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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1.07.17 15:12

사랑의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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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화는 하트헤르(Hather) 여신상을 들여다보았다. 청동으로 된 
여신상은 고혹적이었다. 물 흐르듯 흘러내린 우아한 몸의 곡선은 
감탄을 자아냈다. 파라오의 미이라에서 종종 본 적 있는 머리 쓰개 
위에는 동그란 항아리 모양의 뿔테가 있고 그 속에 태양처럼 둥근 
공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애화의 관심을 끈 것은 여신상의 목에 걸려 있는 긴 
사슬 목걸이였다. 노 박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하트헤르 여신의 
상징인 메나트(Menat) 라고 했다. 
"기념품 중에서 이 여신상이 제일 눈에 띄더구나. 하트헤르를 발 
견한 순간 애화를 보는 느낌이었어."
국제법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다녀온 노 박사는 애 
화를 연구실로 불러 선물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법학과 사무실의 사무보조원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여상을 졸업한 후 곧바로 취직을 했다.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을 볼때마다 그녀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 
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걱정이 없어보였고, 세상은 그들을 위해 존 
재하는 것 같았다. 
같은 땅을 밟고 있었지만 애화와 그들의 신분은 천양지차였다. 
그들을 포근하게 감싸안고 있는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온갖 실수와 
객기를 감싸주었다. 하지만 그 대학이라는 곳이 애화에게는 척박하 
고 삭막한 사회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그녀의 작은 실수를 용납하 
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그녀의 오점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에게 노 박사는 유일한 구세주였다. 노 박사는 아저씨 
나 오빠처럼 그녀를 감싸고 배려해주었다. 
권위만 앞세우는 다른 교수들과 노 박사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갓 입사해서 미처 사람들의 얼굴을 익히지 못한 어느날, 복도에서 
마주친 노 박사는 그녀에게 정중하게 고개까지 숙이며 먼저 인사 
를 건넸다. 당시 애화는 그가 대학원생인줄 알았다. 노 박사는 나 
이보다 십여년쯤 젊어보였던 것이다. 
애숭이인 일개 사무보조원에게 자신이 먼저 깍듯이 인사하는 교 
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애화는 노 박사의 인간미에 감동했다. 
날이갈수록 노 박사를 향한 사랑은 점점 커져갔다. 노 박사와 
결혼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하지만 그것 
은 꿈에 불과했다. 부유한 명문가 출신의 법대 교수가 사무보조원 
과 결혼을 할 리 없었다. 
차라리 그가 유부남이라면 쉽게 포기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는 독신인데다 애화에게 더없이 친절했다. 학회에 다녀오면서 특별 
히 선물까지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노 박사의 애화에 대한 관심의 색깔이 어떤 것 
인지 애화로서는 알 수 없었다. 열 아홉 살 소녀가 돈벌이를 위해 
애쓰는 모습을 동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애정을 품은 것인지 도무지 헷갈리기만 했다.

"하트헤르. 생소한 이름이군. 노 교수님은 왜 이 여신상을 보고 
나를 떠올리셨을까? 하트헤르, 넌 알고 있니?"

애화는 여신상의 사슬을 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이상 
한 쾌감이 손가락을 타고 팔을 거쳐 전신으로 흘러 들어왔다. 피부 
가 새로운 자극을 애타게 기다리며 숨구멍을 활짝 열어젖히는 듯 
했다. 이런 느낌은 생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엄마가 몰래 감추어둔 쵸코렛을 찾아내 맛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쵸코렛의 달콤함은 이것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핫쵸코에 위 
스키를 섞어 마시면 이런 맛일까. 애화는 온몸이 확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후끈거리는 열기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옷을 벗었다. 속옷까지 모두 벗은 후 오버 
하나만 걸쳤다. 그때 부엌에서 설거지를 끝낸 명 여사가 들어왔다.

"이 밤에 어딜 가려는 거니?"

명 여사가 애화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애화는 아무런 대답없이 
명 여사의 팔을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 
싸늘한 겨울 공기가 뺨을 스쳤지만 하나도 춥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열기가 계속해서 발산되는 탓이었다. 
무작정 걸었다. 왜 걷는지도 모르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른채 
걸었다. 바람에 오버 자락이 갈라지며 미끈한 다리가 드러났다.

"저애 꽤 쓸만한데. 한 번 안아보고싶군."

지나치던 차속에서 애화를 내다보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휘파람을 불었다.

"잠깐 기다려. 내가 네 소원 하나쯤 못들어주겠냐?"

운전을 하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그는 차를 세우더니 애화를 향 
해 손짓을 했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겁을 먹고 도망쳤을 터였다. 하 
지만 그를 응시하는 애화의 동공은 이미 풀려있었다.


"아가씨, 어디까지 가요?"

"왜요?"

"목적지 까지 모셔다 주려구요. 어서 타요."

운전자는 무스 바른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애화는 망설임 
없이 차에 올랐다. 조수석에 탄 남자는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 
다. 그 모습이 말의 꼬리 같아서 애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화통한 아가씨 같군. 어디로 모실까요?"

말총머리가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을 본 애화는 다 
시 한 번 화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 조차 영락없는 말이었던 것 
이다. 웃다보니 온몸의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차안이 왜 이렇게 덥지?"

애화는 오버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말총머리는 아예 고개를 뒤 
쪽으로 고정시킨 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으흠... 이런... 굉장한 여자를 만난 것 같아."

하얗게 드러나는 어깨와 봉긋한 가슴을 쳐다보며 말총머리는 신 
음을 토해냈다.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던 무스머리도 덩달아 침을 삼 
켰다. 애화는 말총머리의 눈동자를 후벼파기라도 할 듯 강렬한 시선 
을 던지며 오버를 완전히 벗어버렸다.

"이제 좀 살만하군."

애화는 시트에 드러누웠다.

"빨리 차 세워."

말총머리가 급한 듯 소리쳤다. 애화는 사랑 게임을 즐기는 하트 
헤르 여신처럼 타는듯한 눈동자로 말총머리를 계속 올려다 보았다. 
동시에 작고 예쁜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짜식 성질도 급하긴. 하긴 나도 더 이상은 못견디겠다."

무스머리는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두 사람 
은 화장실로 달려가는 사람마냥 급히 애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새벽 두시가 다 되어서야 애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니? 그 꼴이 뭐야?"

한숨도 자지 못하고 딸을 기다리던 명 여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애화의 뺨을 어루만졌다. 발갛게 상기된 볼에는 이빨에 물어뜯긴 자 
욱이 역력했던 것이다. 게다가 머리는 쑤세미 마냥 엉클어져 있었 
다. 
애화는 아무 말없이 자리에 그대로 쓰러져 눈을 감았다. 명 여사 
는 오버를 벗겨주기 위해 단추를 풀었다. 그 순간, 까무러칠 듯 놀 
라고 말았다. 딸 아이는 오버 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가슴과 허벅지에 붉은 키스마크가 낭자했다. 허벅지와 오버 
안쪽에는 핏자욱과 뿌연 오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것이... 이것이 어쩌자고... 흑흑..."

명 여사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가난한 탓에 잘 못먹이고 못입혀서 늘 가슴이 아팠다. 공부를 잘하 
는데도 불구하고 실업계 고등학교로 보낼 때는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대학에서 젊음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고된 직장생활을 하는 
딸의 모습이 늘 안쓰러웠다. 
하지만 애화는 전혀 그런 내색을 않는 착한 아이였다. 이날 이때 
까지 속 한 번 썩여본 적 없는 단정하고 참한 딸이었다. 그런데 어 
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아, 어쩌자고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말이나 해봐. 이 못난 
것아... 흑흑."

명 여사는 딸을 마구 흔들었다. 하지만 애화는 죽은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영원히 깨어나지 않을 깊은 잠에 빠져든 것 같았다. 
명 여사는 흐느껴 울면서 딸의 곁을 떠날줄 몰랐다.

"엄마, 아직도 주무세요?"

어느새 크림빛 햇살이 창을 틈입해 들어와 있었다. 명 여사는 눈 
을 번쩍 떴다. 간밤에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이 퉁 
퉁 부어서 잘 떠지지 않았다. 
애화는 어느새 세수를 하고 말끔히 단장한 모습이었다. 어쩜 저 
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명 여사는 딸의 또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아 
어이가 없었다.

"음. 그런데 어제밤에 너 어떻게 된 거냐? 어딜 갔다온 거야?"

"제가 어딜 갔었다고 그래요? 하긴... 좀 이상하긴 했어요. 깨보니 
까 창피하게 옷을 하나도 안입고 있더라구요. 엄마는 그걸 보고도 
그냥 잠드셨어요? 너무 심했어요."

"뭐라고? 어제밤에 아무데도 안나갔다고?"

"그럼요. 엄마도 잘 아시쟎아요. 이상한 걸 다 물으시네. 어제 얼 
마나 단잠을 잤다구요. 이렇게 기분이 개운하기는 처음이에요."

애화는 미소를 지었다. 명 여사는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말을 이 
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정말 딸 아이는 간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 
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애화의 얼굴에 있던 상처가 말끔히 없어져버 
렸다. 몸에 난 키스마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딸에게 그것 까 
지 캐물을 수는 없었다. 
 
"출근할 수 있겠니?"

"물론이죠. 엄마 정말 이상하시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다, 아니야."

명 여사는 서둘러 부엌으로 나갔다. 하지만 아침 준비를 하면서 
도 석연치 않은 기분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멋진 여신상이죠? 어제 우리 대학에 계시는 노 교수님이 주신 
거예요. 후훗, 글쎄 나더러 저 여신상 같대요."

아침을 먹으며 애화가 말했다. 명 여사는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나이 어린 딸에게 거의 벌거벗은 음란한 모습의 여신상을 선물하다 
니 그 교수는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목에 달고 있는 저 
사슬은 또 뭐람. 꼭 개목걸이 같군! 명 여사는 혀를 찼다.

"나이든 교수가 뭐 저런걸 준대? 실용적인 선물이라면 몰라도..."

"나이가 들긴요. 얼마나 젊고 멋있는 분이신데..."

"노 교수라며?"

"저런, 잘못 알아 들으셨구나. 늙은 교수가 아니라 성이 노씨라구 
요. 호호호."

애화는 허리까지 꺾으며 웃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너무 명 
랑해보였다. 명 여사는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았다. 
애화가 출근하고 난 후, 명 여사는 방청소를 했다. 여신상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아무리 봐도 요물단지 같았다. 안보이는 구석에 치워 
놓으려고 여신상을 집어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몸의 균형을 잃 
고 비틀거렸다. 그 바람에 여신상의 목걸이가 그녀의 손에 닿았다. 
순간, 묘한 쾌감이 전신으로 흘러들었다.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난 
후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하반신이 짜릿하고 머릿속이 몽롱해졌 
다. 누군가 자신을 마음대로 다루어 줬으면 하는 기분이 되었다. 
그녀는 사슬을 만지작거렸다. 쾌감이 증폭되었다. 동시에 심장을 
불에 댄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옷을 벗지 않으면 이대로 타서 재가 
될성 싶었다. 
명 여사는 옷을 활활 벗어던졌다.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묻지도 않고 문을 따주었다. 방문자는 전기 검침원이었다. 
삼십대 초반의 전기 검침원은 의외의 풍경에 아연실색했다. 훤한 
대낮에 초로의 아주머니가 나신으로 있다니... 게다가 축 늘어진 가 
슴과 불거져나오다 못해 아래로 쳐진 배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태연 
자약한 모습이 정말 가관이었다.

"실례했습니다."

검침원은 얼굴이 벌개져서 뒤돌아섰다. 그 순간, 명 여사의 손이 
그의 뒷덜미를 나꿔챘다.

"가긴 어딜 가려고?"

남자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왠 아주머니의 힘이 이렇게 센 걸 
까. 그는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뭘 원하십니까?

검침원은 어안이 벙벙해서 말했다. 검침원 생활 5년에 이런 황당 
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젊고 어여쁜 여자가 유혹을 한다면 몰라도 
이건 좀 심했다. 나더러 무료봉사를 하라는 거야. 안그래도 오늘 아 
침에 아내에게 엄청 시달리다가 왔는데. 분노가 솟구쳐 검침원의 얼 
굴은 더욱 벌겋게 달아올랐다.

"자아, 나의 술을 마셔보지 않을래?"

명 여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검침원의 전신을 훑으며 옷을 벗기 
려고 했다. 그는 엉겹결에 명 여사를 떠밀었다. 명 여사는 쓰러지며 
책상 모서리에 뒤통수를 부딪혀 즉사하고 말았다. 
애화가 돌아왔을 때 명 여사의 시신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 
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어머니가 나신으로 죽어 있다니 애화 
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남아있는 피는 어머니의 사망 원인을 정확하게 알 
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문이 잠겨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외부인이 
침입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에 애화는 목놓아 울었다. 이제 이 세상에 
오직 혼자만 남겨지게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막막하 
기 그지없었다. 


"용기를 잃지마."
장례식에 참석한 노 교수는 애화의 등을 쓸어주며 말했다. 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의 존재가 없다면 어떻게 이토록 
큰 슬픔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애화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렸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전화해. 도움이 되고싶어"

며칠 후, 노 교수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 주었다. 과사무실에 근무 
하기 때문에 노 교수의 전화번호나 주소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 
지만 그가 직접 알려주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그 
것은 꼭 전화를 하라는 일종의 암시였다. 애화는 날아갈 듯 기뻤다.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애화는 현관문을 열쇠로 땄다. 좁 
은 부엌을 가로질러 방안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좁장한 방이 남극대 
륙만큼 황량하고 춥게 느껴지다니... 눈물이 차 올랐다. 이제 외출에 
서 돌아오는 그녀를 맞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은 너밖에 없구나."

애화는 슬픈 눈동자로 여신상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잊혀진 채 
홀로 서 있던 여신상은 어서 만져달라고 소근대는 것 같았다. 
애화는 사슬로 된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손바닥이 간질간질했다. 
하늘 위로 비상하는 독수리 마냥 마음이 자유로와졌다. 동시에 몸도 
노근노근하게 풀어졌다. 해빙을 맞이한 얼음이 녹듯 그녀의 육신도 
흐물거리며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이 전화기의 자판을 두드렸다. 신호 
음이 울렸다. 그 소리에도 자극을 받아 그녀는 몸을 비비꼬았다.

"노 훈섭입니다."

중후하면서도 활달한 기백이 깃든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귓속으 
로 흘러들었다.

"저 애화에요. 지금 이곳으로 와주실래요?"

"거기가 어딘데?"

"집이에요."

애화는 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노 교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 
지만 애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노 교수 
는 곧 그녀를 찾아왔다.

"나의 호루스(Horus)! 오실줄 알았어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애화가 노 교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호루스라면 매의 형상을 한 이집트의 태양신이 아닌가. 대지의 신인 
게브와 하늘의 신인 누트 사이에서 태어난 나일의 신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 
이집트의 신들 중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신인 오시리스는 
질투에 눈이 먼 동생 네프티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의 몸은 갈갈 
이 찢겨 흩뿌려졌으나 아내인 이시스가 시체조각을 모두 찾아 원상 
태로 복구시켰다. 
하지만 나일 강에 던져져서 장어의 밥이 되어버린 남근 만은 어 
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오시리스의 아들인 아누비스가 없어진 남근 
대신 모조품을 만들어 이시스에게 주었다. 
이시스는 비로소 완전해진 오시리스의 시신을 마포로 정성껏 감 
고 끈으로 묶어 세운 후 모조 남근에 여신의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 
러자 죽었던 오시리스는 부활해서 이시스와 사랑을 나누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바로 호루스였다. 
하트헤르 여신의 이름은 원래 '호루스의 관'이라는 의미였다. 하 
트헤르는 매일밤 호루스를 맞이하는 연인이었다. 또한 하트헤르는 
이집트의 왕인 파라오들을 지켜주는 여신이기도 했다. 
애화에게 하트헤르라는 이름을 알려준 기억은 있지만, 호루스에 
얽힌 얘기를 해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애화가 어떻게 호루스를 알 
고 있는 것일까.

"나의 호루스! 당신 앞에서 목욕을 하면 얼마나 멋질까요? 물에 
젖은 나의 나신을 당신께 보이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물속으로 들 
어가서 당신 곁을 돌면... 붉은 물고기가 내 손가락 사이를 반짝이는 
빛을 뿌리며 빠져나가겠지요. 자아, 오세요. 나를 보세요(파울 프리 
샤우어의 '세계풍속사' 중에서)."

애화는 노 교수의 손을 잡고 욕실로 이끌었다.

"애화, 왜 이래?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이 심한 모양이군. 정신 
차려."

노 교수는 그녀를 욕실 밖으로 끌어냈다. 그의 눈앞에 선 이 여 
자는 애화가 아니었다. 마치 하트헤르 여신이 환생을 한 것 같은 모 
습이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는 욕망의 불꽃이 활화산 처럼 타오르 
고 달콤한 향기가 전신에서 뿜어져나왔다. 어떤 남자라도 지금 이 
순간 이 여자의 손을 뿌리칠 수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노 교수는 진심으로 애화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의 사랑 
은 육욕을 초월한 것이었다. 처음 그 가녀린 어깨를 보았을 때부터 
보호해주고 바람막이가 되주고 싶었다. 
그것은 동정심도 이성애도 아니었다. 노 교수는 그런 심리의 정 
체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국제법에는 도가 통한 그였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초보자였다. 여 
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낯간지럽고 장난같은 일로 여겨졌 
다. 그래서 이제껏 독신으로서 학문에만 골몰해왔다. 그런 그가 애 
화에게만은 연민과 관심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트헤르 여신상을 보았을 때 왜 애화의 모습이 떠올랐는지 그 
자신도 납득하기 힘들었다. 아직 소녀티를 벗지못한 애화를 관능의 
여신인 하트헤르와 감히 비교했다니 이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 당 
시에는 애화에게 여신상을 사다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이 여자는 애화가 아니라 하트헤르 여신의 눈동자와 
몸짓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다. 어쩌면 노 교수 자신은 내심 애화에 
게서 이런 모습을 기대했던 것이 아닐까. 그는 가슴이 찌르르해졌 
다. 애화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루스!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했다구요. 어서 내 성 안으로 들어 
오세요. 성 한가운데 양날개 달린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예전처럼 
당당하게 들어오세요." 
애화는 발꿈치를 들고 노 교수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 애화의 손 
은 어느새 그의 바지 앞섶을 풀어헤치는 중이었다. 그는 애화의 두 
팔을 저지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완강한 팔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난 호루스가 아니야. 애화도 하트헤르가 아니구. 제발 정신 좀 
차려봐."

그는 애화의 뺨을 힘껏 때렸다. 불도저 처럼 그를 향해 달려들던 
애화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가지런한 치모가 드 
러났다. 그는 양복 상의를 벗어 그곳을 덮어주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하트헤르 여신상이 들어왔다. 오래전에 읽은 
이집트 신화를 떠올려보았다.

"맞아! 메나트. 저 사슬 목걸이가 범인이야."

그는 여신상을 들어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러자 방바닥에 쓰러 
져 있던 애화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하트헤르의 심벌인 저 사슬을 만지면 누구나 성적인 쾌락에 빠 
져들게 된다고 했어."

노 교수는 파리한 애화의 뺨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한참 후, 
애화는 정신을 차렸다.

"어머나, 교수님께서 여긴 왠 일이세요?"

애화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그 바람에 그의 양복 저고리 
가 스르르 흘러내려 하반신이 드러났다. 애화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 
어 옷을 끌어다 몸을 감쌌다.

"기억이 나지 않니?"

"예."

"애화가 몹시 보고싶어서 왔지. 저녁 먹으러 나갈까?"

"예. 그런데 어떻게 집을 알고 찾아오셨죠? 교수님께 이런 모습 
을 보이다니..."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안절부절 했다. 그 모습이 사랑 
스러워서 노 교수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까지나 이 여자를 보면서 
살고싶었다. 
그 순간, 골목길을 지나가던 한 남자가 바닥에 뒹구는 여신상을 
집어들었다.

"누가 이런 걸 버렸지? 영주한테 주면 아주 좋아하겠는걸."

그는 여신상을 들여다보며 큰 횡재를 한 듯 즐거워했다. 남자는 
소중한 보물인양 여신상을 겨드랑이에 꼭 낀 채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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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단편 키사라기역 下 Yeul 2011.07.17 2331 1
81 단편 키사라기역 上 Yeul 2011.07.17 2479 0
80 장편 11시 11분의 전화-4 Yeul 2011.07.17 2338 0
79 장편 11시 11분의 전화-3 43 Yeul 2011.07.17 2338 0
78 장편 11시 11분의 전화-2 1 Yeul 2011.07.17 2311 0
77 장편 11시 11분의 전화-1 Yeul 2011.07.17 2659 0
76 장편 껌 9 6 Yeul 2011.07.10 5058 1
75 장편 껌 8 Yeul 2011.07.10 3284 1
74 장편 껌7 Yeul 2011.07.10 4848 1
73 장편 껌 6 Yeul 2011.07.10 3182 1
72 장편 껌 5 Yeul 2011.07.10 3128 1
71 장편 껌 4 Yeul 2011.07.10 3390 1
70 장편 껌 3 Yeul 2011.07.10 3843 1
69 장편 껌 2 Yeul 2011.07.10 2965 1
68 장편 껌 1 Yeul 2011.07.10 5350 1
67 단편 [괴담] 입이 있어도 소리내어 읽지 마세요, 토미노의 지옥 7 Yeul 2011.07.10 3913 0
66 사진 [미스테리] 디시의 예언가 6 Yeul 2011.07.09 517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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