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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2.06.28 09:56

대문에 거울이 붙어있는 집

조회 수 1923 추천 수 0 댓글 4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니 열시 반정도를 가리키고 있는 바늘이 보였다.

4월도 중순이 지나 절기상으로는 봄에 접어든지도 두달이 넘었지만,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면 희미하게 입김이 올라올 만큼

추위는 계절이 무색하리 만치 좀처럼 수그러 들지 않아있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여자친구를 집까지 바래다 주기위하여 역을 나와 주택가의 오렌지빛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3층짜리 다세대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이곳은,
 
불야성의 8차선도로 번화가에서 불과 두블럭 가량 떨어졌을 뿐인데
 
구석구석 점점히 박혀있는 어둠과, 기분나쁘게 찌직찌직소리를 내는 붉은 가로등이 그 기분나쁨을 한층 더 하고 있었다. 



여자친구를 집에 바래다 준것은 이번이 수번째이다. 

골목길을 내려다 보고 있는 창문들은 드문드문 기분나쁘고 음울한 형광등 불빛이 새어나고 있었는데,
 
집집마다 창가에 내놓은 잡동사니들로 그 모습이 흉측스러웠다. 
 
무언가를 담가놓은 술항아리, 액자, 망가진 아기인형들이 창가에서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차갑게 응시하고 있었다. 



성남에 몇번 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사리 길을 찾지 못한다고 한다. 

똑같다고 착각하는 것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판에 박은 듯한 집들이 어른주먹 한두개 만한 간격을 두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가 많기 때문이다. 

여자친구가 이사한 곳도 그런 곳이었다. 



그녀를 집에 바래다주고 혼자서 다시 버스를 타러갈 때 마다 

지나치는 길에 한참동안 인적이 끊어진듯한 연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이 있었는데, 그 골목에서 유일하게 단독 주택이었다. 

150센치 정도 되어 보이는 담장위로는 철제로 된 가시방범망이 올라섰고, 
 
담장안으로는 시멘트를 거칠게 바른 안마당이 군데군데 깨지고 갈라진 틈을 따라 이끼들이 피어 있었다, 

창문없이 창틀만 남은 집안으로는 찢겨진 벽지들이 나뒹굴었는데, 

벽에서뜯어진 벽지 뿐만 아니라 천장에서까지 찢어져 내린 벽지가 너덜더덜했다. 

어느동네에나 한두채는 있을법한 폐가였다. 

나 역시 어릴때에 동네에서 그런집들을 보아왔고, 

어린마음에 호기심과 모험심에 동네 친구들과 흉가를 탐험하러 다닌적도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 하면, 영문은 모르겠으나 대문옆에 보통 명패를 걸어두는 자리에 직사각형의 거울이 하나 걸려있었다. 

흔히들 화장실에서 사용할 법한 거울이었는데, 

네모난 액자처럼 생긴 거울은 테두리를 나무결처럼 칠한 싸구려 프라스틱으로 틀이 맞춰져있고, 

그 안으로는 가로등 빛을 받은 골목길이 비추어 붉게 빛났다. 



밤중에 폐가 앞을 지나가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게다가 얼굴높이에 걸려있는 거울은 언제나 내 시선을 붙잡아, 늘 그 기분나쁜 어둠속을 들여다 보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 날은 여자친구를 집에다 바래다 주고 여느때처럼 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다. 

도시의 하늘은 부옇게 어두웠고, 4월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옷깃을 여미며 지퍼를 목 아래까지 주욱 당겨 올렸다. 

조금 큰 길로 내려가면 더 밝고 인적이 조금은 더 많은 편이지만, 
 
버스정류장까지 최대한 빠른 길로 가기 위해서 좁다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주머니에 찔러넣은 왼손만을 살짝 꺼내어 핸드폰 폴더를 열어보고는, 발길을 재촉했다. 

신기하게도 단 한번도 이 골목을 지날때 사람을 마주친적이 없다. 

이 골목에서 마주치는 유일한 사람은 흉가 앞의 나 자신이었다. 

 

골목의 중간쯤에 다다랐을때, 반사적으로 붉은 거울을 쳐다 보았다. 

때론 눈길을 주고 싶지 않아도, 움직이는 대상을 향해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간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을때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는 창틀안에 누군가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을때, 심장이 물고기때가 뛰어오르듯 가슴에서 뛰쳐 나올것만 같았고, 잠깐동안 발이 땅에 붙어버린것 같았다. 

수초간의 정적이 흐른후 나는 큰길을 향해 달렸다. 

운동화가 콘크리트 바닥을 치며 쿵쿵 거리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고, 옆으로 맨 가방은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렸다. 

큰길로 나오자 마치 다른세계에서 빠져 나온듯한 기분이었다. 

큰길에는 아무일 없이 차가 다니고 있고,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수백명의 학생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신호등에 선 수백명이 남학생, 여학생들이 내는 말소리, 웃음소리, 괴성에 평소라면 귀가 따가웠겠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폐가쪽을 바라봤을때, 누군가 있었다. 

밤과 어둠이 주는 긴장감에 헛것을 착각할까 싶어 집중해서 보았을때, 원피스를 입은 사람이 이쪽을 바라봄을 알았다.

탁구공처럼 동그랗게 눈을 부릅 뜨고 이가 다 보이도록 웃고 있는 여자. 



그 표정을 본 순간 멈출수 없는 떨림과 공포를 느꼈고, 달아났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 mp3를 들었는데, 무엇을 들었는지도 전혀 모르겠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서 엘리베이터를 보았더니, 둘다 꼭대기 층에 있었다. 

별로 높은 층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냥 계단으로 빨리 올라가기로 했다.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고, 빨리 잠들어 아침에 눈을 떴을때는 모든걸 잊어버리고 싶었다. 



계단을 오르자 층계안에 내 발소리가 울리면서 감지등이 켜졌다. 

2층을 지날때는 2층쪽 등이 켜지고 1층쪽 불은 꺼졌다. 

다시 2층을 지나갈때 3층 등이 켜지고 2층쪽은 꺼졌는데, 1층에다시 불이 들어왔다. 

아래를 쳐다본 나는 몸안에 공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비명을 힘없이 히익하고 내뱉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여자가 계단 난간 사이로 3층을 올려다 보고있었는데.
 
머리는 피떡이 져있었고, 입이 찢어지도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달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2층불은 켜지지 않았다. 



'죽는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토할것 같았다. 

황급히 몸을 돌려 내달렸다. 

아파트복도로 향하는 철문을 열고 열쇠가 들어있는 가방주머니를 잡아 찢듯이 열면서 달렸다. 

열쇠를 잡은 손은 로션과 땀이 섞여 미끌거렸지만 열쇠를 놓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움켜잡느라 손톱에 손등이 할퀴었고, 

그 열쇠를 어떻게든 문에 꼽아 넣으려고 열쇠를 문에 찔러넣으려 할때마다 열쇠와 현관문이 부딪히며 딱딱 소리를 냈다. 

 

어떻게든 문에 열쇠가 들어가자, 뒤도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벗었다기 보다는 신발이 벗겨졌고, 자물쇠란 자물쇠는 모두 채웠다. 

한참동안 복도는 조용했고, 복도에 설치된 감지등 조차 꺼졌다. 



문을 열어 밖을 내다 볼 엄두는 안났다. 

방범창이 달린 작은 방의 창문은 복도와 맞닿아 있지만, 창문으로 내다볼 용기도 없었다. 

조용히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있었다. 



베란다 아래로 차들이 이따금씩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지날때마다 불꺼진 거실이 한번씩 밝아지곤 했다. 

조금은 정신이 돌아왔다. 

이미 입고있던 티셔츠는 앞뒤로 땀에 젖어 미지근한 단내가 올라오는 듯 했다. 



다시 복도에 감지등이 켜지는게 보였다. 

이 틈에 잠깐이나마 복도를 확인해보려고 인터폰을 들었다. 

부웅하고 회색의 화면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보이는 현관앞을 비췄다. 

아무도 없었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말하는 동안 다시 생각이 나고 밤새 잠조차 이루지 못할만큼 공포에 떨까봐 그냥 자고 내일 아침에 얘기하려고 마음먹었다. 



자켓을 벗어서 식탁의자에 걸쳐놓았다. 

빨리 샤워하고 그냥 자야지, 빨리 자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무서우면서도 왠지 한번 더 확인해보고 싶어진 나는 다시금 인터폰을 들었고,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듯한 공포감에 경악했다. 



집앞에 그여자가 있었다. 

부릅뜬 동그란 눈으로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는 여자가. 

그리고는 손에 무언가를 들고 카메라를 향해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화면을 끌 정신이 없었다. 

안방으로 달려가 옷도 벗지 못한채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엎드렸다. 

사지가 떨리고 입에 침이나고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복도에서 카각카칵 하고 찍는 듯한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공포감과 고요함속에서도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깨었을때는 밝은 햇살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탓에 긴장감도 거의 없었다. 

헛것을 본건지 착각을 한건지 꿈을 꾼건지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할수 없을것 같은 느낌속에서 입고 잔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폰을 다시 들었는데, 복도는 조용하게 비어있었다.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바깥에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으려고 외출준비를 했다. 

현관문을 나왔을때 나는 할말을 잃었다. 

인터폰카메라에는 찍히고 긁힌자국과 금이 가 있었다. 

1.jpg





  • ?
    시부라미야 2012.07.01 17:30

    오 개쩐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섬뜩하내........ 여자친구 앞으론 못대려다주겟네욬ㅋㅋㅋㅋㅋㅋ

  • ?
    MA 2012.07.04 01:46

    허헐.. 그여자뭐지.;ㅁ; 무서운데....

  • ?
    할버지 2012.07.04 13:59

    섬세하게 잘 적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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