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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을 시켜도 정현의 화는 풀리지 않는다.

 

"확실히 점마는 내 동생이 아이다......"

 

찬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치킨 한 마리를 비웠다. 원래 그의 동생이었던 정현은 아무리 화나도 치킨 한 마리면 화가 풀리곤 했다.

 

하지만 동생 정현의 화는 풀리지 않는다.

 

찬현은 이도 닦지 않고 침대에서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또 의미없는 주말이 지나간다.

 

 

Nirvana의 노래 Lithium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Sunday Morning Is Everyday For All I Care

 

 

뭔 상관인가 묻는 사람이 있겠는데, 사실 아무 상관없다. 그냥 가끔 저런거 넣으면 있어보이더라고.

 

 

아무튼 찬현의 주말은 잠과 배설, 컴퓨터 뿐이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태현과 거미상자는 피아제를 추적하느라 바빴다.

 

마법사가 된 거미상자와 그의 동료들 - 대부분 노무현에 원한을 품은 마법사 들이다.-은 오늘도 펜들럼과 마법진을 통해 피아제의 마력을 추적하고 있었다.

 

이상한 주문을 외우며 불을 지피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태현은 저것들과 개독이 다른게 무엇인가 고민했다.

 

한참동안 의식을 진행하던 마법사들이 탈진하여 쓰러지고 잠시 후 거미상자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온다.

 

"알아낸거 있냐?"

 

태현은 얼마 전 새로 산 mp3를 끄며 물었다. 참고로 이 mp3는 5년 뒤까지 쓰이는 것이다.

 

"조금은."

 

"뭔데?"

 

"여기서 한참 남쪽에 있어."

 

"......병신아 거야 당연하지. 봉하마을이 경남 김해에 있는데. 자살할려고 서울에서 거기까지 갔겠냐?"

 

"......"

 

한참 말이 없던 거미상자는 십분쯤 침묵을 지키더니 시뻘개진 얼굴로 소리쳤다.

 

"노, 노사모일 수도 있어."

 

"하, 어쨌든 남쪽에 있는거지."

 

"어."

 

"경상도 쪽이면 좋겠다. 간만에 고향도 내려갈겸."

 

태현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락 펴락 했다. 이미 몸은 5년 뒤의 그것처럼 강인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정신상태도 5년 후의 그 것처럼 썩었다는 것이다.

 

현재의 그는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과격한 성격이 되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전라도쪽부터 돌아다녀보자고."

 

"거기 뒤통수 쩌는데."

 

태현은 투덜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방학까지 한달 반 남짓 남았다.

 

"......현지나 볼까."

 

여전히 미련을 못버린 그는 이 당시, 중학교 2학년의 정현지를 찾아 학원가로 향했다.

 

2년 뒤에 처음 만나고 그로부터 1년 뒤에 사귀게 되는 소녀는 그 때처럼 키가 컸다. 키가 작은 편이라 키 큰 여자 앞에선 주눅이 드는 그가 어떻게 고백을 했고 또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는 미스테리다.

 

언제나처럼 소녀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집에 가고 있었다. 반에서 맘에 드는 남자 아이 얘기,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 싫어하는 아이의 뒷담화. 모두 익숙하다.

 

밤바람에 날리며, 주황빛 가로등 불빛을 품은 생머리에 왠지 모를 눈물도 난다.

 

"씨발. 생각해보니까 이번엔 제대로 할 수 있을텐데......"

 

꼭 생고생을 해서 미래로 돌아가야할까?

 

지금부터 꾹 참고 재수없이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어 저 아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도 있을텐데......

 

그는 무의식적으로 왼 손을 들었다. 중지부터 소지까지 손톱에 푸른 매니큐어가 칠해진 듯 하다.

 

3년 뒤에 일어날 일이 환영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

 

 

 

-이거 조금만 생각하면 쉬운건데, 나 이거 가르쳐주면 뭐 사줄거야?

 

-으음, 아무것도 안 사줄건데.

 

-뽀뽀해주겠지 뭐.

 

 

 

-아 차거! 뭐하는거야?

 

-매니큐어 발라줬지롱.

 

-이걸 왜 바르는데.

 

-가르쳐줘서 고맙다구.

 

 

 

-저거봐, 저게 북두칠성이야. 이쁘지?

 

-이런다고 화 풀릴줄 알고? 딴거도 찾아줘.

 

 

 

한참을 생각하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너 우리학교 맞지? 여기 청소년수련관 어떻게 가는지 알아?"

 

뒤를 돌아본 태현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어, 넌......"

 

바로 그의 첫사랑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와 처음 만난 것도 이 쯤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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