실로 달려가는 내 다리를 무서운 속도로 가격했다.

나는 쓰러지고 말았다.

맹렬한 아픔이었다.

꿈인데도 이렇게나 아픔이 느껴지다니.

하지만 그 아픔을 뛰어넘는 격통이 연이어 발 밑으로 느껴졌다.

 

쓰러진 자세로 고개를 들어 발 밑을 보니 아까 그 인형의 손에 식칼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없었다.

나의 오른쪽 발목이.

인형은 무표정하게 나의 오른쪽 발목을 주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어떻게든 화장실로 기어갔다.

그 곳에는 아까 놓아둔 전기 테이프가 있을 것이다.

그 테이프가 있다면 잘린 발목을 지혈 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그저 꿈이 아니었다.

하지만그렇다고 해서 현실도 아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잠을 깨려고 했다.

그러나 몇번을 시도해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꿈이 아닌건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아도 현실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수가 없었다.

 

 

 

 

 

 

 

 


갑자기 일본 인형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화들짝 놀라 피하려 했지만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인형의 손에는 아까 화장실 세탁기 위에 올려둔 전기 테이프가 들려있었다.

순식간에 나의 손발은 결박당하고 말았다.

 

목욕탕 쪽에서 철벅철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시멘트다....

시멘트와 물을 혼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다음 리스트를 보았다.

[손목]이라고 적혀있었다.

인형은 무서운 힘으로 나를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 왼쪽 손을 시멘트 안에 밀어넣었다.

시멘트는 순식간에 굳었다.

그러자 인형은 다시 엄청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의 왼손은 뜯어져나갔다.

주변의 모든 움직임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였다.

아까까지 목욕탕 안에 가득 차있던 시멘트는 어느덧 간데없이 사라지고 인형이 나의 손목을 줍고있었다.

감각이 마비된 것인지 아픔은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내 방으로 기어갔다.

창문 밖으로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아마도 지금 이 공간은 누군가의 저주에 의한 결계 안일것이다.

그 결계는 아마도 대문과 정원을 포함한 우리 집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결계 밖으로 나간다면 이 지독한 꿈에서도 깰 수 있으리라.

 

등 뒤에서 강렬한 아픔이 느껴졌다. 

아까 놓아둔 마이너스 드라이버에 찔린 것이다.

계단 앞을 지나 내 방이 있는 곳으로 향하려던 순간, 무시무시한 힘이 나를 2층으로 끌고 올라갔다.

2층 복도에 내팽겨쳐지자마자 2층 한가득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스다....

 

잘 보니 가스팬히터의 전선에 상처가 나서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2층은 이미 가스로 자욱했다.

 

틱틱틱

누군가가 라이터에 불을 켜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계단 아래로 몸을 던지듯 뛰어내렸다.

 

 

 

 

 

 

 

 

쾅!!!

엄청난 기세로 불길이 폭발하듯 2층을 메웠다.

나는 동시에 1층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엄청난 아픔이 느껴졌다.

오른쪽 귀가 잘려있었다.

아까 계단에 두었던 피아노 선이 양쪽 기둥에 팽팽히 묶여져 피를 머금고 있었다.

나의 몸에서 경련이 일었다.

 

지금 포기하면 나는 아마 죽어버리겠지.

벌써 집의 반 이상이 불길에 휩싸여있었다.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서 내 방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나는 보았다.

 

 

 

 

 

 

 

 

 

아까 침대 위에 던져둔 밧줄이 어느새인가 고리를 만들어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내 머리를 기다리고 있는듯.

 

쓰레기통 안에서 무엇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무시하고 창문으로 향했다.

나를 공격하던 일본 인형이 창틀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흡사 나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고 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급격하게 전신의 핏기가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희미했다.

이제 죽는 걸까......

그때 눈 앞에 리스트가 적힌 종이가 팔랑팔랑 떨어졌다.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 나는 리스트에 적힌 마지막 아이템을 보았다.

 

잉어연이었다.


그 것을 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그 순간 옷장에서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일렁이던 불실과 아이템, 나를 공격한 인형들을 눈부신 빛이 집어삼켰다.

인형의 단말마가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나는 내방 침대에서 자고있었다.

일어서서 손발을 보았지만 다친 곳은 없었다.

귀도 양쪽 다 제대로 달려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식탁에 앉아 달력을 보았다.

5월 5일이었다.


"왜그러니? 학교 오늘 안가는 날이잖아. 조금 더 자렴."

"음...."


어머니는 재빠르고 솜씨좋게 식탁에 앉아있는 내 앞에 아침 식사를 차려주시고 걱정스러운 듯 내 얼굴을 바라보셨다.

나는 한동안 묵묵히 있다가 차츰차츰 나가 꾼 꿈과 어릴적 가지고 있던 5월 인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 나는 5월 인형을 두개를 선물받았다.

하나는 킨타로(金太郎) 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源義経)였다.

나는 커다랗고 귀여운 킨타로 인형이 대번에 마음에 들었지만 요시츠네는 평범하고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매년 5월이 되면 이 두 인형을 꺼내어 내 방에 장식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장난감 대신 요시츠네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서 요시츠네 인형을 꺼내어 친구의 괴수인형과 싸움놀이를 하며 놀았다.

놀이는 갈수록 격해져서 강에도 담갔다가 끈으로 묶어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끝내는 폭죽으로 해서는 안될 장난을 하고 만 것이다..

 

나는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본 모습을 잃어버린 요시츠네 인형이 갑자기 무서워졌다.

망가진 요시츠네 인형을 그상태로 케이스에 넣고 옷장 구석에 쳐박아버렸다.

그당시 나는 어머니에게는 그냥 방해되서 치워버렸다고 둘러댔었다.


이듬해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두개의 5월인형은 그 이후로 옷장 속에서 나오는 일이 없게되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내 말을 들어주셨다.


 "그랬구나....요시츠네 인형은 분명 외로웠던 것일 거야."


나는 어머니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옷장에서 2개의 인형을 찾아냈다.

몇년만이었다.

킨타로 인형은 받았던 때와 동일한 모습이었지만 요시츠네 인형은 내 기억보다 몇배는 더 흉칙한 모습으로 변형되어있었다.

나는 변형된 곳을 컬러 플라스틱과 접착제로 보수했다.

너덜너덜해진 갑옷도 새로 만들어 입혔다.


 

 

 

 

 

 

 

다음 날 더할나위 없이 늠름해진 요시츠네 인형이 완성되었다.

나는 요시츠네 인형 앞에 무릎꿇고 앉아 내가 어릴 적 했던 행동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사과했다.

이제부터 소중히 다루겠다고 맹세했다.

그리고 두 인형을 5월 내내 내 방에 장식해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 그 꿈은, 어릴적 나를 지켜준 은혜도 잊고 흉칙하게 변형된 그대로 암흑속에 방치해버린 나에게 보내는 인형들의 [경고]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그 꿈을 꾸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써내려가다 눈치챈 것이지만 이상한 점이 한가지 있다.

대문 밖에 있던 그 노파다.

그 꿈의 결계는 분명 마당을 포함한 우리 집 전체였다.

하지만 그 노파는 대문 밖, 즉 결계의 밖에 있었다.


그 이후로 그 노파에 관한 꿈 역시 꿔본 일 없지만 그 사실에 대해 눈치채버리고 난 지금, 매우 불길한 예감이 든다.. 








비비스케 http://vivian912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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