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인 2014년 10월에 올라온 글이에요 · 댓글은 지금도 달 수 있어요
안녕하세요, <나는 지방대 시간강다>를 쓴 309동 1201호입니다.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민석 기자께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하거나, 혹은 이 안에서 분노해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 짧게나마 정리하겠습니다.
김민석 기자님. 저는 당신이 남긴 댓글 “친절한 쿡기자 형식으로 사연을 다루고 싶은데 어떠신지 여쭤봅니다. 메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에 대해 무척 감사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관심 깊게 봐주셨다는 게 첫 번째 이유이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예의바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민석 기자께서 저와 어떠한 사전 협의 없이 제 글을 일부 인용했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유라는 ‘공론장’에 글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오유는 회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접속해 글을 읽을 수 있는 커뮤니티이고, 제가 두려워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기자로서 어느 특별한 현상에 대해 관심 가지고 그것을 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민석 기자께서는 제게 허락을 받겠다는 의사를 보이셨고, 저는 당신에 대해 호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양해를 구하는 댓글을 오전 9시 30분에 올리셨고, 기사는 정확히 같은 날 오후 3시에 등록되었습니다. 아무리 짧은 기사였고, 해당 글과 댓글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더라도, 양해를 구하는 동시에 기사 작성에 들어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제 답신을 기다리기는 하셨습니까?
저는 당신께 “조금 기다려 주세요.”하는 내용의 답신을 보내려 했습니다. 제 글이 만약 완결이 된 것이었더라면 저는 얼마든지 마음껏 인용하시라고 했을 것입니다. 완성된 글은 제 손을 떠난 자식 같은 거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나누고 싶은 20개 이상의 에피소드가 아직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차근차근 저의 감정들을 정리해 나가고 싶었습니다. 왜 내가 대학원이라는 사회에서 버텨냈는지, 버티고 있었는지, 버텨내야만 했는지, 그곳에서 찾은 희망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의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회인들은 나보다 얼마나 더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한 것들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삶을 담담히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지만, 점점 이것은 어느 지방대 시간강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2014년을 살아가는 내 세대 모두의 이야기이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공론화’의 범위를 제가 저의 글을 통해 정면으로 감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김민석 기자님, 당신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흔한 기자로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다만, 저에게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를 취한 후 바로 기사를 작성해 올린 그 행위는,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평범한 시간강사인 것처럼 당신도 평범한 기자이겠지만, 무척이나 실망스럽습니다.
특히 저나 당신이나 ‘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논문 한 편을 쓸 때 적어도 6개월이 걸립니다.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읽고 관련 자료를 모읍니다. 그렇게 글을 쓸 준비를 합니다.한 문장을 쓰면 10번 이상을 읽어 봅니다. 조사 하나, 단어 하나, 문장의 리듬까지 신경 씁니다. 문장이 모여 하나의 문단이 되면 50번 이상을 읽어 봅니다. 문장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었는지, 어떤 표현을 추가하고 뺄지, 이 부분에 조사를 생략하거나 넣거나 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느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러한 것에 집착합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마치 내 아이를 세상에 떠나보내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쓴 글들도 시간이 지나 다시 보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나는 그런 각오로 글을 씁니다. 지금 당신에게 보내는 이 짧은 글도 그러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글’, 나를 인용해 쓴 그 기사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해묵은 “안녕하십니까, OO입니다”하는 사진을 하나 대충 붙여 넣고, 거의 전문이 제 글의 본문과 댓글의 인용. 가장 자극적인 부분을 인용해 넣고 그것을 책임질 만한 내용은 전무. 당신이 어떤 각오로 글을 쓰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직책이나 나이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사로는 좋은 기자가 될 수 없을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세계에서 어서 글을 달라는 편집부의 재촉에 검토할 시간도 없이 기계처럼 기사를 써서 올리고, 소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탐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당신의 글은 실망스럽습니다.그런 기사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기자들을 존경합니다. 좋은 기사를 보면 저는 그것을 한 편의 잘 쓴 논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가 6개월씩 걸려서 겨우 학회에 보내는 논문을, 이 사람들은 업으로 삼아 정말 가치 있게 써내고 있구나, 정말 프로구나, 하고 감탄합니다. 특히 대중이 알아야 할 중요한, 하지만 손대기 두렵거나 포착하기 어려워 모두가 손 놓고 있는 것에 목숨 걸고 뛰어 들어 정말 좋은 기사를 써 내는 기자님들의 경우는 100명의 교수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석 기자님, 당신도 그런 기자가 되길 바랍니다. 저도 열심히 연구해 좋은 연구자가 될 것입니다.
*어제 친구 D와 Y와 (에피소드 6에 등장한 두 친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사를 보고 설마, 했는데 정말, 너였냐는 둘에게 그간 쓴 글의 링크를 보내 주었습니다. 30분간 말이 없던 둘은 다시 메시지를 보내 제가 계속 글을 써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감당할 것들을 다시 저의 글로 감당해 가면서, 계속 나아가겠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글을,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실망을 드릴 수도, 찌질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지만, 다시 묵묵히 제 삶을 정리해 나가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힘든 삶을 사는 내 주변의 아픈 세대들도... 함께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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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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