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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1.11.15 17:06

껌 2부 [1]

조회 수 1490 추천 수 0 댓글 1
[7Days] - 첫째 날(1)









모름지기, 날씨가 추워지면 사무실 안에서 전화나 받고 있는 게 최고로 편한 법이다. 

한 겨울에 벽돌을 나르고, 땅을 파는 일용직 근로자들을 보면 절로 불쌍한 마음이 든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 추운데 씻지도 못하고 며칠씩이나 잠복을 하는 형사들의 생활은 한 마디로 고역이다. 

추울 때는 그냥 유치장이나 상황실, 아니면 여성청소년 상담실 같은데 짱 박혀 있는 게 최고로 편하다. 


강희도 처음에는 그랬다. 

거친 남정네들이랑 며칠씩 밤을 새다가 이 곳, 

남대문 경찰서 여성청소년계로 근무처를 옮긴 후의 며칠간은 정말 편했다. 

일단 더울 정도로 스팀이 빵빵하게 나오는데다, 냉장고를 열면 항상 간식거리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강력계에 몸담고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600원짜리 빵을 500원에 사 먹으려고 구멍가게 주인들과 얼마나 오랫동안 싸워왔던가. 

다른 형사들은 얼굴에 철판 깔고 슬쩍슬쩍 잘도 집어 먹었지만, 

여자라는 성별의 장벽 때문인지 강희로선 쉽지 않았다. 


여긴 천국이다. 

경찰들의 이상향이다. 

강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주일을 보내왔다. 

아니, 사실 그렇게 생각한 건 3일째 까지였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아침부터 걸려오는 전화벨소리가 심상치 않다. 

강희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소파에는 계장이 누운 듯 걸쳐 앉아 잔뜩 쌓아놓은 무가지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일명 바코드 머리에 전형적인 꼰대 스타일이라고 강희는 늘 생각했다. 

물론 하는 짓도 꼰대였다. 

우연찮게 계장의 컴퓨터에서 본 ‘비둘기’ 폴더를 강희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안에 있던 수백, 아니 수 천 장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홀딱 벗고 요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자들이 주인공이었다. 

같은 여자인 강희는 대충 이들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명색이 여성청소년계 계장이라는 사람이 어린애들 야한 사진이나 모으고 있다니, 

강희는 하드 포맷이라도 시키고 싶었으나 후환이 두려워 그냥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강희는 계장의 얼굴만 보면 예전에 자신이 검거했던 50대 유아 강간범이 떠오르곤 했다. 

동료형사가 말리지 않았으면 아마 그 강간범은 강희 손에 죽었을지도 모른다. 

강희는 그 날 과실치사까지 각오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몇 번의 벨소리가 더 울리자 계장이 강희를 향해 눈을 흘겼다. 



“강희씨 전화 왜 안 받아. 나보고 받으라는 거야 뭐야?” 



강희가 한숨을 내쉬며 수화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여성 청소년계 경사 이강희입니......”



-야 이 씨팔년아!



강희의 말을 톡 끊고 상대방이 다짜고짜 욕설을 내 뱉었다. 

순간 어벙벙해졌던 강희가 잠시 헛기침을 하고 말을 받았다.



“저 죄송합니다만. 다짜고짜 욕을 하시면 곤란......”



-뭐 이 씨팔년아! 개같은 년놈들아!



강희의 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강희를 슬그머니 쳐다보던 계장이 강희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버린다.



“이보세요. 민원 사항이 있으시면 절차에 맞게 해주셔야지 이게 무슨 짓입니까.”



수화기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몹시 흥분상태라는 것이 느껴진다.



-내 몸을 거쳐간 경찰 놈들이 몇 명인 줄 알아? 씨팔 거기 난다 긴다 하는 새끼들은 거의 다 나한테 쳐 들

어왔었어 알어? 씨팔 진상은 진상대로 부리고, 이렇게 뒤통수를 쳐? 몸 파는 년들은 사람도 아니냐? 엉?



매춘부인 모양이었다. 

아마 며칠 전에 특별단속기간에 걸린 가게 중에 하나인 것 같은데, 

정확히 4일 전부터 강희를 미치게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명예훼손입니다. 매매춘이 불법이라는 건 알고 계시잖아요. 이건 당연......”



- 씨팔년아. 호로년아. 너는 거기 있어서 잘도 깨끗하겠다? 씨팔 너 같은 년이 원래 더 더러운 거 알어. 저

녁 되면 문 잠그고 높으신 꼰대들 돌려가며 그 짓거리 하지? 이년아 너나 나나.



강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귀에서 김이 나온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말조심해요! 당신 지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는 건지 알기나 알아? 통화 상이라 처벌 못할 것 같......”



- 닥쳐 시팔! 처벌을 하든 말든! 내 인생은 이미 쫑 났어. 그러니까 씨팔 과장새끼 바꿔. 과장 바꾸라고!



“과장이 한두 명인 줄 알아요? 당신 명예 훼손을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 씨팔년아!



강희의 분노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다. 

반쯤 자세를 틀어 강희 쪽으로 몸을 돌려놓고선 애 써 신문을 읽는 척하는 계장이 얄미웠다. 

따지고 보면 단속 리스트를 잘못 건네준 계장의 잘못이 가장 컸다. 

그 동안은 사전의 경고를 하고 가게들이 대비할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잘못된 리스트 덕에 대비하지 못 한 가게들이 잔뜩 걸려버린 것이다. 

사실 성매매는 불법이므로 경찰의 단속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바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고, 마땅히 이직할 곳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일자리를 잃은 매춘부들의 강력한 반발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사전경고제라는 타협책이 이 바닥에서는 암묵적인 약속으로 굳혀졌다. 

물론 이를 위해 업소들이 경찰 쪽에 뿌린 돈도 만만치 않았지만. 



“이봐 당신. 말조심하라고 했어!”



강희가 말했다.



- 어쩔건데! 어쩔건데! 좆같은 년아!



강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야! 이 미친년아!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우습게 보이냐? 죽을래?”



깜짝 놀란 계장이 신문을 덮고 벌떡 일어났다. 

강희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썅년아. 너 어디냐. 척추를 접었다 폈다 해 줄까? 내가 누군지 모르나본데......”



“이강희!”



계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강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씨발 남대문 강력계, 악녀 이강희다. 알았냐?”



- 악녀 같은 소리하네. 또라이 같은 년이.



강희가 아예 수화기를 입에다 갖다 붙이고 소리쳤다.



“너 어디야, 이 쌍년아!”



“그만두지 못 해!”



계장이 달려들어 강희의 전화기를 빼앗아 끊어버렸다. 

홍당무처럼 얼굴이 시뻘게진 강희가 씩씩 거리며 전화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 너 뭐야. 누가 형사 출신 아니랄까봐. 자꾸 지랄 맞게 전화 받을래?”



“그러면 계장님이 전화 받아 보세요. 솔직히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계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하극상 하는 거야 뭐야. 여자라고 오냐오냐 해 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강희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는지 귀 밑이 툭 튀어나와 있다.



“아휴 진짜 속 터진다, 속 터져. 그러니까 민간인한테 총이나 쏘고 다니지.”



강희가 고개를 들고 날카로운 눈매로 계장을 쳐다보았다.



“그 얘긴 왜 하시는데요?”



강희의 눈빛에 주눅이 들었는지 계장이 헛기침을 몇 번하며 눈을 피한다. 



“그러니까 똑바로 하라고. 전화하나 제대로 못 받으면서 무슨 일을 하겠다는 거야.”



계장이 다시 소파로 돌아가 신문을 집어 들었다. 

강희는 그런 계장을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민간인한테 총을 쐈다는 얘기는 강희에겐 가장 큰 트라우마였다. 

그리고 형사과에서 안전과로 옮겨진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계장은 강희의 치부를 건드린 것이었다. 

부아가 치밀어 오른 강희가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으로 계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또 다시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이번엔 제대로 받아.”



계장이 슬쩍 강희를 쳐다보며 말을 툭 던졌다. 

하지만 계장의 말을 무시하고 강희는 거칠게 수화기를 들었다. 



“어휴 저 성질머리하고는.”



계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강희는 최대한 성질을 죽이기 위해 노력하며 조용히 말을 꺼냈다.



“네, 감사합니다 여성청소년계......”



- 씨팔년아!



방금 전의 그 여자였다. 

가까스로 유지했던 강희의 인내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다.



“야 이 미친년아! 죽을래!”



강희가 소리쳤다. 



- 뚜우 뚜우 뚜우



그러자 돌연 상대편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희는 또다시 씩씩거리며 수화기를 쾅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계장은 똥 씹은 표정으로 강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막 뭐라고 말을 꺼내려는 찰나 또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딸칵



“미친년아!”



강희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 어, 흠흠. 



수화기 너머로 굵직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 여전하구만.



강력계의 양반장이었다. 

깜짝 놀란 강희가 수화기를 고쳐 들고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저, 저, 그, 그게 아니고, 아, 아. 오랜만입니다 반장님!”



- 그래 오랜만이야. 역시 그 악녀 이미지는 버리지 못하는구만. 



강희의 얼굴이 또다시 달아올랐다. 

이번엔 화가 나서가 아니라 몹시 창피해서였다. 



“아, 그, 그게 아니에요.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래 됐고. 오늘 부로 복귀해. 지금 당장 내려와.



“네, 네?”



- 과장님한테 허락 받았으니까. 복귀하라고. 자세한 얘기는 밑에서 하지.



“예, 예 알겠습니다. 지금 내려갈게요.”



- 급하니까 바로 내려와.



양반장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강희는 멍하니 수화기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복귀하는데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라고 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장님 시말서까지 쓴 터라 도리가 없을 거라고 양반장도 혀를 내둘렀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복귀를 하라니. 

찝찝하긴 했지만 강희로선 좋은 소식이었다. 

이곳에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잠시나마 이곳을 천국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자신에겐 현장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발에 맞지도 않는 구두를 벗고, 다시 운동화 신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강희가 주섬주섬 짐 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누구한테 온 전화였어?”



계장이 물었다.



“아아. 형사 2팀에 양반장님이에요.”



“그런데?”



강희가 짐을 담은 가방을 어깨에 걸쳐 메었다.



“오늘 부로 복귀하래요.”



계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나한텐 한 마디 말도 없이?”



“난들 아나요? 과장님 지시라는데.”



그러면서 강희가 쓰윽 자리에서 걸어 나왔다. 

계장이 벙 찐 표정으로 강희를 쳐다보았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계장님 전화 받으시죠.”



모처럼 강희의 입가에서 미소가 돋아났다. 







  • ?
    비회원 2011.11.17 10:37
    쥔장님 껌 이소설 출처가 어디죠? 출처는 밝히는게 예의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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