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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0jtyy




집은 컸다.

아니, 집이라기보단 저택에 가까웠다. 어른 키를 훨씬 웃도는 높이의 철문 너머로 스산하지만

웅장해보이는 벽돌 구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원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근까지 관리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것 같았다.

새벽의 어둠과, 그리고 약간의 안개에 감싸여 있어 윤곽선이 흐려져있지만

분명 낮에 보았다면 열에 여덟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군, 하고 판단을 내릴 그럴 모양새였다.

하지만 D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느낌이 딱 온다니까'

D는 자신만만했다.

'내가 왜 이 바닥에서 대부로 불리는지 알아? 집 대문만 봐도 안에 세간살이가 얼마나 되는지,

훔쳐갈만한 사이즈인지, 그리고 나중에 뒷탈이 없을만한지 바로 보인단 말이거든'

그가 이 바닥에서 과연 대부로 불리는지까지는 내가 알바가 아니어도(내가 그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건 이제 겨우 두달째였다) 여지껏 같이 털어온 집에서 얻은 수입을 생각할 때,

꽤 신뢰할만한 실력을 지녔다는건 인정할만 했다.

대부인지 아닌지 몰라도, 그가 선택한 집을 털어서 나오는 현금은 진짜였다.

심부름센터에서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준다거나, 예상일보다 일찍 터져버린 그날에 당황한 비즈니스

우먼들의 생리대를 배달해가는 일 따위보다는 더 넉넉한 보수가 들어왔고,

나로선 그걸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범법행위인가 아니인가를 따지기엔 나는 바르게 교육받은

얌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느낌이 달랐다.

마땅찮는 표정을 짓는 내앞에서 D는 시종일관 자신만만했다.

'자 보라구, 분명 스산하고 관리가 안된 저택이지만, 저 안에는 훔쳐갈만한게 많아.

다른 뭣도 아니고 내 직감이랄까, 그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구. 다른 곳은 상상할 수도 없어.

더구나 이 집은 주인이 없는 상태야. 아침부터 망원경으로 감시했는데도, 코빼기 하나 안보였으니까.

나도 물론 뭐 금붙이나 보석 따위를 기대하는건 아냐. 하지만 말이야, 저 안에는 뭔가가 있다구'

D는 손가락으로 저택 창문을 가리켰다. 어두운 창문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역할이란건 단순했다. 혹시나 일어날 무력적 사태에서 조금 터프해질 것(다행인지, 아직까지

그러한 일은 없었다) D는 다른 무엇도 아니고 그것만을 원했다. 주먹쓰는 일을 하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체격이 좋다거나 키가 큰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그런 일을 맡겼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D는 뭐래도 좋다는 인상이었다. 실제로 그가 집을 털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예 위험을 배제하고 도둑질을 하는 그에게 나의 포지션이란건 딱히 별다른 의미가 없을게 뻔했다.

그래서 주로 내 임무는 그가 자물쇠를 딸때 옆에서 손전등을 들고있거나, 작업중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조심스럽게 염탐을 하고 오거나, 조금 무거운 물건을 가지고 나올때 더 힘을 쓰는 정도였다.



D가 현관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밤의 싸한 공기가 커다란 문 내부에 묵어있던 공기와 접촉하며 쉬이익- 빨아 들이는 소리가 났다.

어두웠다. 달빛이 거의 없는 밤이긴 했지만, 문은 발을 들여놓기 꺼려질 정도로 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자 들어가자구'

D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굉장히 넓은 집이었다. 애초에 산중에 숨어있는 이런 고저택 자체가

일반인의 가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은퇴한 해외파 기업의 총수들이나, 신흥 재벌이 아니라

뿌리부터 부가 내려온 묵직한 거부들의 느낌에 걸맞는 저택이다. 아마 모럴한 기업이나 컴퓨터 관련된

사람이 구매한 것은 아닐것이다. 집은 거의 일제시대때의 고건축 느낌을 가지고 있다.

눈이 어둠에 서서히 익었다.

걷다보니, 회랑 양 옆으로 수없이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문 입구부터 지금까지 쭉 걸려져있던것 같았다. 그림은 하나같이 지독하게 뻔한 정경화들 뿐이었다.

D가 코가 거의 닿을듯이 그림을 관찰하다가 값이 나가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걸음을 계속 옮겼다.

그래도, 대단하다. 입구에서부터였으면 적어도 백여점은 넘을 것이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야트막한 회랑이 갑자기 둥글게 넓어지며 커다란 응접실로 변했다.

높게 달려있는 창문으로 어설픈 달빛이 흘러들어와, 먼지가 잔뜩 쌓인 벽난로와 고풍스러운

가죽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소파는 장정 열이 앉아도 좋을만큼 충분히 넓었다.

'돈 냄새가 난다'

D가 말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일게다. 아무튼 이번 집까지 틀리지 않는다면 7전 7승이니까.

그가 워키토키를 건넸다.

'첫째, 응접실이나 각종 방에 바닥에 깔린 러그를 들쳐볼 것. 금고가 있을 수 있으니까.

둘때, 그림이 아니라, 인물화이거나 혹시 사진이 걸려있거든, 액자를 빼 볼것. 역시나

금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셋째, 값나가는 물건이 보이면 즉시 내게 연락을 취할 것'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내가 할 것이라곤 없다. 여지껏 털었던 집 모두 D가 찾아낸 금고나 보석류가 주 수입원이었다.

내가 기를 쓰고 뒤져봐도, 그러니까 정말로 베개 커버를 찢거나 액자를 내팽겨치거나 해봐도

소용없는 것을 D가 고개를 갸웃거린후 슥 들쳐본 러그 아래에서나 커다란 성경 사이에서 금고,

혹은 현금이 다발로 발견되는 것이다. 어차피 D가 찾아낼 것이다.

담배를 꺼내 물었다. 끝이 발갛게 타오르며 응접실이 한층 더 어둡게 보였다.

D가 찾아내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가족 앨범, 졸업 앨범, 가족 사진 등지에서 그가 집을 터는 가족 구성원의 사진을 훔쳤다.

기준은 있었다. 여자, 가능한한 어릴 것, 되도록 고등학생.

가녀릴 것, 긴 머리일 것, 피부가 하얄 것. D가 원하는 취향들을 종합해본, 그러니까

그래서 D가 정한 타깃의 소녀들은 일단 예쁘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가택을 찾아내 물건을 훔쳐내면서 D는 소녀들의 신상 정보도 훔쳤다.

그게 D의 대단한 점이었다. 그것은 누군가 알고 싶다고, 그러니까 훔치고 싶다고 훔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핸드폰의 최근 통화목록과 문자 목록을 뒤져서, 그녀들의 통근 시간과

각 시간대에 어느 장소에 있는지를 유추해냈다. 학원, 학교, 과외, 혹은 시내.

번호를 훔쳐내고, 그녀들이 어느 시간대에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그는 그녀들의 방과 그녀의 가족들의 방에서, 이를테면 온갖 자질구레한 정보들을 가구나 냄새등에서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질구레한 정보는 그의 머리속에서 여러가지 가정을 거쳐

그에게 상당히 중요한 포인트로 바뀌는 것이다.

D는 그렇게 얻어진 정보들로, 그녀들을 강간했다.

7전 7승이라는건 그런 의미다. 7가택, 7명의 소녀.

하교하는 길. 학원을 마친 골목길. 친구와 어울린 뒤의 홀로 귀가길.

D는 적확했고, 타깃이 혼자가 되는 때를 무섭도록 예리하게 캐치해냈다.

그가 더 완벽한 이유는, 타깃을 고르는 조건이 깨끗하다는데 있었다.


사고자들은 전혀 신고를 하지 않았다.

'난 말이지. 다 보여. 당하고서도 끙끙 앓다가 결국 아무말도 못하고

입다무는 여자들. 그런 부류들이, 한눈에 들어와.

젊다기보다는 어리지. 그리고 크면 예뻐지겠다는, 그러니까 나도 알고있다니깐! 하고 

귀여운 콧대를 세울 정도로의 자신감이 깃든 살짝 성숙한 어린애여야하지.

본인은 예쁘고 더 예뻐질것이지만 아직은 깨끗해. 남자와 섞이는건 나중일거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어느 순간에, 확 뜯겨지는 거야. 꽃잎이 말이야.

투명한 바닷물이 있는 지중해의 섬, 그리고 욕실엔 장미꽃잎이 떠있는 욕조.

그리고 단단한 몸을 가진 핸섬한 미래의 어느 남자와, 자연스럽고 합리적으로 섞일 생각을 하는

그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가래침이 있고 오줌냄새가 나고, 불량식품 껍질이 나뒹구는 공간에서

그렇게 시작되고 말아버리면은, 끝나는거지.

이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고질병이야. 당한 여자를 더럽게 보는 시선.

그리고 알아? 내가 이 나라에서 살면서 배운건 딱 하나야'

D가 앞니 사이로 침을 뱉었다.

'써먹을 수 있는건 최대한 써먹으라는거야'

어쩌면 그는 금품을 터는것이 아니라, 그러한 자신의 기벽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택털이라는 형태의 범죄를 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모든 행동의 주체와 기술의 근본은 D에게 있음에도 그는 절반이 넘는 금품에 의한 수입을

내게 주었다. 그의 목적은 돈이 아닌 소녀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었다.

D는 항상 라택스 장갑을 끼고 작업했다. 지문이 남겨지지 않기위해서였다.

그리고, 항상 고무막대를 준비해왔다. 그 막대에는 출소한지 얼마안되는 가택털이범들의 지문이

찍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철수하기 직전 그 막대를 사방에 찍고 나온다.

그 지문의 주인은 지금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서 술에 뻗어 곤드레 만드레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D와 나의 업무처리방식이었다. 약을 먹이고, 술을 먹이고, 아무도 모르는 허름한 여관방에

처박아둔다. 그리고 자연스레 사건이 종료된 후 경찰은 그자를 체포해간다. 일상이다.


D는 항상 마무리를 하고 나올때, 스페어키 팩에 집 열쇠의 모양을 찍어두고 나왔다.

'한순간에 땅으로 떨어진 소녀들이, 건강하게 일상에서 자리잡아 가는 것을 보기 위해서'

가 그 이유였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특별히 예술에 대한 감식안이 있다고 할만한 정도도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진들은,

아름다웠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모습, 등교할때의 모습, 하교할 때의 모습, 그리고 D가 힘들게 촬영해낸

잠을 자는 모습. 검고 길지만 맥없어 보이는 머리카락. 하얗다고만 하기엔 더 짙어진 피부.

다크서클. 깊어진 눈동자. 조용해보였다.

초록색 저수지가 조용히 침잠해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수면아래에서는 거대한 물뱀이 누구도 모르게 활개치고 있었다. 사악한 물뱀.

물을 휘젓고 있었다. 사방으로 유영을 하며 물 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흰 이마에 옅게 땀이 나고, 앞머리가 달라붙어 있다.

정리정돈되어있지만, 동시에 흐트러져 있었다.


그건 침범이었다. 파괴당한것이고, 아직은 도달해선 안되는 공간에 침범한 이물에의 경계였다.

아마도 D가 단순쾌락 때문에 이러한 일을 벌이는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가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벌이는 것을, 자기충족으로 받아들였다.

이건 결과물인거였다. 그가 창조해내고 그가 안배한 사건의 결과물. 그리고 그것이 다시 자리잡아가는

그러한 과정이다. 스스로 상처를 내고 그게 아물어가는것을 보는 것처럼.

'개는 말이야. 아무리 족보가 있는 명품 암컷이라도, 동네에서 뒹구는 근본없는 잡종과 한번

붙어먹고 나면 말이야. 더 이상 명품이 아니야. 끝난다고. 순결의 상실따위는 집어치워.

그건 개한테 가져다붙일만한게 아니야. 사람이 강조하는 가치인거지.

개는 말이야..

암캐는 한번 잡종의 정액이 주입되고 나면, DNA가 변해. 다시는 순종의 새끼를 낳을 수 없어.

몸이 흡수해버리는거지. 그리고 잊지않아 육체는. 붙어먹은 수컷으로 인해 바뀐 유전자

구조가 그대로 가는거야. 대대손손, 자자손손. 절대로 완전해질수 없어.'

D가 담배를 태워 물었다.

'남기는거야, 나도. 흔적이 평생 가는거지. 남는 장사잖아'




워키토키가 울렸다.

'뭐 찾은것 있나?'

나는 없다고 대답한다. 그가 이러한 것을 물어올때면 이미 돈될만한 무언가를 찾았다는 뜻이다.

아니면 다음 타깃을 찾았다거나. 하지만 나를 위해서인지 항상 돈으로 치환될수 있는것들을

그는 먼저 찾았다. 역시나

그가 응접실로 내려와 수확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금반지 몇개, 진짜 큐빅으로 된 목걸이 하나,

순 은으로된 파이프담배 하나.

'엄청난걸 찾았다구'

D는 끝이 반짝거리는, 그의 말에 의하면 끝이 다이아몬드로 가공된 골프채를 내민다.

나는 그것들을 말없이 가져온 보따리에 챙겨 넣었다. 내가 있던 응접실 역시, D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금새 여러가지 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현금 조금, 진주 목걸이, 그리고, 가족 사진.

내가 그가 발견한 것들을 마져 주워담고 나자, 그는 느긋하게 바닥에 앉아 가족앨범을 폈다.

4인 가족이다. 엄마, 아빠, 큰 딸과 둘째 딸.

근엄한 아버지와 밝은 엄마, 나이차이가 좀 많이 나는 두 딸. 첫째는 벌써 결혼을 한 모양이었고,

둘째는 늦둥이였다. 교복을 입고 가족과 찍힌 사진속에서 웃고 있다. 다음 타깃이다.

구름이 걷히면서 달빛이 한순간에 응접실로 쏟아져 들어왔다. 환한...웃음이다.


D는 꼼꼼하게 사진을 읽고 있다. 그렇다. 그는 사진을 '읽고' 있다.

정보를 독해하고 있는 것이다. 심해속에서 커다란 바위에 흡착한 문어처럼, 빨판을 열고

온 다리를 뻗어 그것을 조사하고 있다. 끈적하고 관능적인 탐구다.


그때였다.

인기척이 들려온다.

D는 바짝 몸을 긴장시킨채 일어났고, 나는 처음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무력사태에 추이를 상상하며

불길하게 일어났다. 우리는 지금 저택 응접실, 그러니까 1층에 있다.

하지만 말이 1층이지, 지지대가 높은 집이라 비스듬이 올라오는 복도를 통해보면

2층에 가까운 높이다. 

'확인해봐'

나는 D의 말을 따른다. 응접실 중앙에있는 커다란 조경창문을 통해, 우리 이후에 저택을 찾은

불청객이 누구인가 확인한다. 그리고 D를 다시 쳐다본다.

D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다가와 내 옆에 서서, 정원을 바라본다.

머리카락이 곧고 길다. 밤의 어둠과 뒤섞여있지만 그래도 긴 생머리라는것이 분별된다.

얼굴은 희고, 작았다. 뉴욕 양키즈의 로고가 달린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안개싸인 밤에 한기로부터 회색 후드집업을 입고, 통이 좁은 청바지로 감싸인 두다리가

저택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이 집의 막내, D의 타깃이다.

D가 침을 삼킨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데'

나는 어쩔거냐고 묻는다.

'돈은 충분해, 장물아비한테 맡기면 작은거 다섯장 정도는 나올거야.

우리의 사업방면에서는 충분한 이익이 이루어졌어. 문제는, 문제는 내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야.'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설득하려한다.

이건 당신의 방식이 아니지 않느냐. 바로 이집에서 성폭행이 이루어지면 잡힐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준비한 지문의 잡법은 왼쪽 손가락이 두개가 없는데, 후에 저 소녀의 증언에서

사실이 엇갈릴 경우 여지까지 해왔던 모든 작업이 드러날 염려가 있다..

'그런건 걱정할 필요가 없어. 나는 누가뭐래도 프로니까. 그냥 저열한 욕망에 사로잡혀서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한심한 녀석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말이야,

내게 있어 이건..'

그는 한템포 망설이지만 이윽고 말한다.

'예술.. 그래 예술이야. 고귀한거지. 허겁지겁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고 사방에 흔적을 남기는

짐승들과 난 달라'

나는 다시 만류한다.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해본다.

이건 '당신'의 방식이 아니지 않느냐. 이건 내가 알던 'D의 방식'이 아니다.

여긴 계획된 장소가 아니고, 당신도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오늘은 오늘의 전리품만 챙겨서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하자.

'아냐..그렇게는 안돼. 나는 항상 내 느낌을 믿었어. 그리고 느낌은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어'

그렇다면은 하는수 없다고, 나는 수긍한다. 어차피 리더는 내가 아니다.



D가 자신의 성기를 처음 보여주었을 때가 생각난다.

첫번째 집을 털고 난뒤, 신문에서 그 집의 졸업앨범에 있던 여자아이의 사진과 굉장히 비슷한

모자이크 사진이 성폭력 피해자로 나온걸 본 뒤에(얼굴엔 모자이크가 있었지만, 

개 두마리를 양손에 안고 웃고있는 여자아이의 구도란 틀림없이 똑같았으니까)

D는 자신의 '일련의 행위'에 대해 내게 말했다. 단순히 집착증과 독특한 취미로 사진을 수집하는 줄

알았던 내게 그의 고백을 사실 예상을 뛰어넘는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기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야쿠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했다. 알록달록한 도깨비 문신이 성기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놀랍게도 성기를 요도를 기준으로 두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뱀의 혓바닥처럼.

'튜닝이지. 끝부분을 조금씩 절개해나가면 결국은 이런 모양이 나와. 오래걸렸지'

그의 말하는 투로 미루어 짐작했을때, 그건 '흔적'을 남기는 그의 붓이자 펜이었던 것이다.

특별히 혐오스럽진 않았다. 그저 공중 목욕탕을 가기엔 무리겠구나, 생각했을 따름이다.



소녀가 걸어들어 오고 있었다. 열려있는 응접실 문을 보고 흠칫했다가, 어두운 회랑을 따라걷고 있다.

확신컨데, 아직은 어둠에 눈이 익지않았으리라. 이집에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기억에 의지해

회랑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D가 안대를 꺼냈다. 일단 시야를 제압하려는 생각이다. 그리고 증거도 잡히지않으려는 생각이다.

'팔을 잡아'

그가 소리를 내지않고 입모양으로만 말했다.

우리의 눈은 어둠에 익어있다. 소녀는 아니다.

우리는 중간에서 마주치기로 결론을 보고, 소녀가 들어오고있는 회랑쪽으로 소리나지않게 

발걸음을 옮겼다.


D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완벽한 짐승이다. 아니, 욕망의 짐승이 아니라 사냥의 순간에 모든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그런 짐승이다. 야수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그의 걸음은 점차로

회랑 중간에 다다랐다. 

D가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땀이 흐르고 있다.

중간에 이르렀지만, 소녀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이곳으로, 어둠속으로 발을 디디며 천천히 오고 있을 것이다. D가 거쳐간, 그러니까

'흔적'을 남긴 수많은 소녀들이 그랬듯 그녀도 본인이 그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불현듯,

갑자기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서 흐릿, 떠올랐다.

천천히 걷는다. 아담한 체구다. 어깨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할 것이다.

눈이 크다. 어둠속에서 한껏 확장된 동공이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작다. 다리도 가녀리다. 아직 무르익기엔 기간이 남은 여자 아이다.

D가 접근한다. 나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낸다.

2M 가까이 접근하자, 소녀가 멈춘다. 동공이 정지한다. 그리고 우리가 서있는 방향을 쳐다본다.

..보이지 않지만 무언가 있다. 우리를 감지한 것이다. 그것이 여자로서의 본능이던지,

아니면 보다 약한 짐승이 갖는 근본적인 위험 메커니즘이던지,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그녀는

조금 알아챈것이다.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것을 대단하게 생각한다.

D는 소녀를 쳐다보고 있다.

지척에서, 다섯걸음 거리에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접근하기 시작한다.

공기를 밀어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다. 소녀는 얼어붙은듯 꼼짝하지 않는다.

손뻗으면 닿을만한 거리다.


그리고 나는 골프채로 D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일어났어요?

알아요 알아... 그 동안 같이 충실하게 서로의 이익을 책임져준 파트너가 왜 갑자기

이런 엄한 짓을 하는가.. 그게 궁금하다는 눈초리잖아.

피 좀 봐. 내가 너무 세게 내리쳤나봐요. 딱 한대였는데.

그래도 죽을 정돈 아닐거에요. 나름대로 힘 조절을 했거든요. 아무튼 왜 그런지 되게 궁금한거 같은데,

이야기 듣고 싶다면 눈동자를 깜빡이시고. 피가 좀 흘려서 빈혈이다, 못듣겠다 싶으시면 그냥 계시고.

그래, 궁금하죠? 궁금할테니까, 설명해줄게요.

나 D 형 안싫어해요. 뭐 감정도 없어요. 심부름센터에서 오만 잡일 다하다가 형이랑

몇건 하니까 금방 돈 되더라구요. 좋잖아요.

여자애들 강간하는거야, 뭐 장려할만한 사항이 아니라는거야, 저도 인정한다구요.

근데 내 밥그릇이 더 중요한데, 어쩌라고. 세상 더럽다는것만 주구장창 배워왔는데

그까짓거때문에 때려칠순 없는 노릇이시고. 뭐, 우리 서로 죽 잘맞았잖아요?

나는 돈 벌고, 형님은 그 '예술', 그거 하시고.

근데요.

그 '예술' 말이에요.

그거 형만 하는거 아니더라구요.

내가 심부름센터 초창기 애송이였을때, 사람을 죽여봤어요. 중년 아저씨 하나를.

나한테 살해의뢰가 들어왔어요. 그거 알아요? 그런것도 들어온다구요. 고양이 찾으러다니거나,

대리주차해주거나 하는일도 있지만 우리도, 그거, 뭐시냐. 그래 히트맨. 살인청부업도 한다니까요.

죽이고 싶은데, 못죽인다. 치정관계, 원한관계때문에 조사도 들어올거고. 그러면 영 불안하다.

그런데, 범죄경력도 없고, 지문도 없어서 조회도 안되는 우리같은 돈에 미친 거지새끼들은

그거 큰거 한장, 또는 큰거 두장에 그냥 하는거에요.

무시하지마요. 미제 살인사건의 70%는 심부름센터 짓이니까. 아닐거같죠?

피해자와 연관이나 관계가 하나도 없고, 교차점이나 공집함이 0%인 범인이 사람을 죽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잡아?

경찰이 초동수사에서 방향 잘못잡으면 끝이에요. 범인 못잡아요.



1년전인가, 내가 사람을 죽였어요. 죽였는데, 죽여놓고 시체를 가만히 들여다 보니깐 너무 궁금한거에요.

이 배나오고 기름기 좔좔 흐른 대머리 아저씨를 왜, 누가 대체 왜 죽이라고 했을까.

처음 사람 죽이고 담배하나 피워물면서 손가락 덜덜 떨리는거 진정시키고보니까, 궁금해지대요.

알잖아요, 나 궁금한거 못참는거. 밤에 센터 문땄죠.

찾아봤죠. 안되는게 어딨어요. 근데, 하, 참.

딸인거야. 딸내미더라고. 의뢰자가 친딸이에요.

사장이 나중에 일 틀어지면 비켜가려고 나름대로 흥신소 써서 잡아놓는 증거품이 몇개 있더라고요.

그게 말이죠. 증거품이,

포르노인데, 온갖게 다 나와.

그냥 대단해 이건. 열일곱 여자애가 교복을 입고 나와. 원맨쇼야.

그 수많은 동영상 주인공이 다 애더라니까.

장르가 총집합이야 그냥. 개랑 하는것도 있고, 지 아빠가 묶어놓고 하는것도 있고, 술처먹은 친구들

데려와서 하는 것도 있고, 야외에서 하는것도 있고, 딸내미 학교에서 하는 것도 있고, 하여튼

인간 수컷이 생각해낸 모든 장르와 체위와 구도와 상상력이 총망라된 그런 DVD가 있더라고요.

그래요. 죽일만한 놈이었구나! 죽을만한 놈이었구나!

나는 무릎을 쳤고, 죄책감이 사라졌어요. 그새낀 죽일만한 놈이었으니까.

판사에다가 돈을 억대로 벌어들여도 자기 친딸을 강간하는 개 쓰레기였으니깐.



근데 형이 타깃을 여기로 이집으로 정했어요. 오늘 밤.

난 만족했었어요. 보수도 받을만큼 받았고, 그냥 이번 일 마지막으로 하고 해외로 도피해서

살 계획이었거든요. 근데 왜 여기냐구. 하필 여기냐구.

내 의뢰인은 해외에서 심리치료 받는걸로 아는데, 왜 1년이나지나 여기를 기어들어오냐고.

내가 서재에서 그 판사님을, 야구빠다 딱 하나 가지고가서 갈비뼈 부수고,

무릎뼈 부수고, 손가락 부수고, 어깨 부수고, 해서 마지막에 골통을 박살내달라는 그 세세한

지령도 다 칼같이 지켜낸 왜 이집으로, 쳐다도보기 힘든 이 집으로 가택털이를 하러 오느냐구요.


형.

D형.


난 형한테 감정 없어요. 근데 알죠? 우린 돈따라 도는거. 사실 우리가 아니라 사회가 그래. 그쵸?

우리 돈따라 돌잖아.


맞혀봐,

내가 우리 의뢰인 딸내미, 제 아빠 죽이고 얼마를 받았게?


내가 그 복도에서, 그 여자 머리가 아니라 형 대가릴 골프채로 깔 수 밖에 없었던거, 

이젠 이해가지?

큰거 한장, 두장에 목숨걸던 불쌍한 인간이 큰거 열장에도 코웃음칠만한 돈 받기로했는데,

내 이쁜 의뢰인을 죽이면 안되잖아요. 안그래?

근데.

내 의뢰인이 돈을 더 주겠대. 떵떵거리며 살만큼 그때 받았는데, 알잖아. 우리같은 놈팽이들

며칠사이에 도박장에 다 꼴아박는거...

그런 내가 다시 눈돌아갈만큼 주겠대.

제가 직접 제 아빠 죽였어야되는데, 그게 원통해서 꿈에서 매일 죽여버리는데..

그래도 분에 안풀려서 그 자리라도 직접 보려고 찾아왔대요. 그러다가,



세상에 우리 아티스트 형님이 여기 있잖아!



여기 형이 만든 예술 앨범이 있어. 내 의뢰인의 아버지, 판사님이 영상미의 대가였다면

형은 아무래도 피사체를 기가막히게 잘 잡아내는거 같아. 구도가 예술이야.

영혼이 담겨있어. 내 의뢰인도 보면서 감탄하더라구. 눈동자가 마구 돌아가더라니까.

형 사진에 분명, 자지도 안나오고 젖가슴도 안나오는데.

그 어린 여자애들 눈동자, 표정, 분위기만 보고 알더라고요.

형한테 장난질당한거를!


그리고 하는 말이,


여자 영혼가지고 예술하는 우리 D형, 형 넘겨주면 돈을 더 주겠대요.

형 몸값이 장난이아냐. 어마어마해.


그 여자애가 형가지고 뭘 할지는 나도 모르겠어. 자기는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데.

자신한테도 미련이 없는 여잔데, 남한테는 말해 뭐하겠어?

심지어 우리 위대한 '예술가' 형님한테는 말해 뭐하겠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형, 난 이제 가볼게. 되게 한참만에 깨어나서 모르겠지만, 장장 3시간을 기절해있었어.

난 그 시간동안 내 의뢰인이 시킨 심부름하고 온거야. 톱이랑 메스를 찾더라고.

새벽시간에 겨우 철물점 문을 두드려서 겨우 사온거야. 다 녹슬었지만 그래도 겨우 구해온거라고.


D형.

우리 피차간에 감정은 가지지말자.

원래 예술가들은 죽어서 더 유명해진다고 하잖아.

'유작'이 자화상이라는거, 그거 참 멋있잖아?

잘있어. 이만 가볼게. 







http://r.humoruniv.com/W/fear6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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