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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2.03.13 19:54

톨게이트 1

조회 수 1116 추천 수 0 댓글 0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실제 지명은 사정상 밝힐 수 없습니다.)


재원이는 내키지 않았던 내게 귀찮을 정도로 그 여자를 만나보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재원이는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던가, 
이상한 환자가 들어오게 되면, 나를 불렀다.
그날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항상 들어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날도 역시 병원은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비가 내려서인지 그 느낌은 더욱 으시시하게 느껴졌다.
특히 철문으로 닫혀있는 정신병동에 들어갈 때는 일말의 공포까지 느껴졌다. 
재원이가 정신과 레지던트 선배에게 한참을 졸라 허락을 미리 받았다고 했지만,
워낙 패쇄적이고 엄격한 곳이라 밤 늦은 시간에 남의 눈을 피해 찾아가야 했다.
재원이 말로는 자기와 친한 선배가 당직일때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우리가 찾아간 것이 알려진다면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이었다.


음산하고 캄캄한 정신병동 복도를 따라 한참을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원 제일 구석에 있는 격리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선배 레지던트는 그 격리실 문을 열기전에,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재원이에게 얘기했다.
“조심해라! 무슨 일 있으면, 즉시 뛰어나와서 날 부르고! 스테이션에 있을테니...” 
그 말에, 생각없이 여기까지 따라온 나는 갑자기 으시시함이 느껴졌다.
격리실 안에 말 로만 듣던 미친 연쇄 살인마라도 있다는 듯한 말투였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격리실 문을 여는 소리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격리실안의 불을 켜자, 서너평 남 짓한 하얀 병실에 침실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졌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정신병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압박복을 
입고, 침대에 묶여져 있는 것이었다. 꽤 발작이 심한 환자처럼 보였다.
그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광기와 공포가 뒤섞인 눈빛이었다.
첫 눈에 봐도 그 여자가 험한 일을 당한 것 처럼 느껴졌다.
재원이가 구석에 있는 의자를 두개 끌고와 그 여자 머리맡에 앉아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지연씨, 제가 지연씨 얘기 믿어줄 신문기 자를 데리고 왔으니 그 얘기 다 해주세요
...이 분은 정말 지연씨 얘기 다 들어줄 거예요...”


재원이의 거짓말 덕분에 갑자기 기자가 된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시선
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 여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치곤
괴기 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내게 얘기했다.
“기자 아저씨, 내 모든 얘기 다 해줄테니, 제발 날 여기서 꺼내줘요!
여기 이렇게 있다간 그 사람이 나를 죽이러 온다니까!”
나는 머뭇거리며 최대한 도움이 되어 드리겠다고 했지만,
정신병자를 속인다는 것이 마음이 걸렸다.
하지만 그 여자에게서 풍기는 괴기함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무슨 얘기 인지 꼭 듣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는 침대에 묶여있는 미친 사람일지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여자는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보였고, 얘기 중에도 계속 주위를 돌아보는 
등 불안해 보였다.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
그 여자가 들려준 얘기는,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게 되었는지
설명 아닌 설명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일 줄은 아직 모르지만... 아니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아마 제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여기 의사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으니까...
아직도 그 사람이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예요.
꿈속에서 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언제가 나를 데리러 오겠죠. 지옥에서...
그러니 빨리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줘요! 제발!!! 제발... 흐흑......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통행료 받는 일을 했었어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이었죠...
그 일을 5년동안이나 하고 있었죠.
아시다시피 육체적으로 힘든 일은 아니에요.
다만, 매연을 들이마시며 하루 8시간씩 자리에 앉아 돈을 받는 일이란 단조로움과의 
싸움이지요.
일이 단순할수록 스트레스도 많은 것 같았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담당하는 톨게이트는 충청북도 P시로 나가는 곳이었어요.
아주 작은 곳이었죠.
통행료 받는 곳이 왕복 6개 밖에 없고, 그나마 평상시에는 3곳을 운영해요. 추석 등
의 명절때를 제외하고는요...
추석때 말이 나와서 그렇지, 그때는 정말 난리가 나요.
바로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면 큰 공원묘지가 있었거든요.
추석때만 되면, 하루종일 한번도 쉬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에게 통행료를 받아야 해요.


이런 일을 하다보면 별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요.
돈 없다고 배째라하는 식의 운전사들, 술취 한 채로 운전하고 오다가 톨게이트에 차를
박는 사람들, 졸고 있다 통행료를 내고 있던 앞 차를 박아 싸우는 사람들, 통행증을
잊어버렸다며 그냥 통과시켜 달라는 사람들, 납치범들, 범죄자들, 차 막혔다고 욕하고
가는 사람들...
정말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되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말 없이 돈만 내고 가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한 마디도 않하고 끝날 때도 있어요.
사람들과 차는 많이 지나가지만, 마치 무인 도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지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이 되면, 하루종일 문을 열고 일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아요...
눈이나 비 올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바로 비오는 밤마다 나타났어요...
날씨가 스산해지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항상 우리 톨게이트를 지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 사람인줄 알게 되었냐고요?
처음에는 그냥 우연인 줄 알았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연은 그리 많지 않은 일 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가을 어느 비오는 날이었어요.
작년에는 여름에 가뜩이나 비가 많이 와서 전국이 난리가 났었는데, 가을에도 역시 
비가 많이 왔어요.
가을비 내리는 밤은 특히 톨게이트에서 일 하기에는 참 나뻐요. 
낮에 비해 쌀쌀하고 손이 시려울 정도죠.
그날도 평범한 날이었죠. 다만 밤에 혼자서, 간간히 지나가는 차의 통행료를 받는다는 
것이 무료할 따름이었죠.
같이 당직인 숙자언니는 피곤하다며, 내게 톨게이트를 맡기고 톨게이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자러 들어갔어요.
밤에는 돈받는 톨게이트는 하나만 열거든요.
그런데 그 날따라 비가 심하게 내려서인지, 정산소안의 전등이 나갔어요.
통행료 정산기는 말짱한데 전등만 나간 거예요...
사실 그런 일은 종종 있거든요, 그럴 때 대비해서 손전등과 촛불은 항상 준비되어 있죠.
돈은 줘야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불이 나간 날은 재수 없는 날이지요.
어두컴컴하고 한적한 곳에 혼자 앉아 밤을 지새야 하는 것이니까요. 더구나 지방의 
소규모 톨게이트는 아시다시피 인적이 가장 뜸한 외곽이 있잖아요.
비까지 내리는 음산하고 으시시해졌어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등을 들으면서 빨리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죠...


밤 2시쯤 되었을까...
지나가는 차도 뜸해지고 저도 슬슬 졸려오기 시작했어요.
비는 그칠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고, 잠깨라고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DJ의 졸린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잘 나오던 라디오가 지지직 거리더니 잡음만 들리는 것이었어요. 
몇번 만져봐도, 계속 잡음만 들렸어요.
비때문인가 생각하고 고개를 들어 고속도 로쪽을 쳐다보니, 빗속을 뚫고 천천히 들어오는
차 헤트라이트가 보이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백번이상 보는 헤트라이트 불빛인데, 그때는 이상할 정도로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이유 모를 무서움이 느껴진 것이죠.
어둠속에 혼자 있다는 것이 갑자기 무섭게 느껴진 것이죠...
그 불빛은 저의 두려움을 아는 것처럼 천천히 다가왔어요.


나는 괜히 겁먹을 필요없다며, 손을 내밀어 표를 받을 준비를 했어요. 그 차는 비속
에서 천천이 미끌어져와 정산소 옆에 섰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잘 안보이는 거예요.
원래 정산소에 앉아있으면,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은 다 볼수 있거든요.
정산소는 검문 목적도 있고 해서, 그렇게 만들어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얼굴은 이상 할 정도로 어둠에 쌓여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라는 생각에 표를 받으려고 손을 내미는데. 갑자기 그 사람으로부터
뭐가 썩는 듯한 기분 나쁜 냄새가 확 나는 것이었어요.
그러고는 어두운 차안에서 불쑥 손이 나와, 표와 함께 돈을 내밀었어요.
자기가 낼 금액을 이미 아는지, 돈을 같이 내는 것 같았어요.
저는 괜히 머리 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돈과 표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표와 돈이 젖어있는 것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젖었으려니 하고, 표에 묻은 물기를 닦기 위해 책상위에 있는 휴지를 
집어 들었어요. 젖은 채로 표를 정산기에 넣으면 고장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 순간 그 차는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출발해 버렸어요,
너무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황한 저는 멀어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쳐다보았지만,
번호판은 물론 아무 것도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그 차의 뒷모습을 보고, 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차 운전사 가짜 
돈을 내고 도망가는구나 생각했어요. 밤이 되면 가끔 그런 식으로 아무런 종이나 
내놓고 도망가버리는 차들이 있거든요.
그 차도 그런 차인줄 알았아요.
혹시나 하고 젖어있는 돈의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비춰보았어요.
처음에는 색깔이 이상해 돈이 아닌 줄 알았어요.
시커먼게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했어요.
그때 번쩍하고 번개가 쳤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방은 환해졌죠.
그 순간 저는 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놀라 움직일 수 없었어요.
돈과 표에 묻은 것은 빗물이 아니라, 새빨간 핏물이였던 것이었어요.
몸서리를 치며, 그 피묻은 표와 돈을 치웠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 지직거리던 라디오가 제대로 켜지고, 정산소안의 불도 들어왔어요.
이상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표와 돈을 줏어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차에 탔던 사람이 단지 코피를 흘렸다거나, 손을 베서 피가 묻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어요.
피묻은 표와 돈을 집어들자, 왠일이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등골이 오싹해졌어요.
그래서 대충 핏물을 휴지로 닦아내고, 말리기 위해 책상 구석에 치워놨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는데, 숙자 언니가 정산소로 들어왔어요.
이제 자기가 교대해줄테니, 사무실에서 눈 좀 붙이라고 했어요.
그날 밤은 더 이상 정산소에 혼자 있기가 무서워 그냥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사무실 당직실에 누워, 그 피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기억나지 않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데, 웅성웅성하는 소리 때문에 잠이 깼어요.
눈을 떠 보니 어느 새 환한 아침이더군요.
밤새 내리던 비는 그쳐있고...
사무실에는 출근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고요.
저는 퇴근 준비나 할 생각으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있던 소장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이었어요.
사무실안에 있던 우리들은 소장님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에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수화기를 내려놓은 소장님은 자기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다보더니, 심각한 
목소리로 그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어요.


‘여러분, 이제부터 야간 근무할 때는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세요.
지금 들은 얘긴데, 어젯밤에 경상남도 L톨 게이트에서 야간 당직을 서던 직원이 살해
당했데요. 그것도 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군요.
뭐, 팔이 잘리고, 목이 난도질당한 채로 발견되었데요...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통행료를 노린 강도일 것 같으니
각자 조심하도록 하세요... 휴... 세상이 너무 무서워지고 있어...’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 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 때는 담배라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지 
숨돌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요.
사실 다들 비슷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지 냄새가 고약한 대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갔지만 피를
닦아내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아있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살해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 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당직을 계속 바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 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니 괜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 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 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 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고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 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 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요. 왠지 모르게 
사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온 몸에 힘이 풀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 쪽을 바라보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었어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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