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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3.03.16 00:58

[실화괴담] 운명을 뒤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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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찻집의 '귀율'님이 작성한 글 입니다.



외할머니께서는 오래 전부터 ‘운명’에 관해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매일같이 거실에서 불교나 도교 방송을 틀어 놓으시고,

운명에 관해 나오는 방송이라면 어떤 방송이라도 찾아 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디서 사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손금에 대한 책이나 별 점에 관한 책과 같은 수 많은 운명에 관련된 책들을

매일마다 붙잡고 읽고 계셨기 때문에 할머니께 말을 붙일 기회조차도 없는 정도 였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께 할머니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여쭈어 본적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약간인지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대답 해주셨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예전에 할머니께서는 운명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지만

지금처럼 집착의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저 심심하실 때, 사주 집으로 가셔서 운세나 알아보시는 것이 다 셨다고 하니 말입니다.
 



할머니의 관심이 집착으로 바뀐 계기는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고 합니다.

정말로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주무시던 중 돌아가셨으니

할머니께서는 운명이 할아버지를 잡아 먹어 버렸다 하시면서

저렇게 운명에 집착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매일마다 운명에 대한 책을 읽으셨습니다.

저도 한 번 들춰 본 적은 있지만 거의 모두가 한자로 되어 있어

단 몇 문장도 읽지도 못했던 지겨운 책을 매일같이 읽으셨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할머니에게 운명에 대한 것 말고도 관심거리가 있다라는 것 입니다.

이제 막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제 여동생이 바로 그 관심의 대상입니다.


 
저와는 달리 귀여운 여자애라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께서는 항상 제 동생과 붙어 있으셨습니다.

학부모 참관 수업도 따라가실 만큼 여동생을 이뻐하셔서 질투가 난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와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들어왔을 때였습니다.

여동생이 평소엔 잘 울지를 않는데, 그 날 따라 엄청 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 인생에 있어서 처음 보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여동생을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정말 섬뜩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말 그 충격 때문일지는 몰라도 정적의 시간은 너무도 오래 지속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고요함을 깬 것은 할머니께서 저희를 돌아보시더니 무언가를 말씀하셨을 때 입니다.


 
“ 이제 오래 살겠어. 정말 오래 살겠어. “


 
할머니께서는 활짝 웃으시며,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방긋한 웃음에도 여동생은 계속 울었습니다.

얼굴을 가리며,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얼굴을 보려 해도, 여동생은 얼굴을 돌리며, 저를 피했습니다.

동생은 계속해서 저와 어머니의 손을 피해 가며 울고 있던 터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도저히 모를 때였습니다.


 


 
여동생의 얼굴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다름 아닌 피였습니다. 피가 제 손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버지께서 여동생을 붙잡고, 손을 겨우 벌려 본 결과,

여동생의 얼굴은 무언가 예리한 것으로 긁힌 듯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당황스러워 할 때였습니다.


 
“ 내가 얼굴을 오래 살 상으로 만들어 줬다. 이제 정말 오래 살겠어. “


 
할머니께서는 그 사건이 있은 후, 몇 주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할머니를 따라 정확히 이런 일이 있고 세 달 뒤 자동차에 치어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몇 주전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이 넓은 집에 남은 것은 저와 제 어린 여동생입니다.

모두가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반 년 사이에 저는 모든 가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를 선두로 계속해서 가족들이 3개월 마다 죽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9개월이 흘렀으니, 아마 이제 제 차례일 것입니다.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께서 차례로 돌아가시고, 남은 것은 저 뿐이니깐 말입니다.
 


머리를 감싸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어떻게든 동생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꼭 살릴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병원에도 돌아다녀 보고,

무당 집도 많이 돌아 다녀 봤습니다.

용하다는 무당에서부터 도교의 선인들까지 온갖 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늘은 동생과 같이 절에 가볼 생각입니다.

그 곳에서 동생을 안전하게 남겨 두고, 저는 돌아올 예정입니다.

저의 죽음에 충격 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생만큼은 꼭 무사했으면 합니다.
 


다음 날, 동생과 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동생과 붙어 있으면,

동생도 위험할 것이라 생각해 아침 일찍 나간 것입니다.
 


도착한 건 오후 1시, 예상보다 비교적 덜 걸려 절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여동생은 아침에 일어난 것이 힘들었는지, 아까 전부터 옆에서 졸며 걷고 있습니다.

너무 졸려 보이는 듯해서 절까지 엎고 올라 올라갔습니다.
 


절에서 처음 만난 스님께서는 굉장히 젊으셨습니다.

보통 제가 생각하던 스님은 50대에서 80대 사이의 흰 수염의 스님이었는데,

20대 초반의 젊은 스님이어서 약간 의아했습니다.
 


젊은 스님의 안내를 받아 동생과 들어간 곳은 주지 스님의 방으로 보이는 듯한

약간이지만 넓은 방이었습니다. 나무로 만든 탁자와 서랍과 같은 평범한 가구가 다였지만,

지금까지 요란하기만 했던 다른 무당들이나 음침했던 선인들의 집과 비교 해봤을 땐

오히려 정말로 믿음이 갔습니다.


 
스님께서는 방금 전까지 어디를 다녀 오셨는지,

대략 30분 정도를 방안에서 기다린 다음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주지 스님께서는 슬며시 방으로 들어오시고,

저와 여동생 앞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곤 여동생의 손을 잡으시곤,

여동생의 눈과 저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시며, 한참이고 그렇게 계셨습니다.
 


“ 동생분께서 너무 오래 사셨습니다. “
 


주지 스님께서 처음으로 저를 보시고 꺼낸 말씀이었습니다.

동생과 저는 어리둥절하며, 주지 스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 누군가 인의적으로 수명을 눌렸습니다. 

사람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면, 불행이 일어나는데 딱 그 상황입니다. 

사람이란 원래가 운명에 따라 사는 법입니다. 수명도 하늘이 정한 것이지요. 

수명은 가족들마다 정확히 그 몫이 나누어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하늘로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 장수하시거나, 고아들의 수명이 일반인들보다 긴 것도 그 이유지요.

이런 수명 즉 운명을 바꾼다면 가족들은 큰 불행을 겪게 됩니다.

분명 여기를 찾으시기 전에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께서 차례로 돌아가신 것도 그 이유일 겁니다. 

동생분의 원래 수명은 9개월 전에 이미 끝났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바꾼 운명 때문에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요.

남은 가족들의 생명력을 빨아들여 지금까지 버틴 것 입니다. 끌끌 “
 


온 몸이 떨려 왔습니다.

동생이 그런 악한 존재 일리가 없다고 마음 속으로 외쳤습니다.
 


“ 아마 당신도 요번 주 내로 하늘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동생은 너무도 태연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이 바로 자기 때문인 것을 모르는지,

그 표정이 너무 순수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 아무래도 저희 절에서 동생분을 맡아야겠습니다.

절은 속세와 다른 곳. 이미 운명의 거대한 강 속에서 빠져 나간 아이는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이 곳만큼은 안전할 것입니다. 당신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


 
동생과는 그 날을 끝으로 더 이상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저는 일해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도 돈이 없어 못 다니게 되었고, 그저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생활했습니다.

평소 꿈꾸고 있던 미래도 어느 순간 제 머리에서 사라졌습니다.
 


한 번 뒤틀린 운명은 다시 되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조상들께서 ‘운명을 받아드려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 알 것도 같습니다.

내 운명을 바꾸려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또 아프게 하기에 그저 받아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 일찍 나게 하루 종일 일하다 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동생이 함께 살았던 그 때가 그립습니다.




출처 ( 괴담 찻집 : 우리의 괴이한 이야기 http://gyteahouse.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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