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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3.03.26 02:57

[훗카이도 여행 6] 전력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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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력으로 달렸다. 치사율 100%라는 도플갱어한테서 도망치려고. 믿고 의지하던 존은 없다. 주변에 있는 것은 적뿐이다. 좁은 빌딩 옥상. 도망갈 곳 따위는 없다. 나는 출입구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있다. 뒤에는 내가 있다. 나에게 접촉되면 나는 죽는다. [그래, 이 십새꺄, 이제 어떡할래? 귀찮게 굴지 말란 말이야!] 남자가 신경질 내며 소리친다. 도플갱어가 다가온다. 나는 이때,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도망치는 방법을. 도움을 받는 방법을. 나는 옥상 펜스를 타고 넘었다. [이것은 꿈이다. 꿈이다. 현실이 아니다.] 나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눈앞에는 지옥의 광경이 보인다. 생각보다 높다. 뒤를 되돌아보니, 내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그때 미치광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비웃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살 것이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반드시 살 것이다. 뛰어 내린다. 여기서 뛰어내린다. [이봐!! 확실히 여기는 현실이라고!! 떨어지면 나름대로 아플 건데!? 너, 참을 수 있겠어!?] 남자가 나에게 묻는다. [너만은 반드시 용서하지 않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빌딩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격통. 이 말 빼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빌딩에서 뛰어내린 나는 다리부터 떨어졌고,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마치 개구리처럼, 비참하게 땅바닥에 달라붙었다. 내 주위에는 빨간 피가 펴지기 시작했다. 의식이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격통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 죽어 가는 개구리가 부르르 떨듯이, 내 몸도 똑같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빌딩 입구에서 나오는 내가 보였다. [오.. 오는구나...] 도플갱어는 나의 눈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아파서 도망칠 수도 없다. 나는 나에게 졌다는 생각을 하기 싫었다. 또 다른 내가 주저앉아서, 나의 등에 손을 올리고서 [이제 자리 잡고 살겠구나.] 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내가 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 완전한 동화. 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감각. 나는 나에게 녹아들었고, 나의 마음을 지배했다. 이 순간, 존이 도플갱어에게 접촉되면 확실히 죽는다고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어둠이 전신에 퍼진다. 나는 끝났다. 끝난 것이다.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어이없는 어둠 속으로 나는 튕겨 나갔다. 패배의 감정이 내 안에 넘치기 시작했다. 나는 몽롱해졌다. 살고 싶은 희망 같은 건 하나도 없다. 죽는 편이 낫다. 그냥 죽고 싶다. 정말로 그것뿐이었다. 뭐든지 좋다. 죽을 수 있다면 줄이라도 기름이라도 나에게 주라. 자살하고 싶다. 스스로 죽게 해 줘. 뭐든지 한다. 그러니까 나를 스스로 죽게 해 줘. 나는 도플갱어에게 완전히 지배되고 있었다.

 

 

[형님.] 아침. 존이 부르는 소리에 눈이 깼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호텔이었다. 여기는 내가 있었던 호텔방이다. 나는 몸을 만지작거렸다. 어디에도 이상은 없다. 존이 커피를 내민다. [괜찮습니까, 형님?] 나는 확실히 도플갱어에게 접촉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살아난 건가? 현실을 파악할 수 없었다. [혼란스럽겠군요, 형님. 이제 괜찮습니다. 저도 이제는 보입니다. 저놈이 형님의 적이에요.] 존의 말에 나는 놀랐다. [형님께는 죄송하지만, 형님의 방화벽을 일시적으로 약화시켰습니다. 예상대로, 적의 본체가 형님을 침입했습니다. 생각대로입니다.] 나는 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일부러 그놈을 유인한 거야?] [그렇습니다. 형님을 미끼로 유인했습니다. 물론, 형님의 안전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대책을 세운 뒤에 실행했습니다.] 뭐가 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단숨에 커피를 다 마셨다. [냉정해지자, 존. 나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설명해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존은 담배에 불을 켰다. [적은 형님의 분신인, 도플갱어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적은 상당한 실력가입니다. 하지만 사장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적은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즉, 그 남자는 실력은 A급이라도 경험은 얕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노렸습니다. 적이 형님의 도플갱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도 형님의 도플갱어를 사용하기로요.. 적도 자신 이외에 도플갱어를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겠지요.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겠죠.] 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도플갱어? 어디에?] 나는 계속 물었다. 영문을 모르겠다. [형님은, 적이 만든 빌딩 옥상에 선 시점부터, 형님은 사장님이 만든 도플갱어로 대체되었습니다. 의식이 완전히 없으면, 눈치를 챌 수도 있기 때문에 반 정도는 형님의 의식을 넣었습니다. 형님은 비록 무서운 경험을 겪었지만, 덕분에 저와 사장님은 그 남자에게 들키지 않고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형님의 적들을 완벽하게 속이고 있는 동안, 사장님은 본체가 되는 그 남자에 대해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부터 탐정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럼 그렇게 미리 말해주던가..

 

 

낮. 나는 식빵 한 장을 앞에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밤새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도, 식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식빵 한 장도 먹기 어려웠다. [존, 아까 사장이 그 남자를 조사한다고 말했지?] 스파게티를 입안 가득히 넣은 존이 말했다. [네. 사장님은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홋카이도로 갔습니다.] [홋카이도?] [사장님이 저 남자에게 침입해서 자리를 잡은 겁니다. 아마도 그 남자, 지금쯤 애먹고 있을 겁니다. 사장님한테서 절대로 도망칠 수 없을 겁니다.] [응, 존. 근데 그 녀석은 역시 살아 있는 인간이야? 그런 걸 살아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야?] 존은 스파게티를 다 먹고 카레라이스에 손을 댔다. [저도 놀랐습니다. 사장님 말고도 그런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요. 처음 봤어요.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춘 인간이 있었다니..] 존은 카레라이스를 다 먹어치우고, 이번에는 돈까스덮밥에 손을 댔다. 식욕이 없는 나로서는, 존이 먹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인다. [앞으로는 체력이 필요할 테니까, 많이 드세요. 저녁까지 사장님이 본체역할을 하는 그 남자를 누를겁니다. 즉.... 클라이막스에요. 형님.] 그렇게 존은 상냥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을 들은 나는 식빵에 버터를 바르고 단숨에 먹어치웠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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