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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3.03.26 02:47

지하동굴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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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BQvki




눈을 떠보니, 저는 병실에 있었습니다.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팔에는 주삿바늘이 찔려 있었고, 저는 누워있는 상태였습니다. 상반신을 일으키는데도 3분 가까이 걸렸습니다. 창문을 보니 예쁜 저녁노을이 보였습니다.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저 혼자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나타났습니다. 간호사는 저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그대로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담당의사나 다른 의사들이 몇 명 들어오고,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지만, 저는 여전히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정신도 없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흘러서 조금씩 의식도 되살아났습니다. 의사는 [아까 00군의 가족을 불렀어요. 00군은 오랫동안 자고 있었지요. 이제 걱정 안 해도 좋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일어나서도 시간의 감각을 잘 알 수 없었지만, 드디어 어머니인 듯한 사람과 젊은 여자아이가 울면서 병실로 뛰어왔습니다. 그 여자는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저의 이름이 아닌, 전혀 처음 듣는 이름을 부르면서 저를 끌어 앉았습니다. 어머니를 자칭하는 그 여자는 [다행이다... 다행이다...] 라며 울면서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여자아이는 저에게 [오빠, 어서 와요..] 라고 말하며 쓰러져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여동생이 없었습니다. 저보다 세 살 많은 대학생 형은 있었지만, 여동생은 없었습니다. 저는 [누구시죠? 누구시죠?] 라고 몇 번이나 물었습니다. 의사는 [후유증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겁니다..] 라는 말을 어머니인 듯한 여자와 여동생인 듯한 여자아이에게 격려하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누운 채로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고, 그때 의사에게 [저는 00도 아니고 여동생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음.. 기억이 조금.. 음..] 이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습니다. [00군은 2년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져있었어요. 그래서 기억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소리를 들었어도, 저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서 충격을 받을 기력조차 없었습니다. 의사는 말을 고르면서, 저를 계속해서 격려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인 듯한 사람은 제가 기억 상실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화장실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일어설 때, 발이 엄청 무거웠고, 일어서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동생인 듯한 사람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화장실에 간다고 생각하니, 그날 밤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화장실이 무서웠지만, 저를 부축해준 의사와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볼일을 마치고 거울을 본 순간, 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굴이 저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딴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패닉에 휩싸여, 미친 듯이 난동을 부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후 1개월 가까이 입원해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부모를 자칭하는 남녀와 여동생을 자칭하는 여자아이, 그리고 문안을 온 친구와 담임선생님에게 [저는 00가 아니고, 당신들을 모릅니다.] 라고 계속 말했습니다. A와 B에 대해서, 그리고 저의 과거와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범위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했지만,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득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의사의 이야기로는 제가 길에 쓰러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하고, 그대로 병실로 실려갔다고 합니다. 저에게 들어오는 이 세계의 정보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여기는 도쿄입니다.] 라고 말하면, [도쿄가 뭐야? 나는 도쿄를 몰라.] 라고 말합니다. 대충 이런 식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의사는 [그럼 그게 뭐야? 설명해줘.] 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A의 이름도 기억나질 않아서 그저 같은 반 친구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아이는 없어.] 라고만 말했습니다. 그 시설에 들어가서, 정체 모를 고리 속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의사에게 몇 번이나 필사적으로 설명했지만, [그건 자고 있었을 때 꿨던 꿈이야.]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저 자신이 [나는 기억상실이다. 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자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너는 기억을 상실했고, 내가 알고 있던 사람과 세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사람들의 이런 말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실이 뭐든지 간에, 저에게는 딴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선택권이었습니다.

 

 

퇴원 후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에게 끌려가듯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기억 안 나니?] 부모가 그렇게 물었지만, 모든 게 처음 보는 것들이었습니다. 거리, 집, 그리고 저에 대한 것들. 저는 전문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필사적으로 이 새로운 인생에 순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인생을 살면서, 저에게 들어오는 단어나 정보에는 위화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갈라졌습니다. 예를 괴담돌이 현이나, 괴담블로그 같은 나라의 이름은 처음 듣는 것이었고, 옛날 역사와 역사상의 인물도 금시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상에서 쓰이는 단어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의자나 리모콘. 일상 회화는 전혀 위화감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해지지 못해서 높임말로 이야기하거나, 저의 속옷이 빨리는 것을 보기 싫어서 제가 직접 빨았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제가 살았던 이전의 인생은 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저의 머릿속을 서서히 지배해가자, 전에 살았던 인생의 기억들은 조금씩 사라져 갔습니다. 유일하게 선명하게 남아있던 부모님의 얼굴과 형의 얼굴. 그리고 친구들의 얼굴과 제가 살았던 거리의 기억들도 점점 잊혀 갔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밤만큼은 절대로 잊히지 않았습니다. 종교시설에서 겪었던 기억만은 분명히 떠올랐습니다. 특히 만면의 미소를 짓고 저를 바라보던 그 노인의 얼굴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상담 회수도 줄어들고, 6개월 후에는 학교로 복귀했습니다. 스무 살로 고등학교 3학년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친구도 사귈 수 있었고, 나름대로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본적이 없는 프로그램뿐이라 매우 신기했습니다. 가나가와 현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도시 생활도 굉장히 즐거웠던 기억이 듭니다. 하지만 학교로 복학한 지 4개월 정도 지난 후에 의외인 경우가 생겼습니다.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공통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정확히 여름방학에, 저는 숙제 때문에 책방에서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0000] 라는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책은 틀림없이 제가 마지막 날 밤에 침입한 신흥 종교의 이름이었습니다. 저는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손에 들고 미친 듯이 읽었습니다.

 

 

[0000]는 이 세계에서 상당히 거대한 종교단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었던 세계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명의 신흥 종교단체였지만, 이쪽에서는 세계적인 종교단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종교와 관련된 책을 몇 권이고 사서 이것저것 읽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였습니다. 단순히 읽기만 할 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되돌아갈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저의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변에 이야기해 본들 [그것은 의식이 없었을 때 0000가 꿈에 나온 것뿐이다.] 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었습니다. 모처럼 학교에도 복학하고, 과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저를, 안심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상담받으러 다닐 고통을 생각하니, 저는 보고도 못본척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게 17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지금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월급쟁이입니다.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이런 글을 쓰려는 마음을 먹었는가 하면, 지난 달, 저의 집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습니다. 익명으로 쓰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갑자기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도 저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을 찾는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신은 00이라는 이름입니다만, 기억하고 있습니까? 또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이 편지의 내용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혼약자에게도. 부탁합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00이라고 불려도, 저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만, 이전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 내용의 편지가 왔지만, 불가사의하게도 공포심도 기대심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남의 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는 지난주에 또 왔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저의 이름은 00입니다. 당신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죠? 아무래도 이 세계에는 당신과 저뿐인 것 같습니다. 이번 달 25일 19시에 00역 앞의 00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반드시 혼자 오십시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00이라는 이름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만나러 갈 생각입니다. 그날 밤의 멤버라면, 이야기를 해보면 누구인지 압니다. 가능하다면 B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써서 남기자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글을 혼약자와 집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여동생에게 남겨뒀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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