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된 이야기 - 3 ver.ilbe
만우절을 기념해 무언가 장난질을 하고 싶어서 문자를 보냈다.
<지금 너를 생각하고 있는데 넌 누굴 생각하니> 이걸 첫줄로 하고 쭉 밑으로 내리면
<내일 만우절이라 하는 개소리!> 이렇게 마무리되는 문자였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오후 9시 쯤에 그 장난을 치고 여자들이 웃는거 보면서 딸치고 있는데 9시 반 쯤에 새 문자가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너 누구야?>
처음 보는 번호가 나한테 누구냐고 묻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냥 잘못 온 문자인줄 알고 슬라이드를 닫고 휴대폰을 던진 뒤 침대에 누워 고추를 긁적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어제 있었던 나의 드립을 얘기하며 여자들이랑 낄낄대는데 걔가 왔다.
그러더니 그 문자 보낸게 너냐고 물었다.
얘 번호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우선 무슨 문자를 말하느냐고 되물었다.
아이돌 닮은 여자가 말했다.
"만우절 문자......"
만우절 문자? 뭔 소리지? 설마? 나는 대충 눈치 챘으면서도 되물었다.
"뭔 말이야?"
아이돌이 어제 온 문자를 설명했다. 어제 내가 보낸 내용은 맞다. 내가 보낸 건 아니지만.
도대체 어떤 인간이 얘한테 보낸건지 모르겠지만...... 잘했다. 안 그래도 번호 따고는 싶었는데.
헤헤.
나도 어쩔 수 없는 고추달린 놈이니까.
나는 우선 모른척 잡아뗐다.
그러자 아이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삼십분 후 아이돌이 물었다.
"근데 너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나 니 번호 몰랐는데."
"아, 그래? 알았어."
다시 2시간 뒤 아이돌이 물었다.
"근데 너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나 니 번호 몰랐는데."
"아, 그래? 알았어."
또 한시간 후, 세시간 후, 종례할 때 계속 그 애가 물어댔다.
묻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 물으니 화가 났다.
"아, 모른다니깐!"
내가 화를 내자 아이돌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솔직히 다른 여자였으면 귀찮게 한 댓가다 하며 싸늘하게 돌아섰겠지만 왠지 이 애에게는 그러기 싫었다.
그러기엔 이 애의 표정이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이기만 한건지도 모르겠다. 이 때부터 슬슬 무언가 특별한 감정을 품은 듯 하다.
어쨌든 이렇게 번호를 교환하게 되었고 문자를 시작했다.
하루하루 서로 문자보내는 내용은 시덥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둘다 그 시덥지 않은 내용 중에 은근슬쩍 개인적인 이야기를 섞어 보냈다.
그 과정에서 그 애와 내가 같은 엠피쓰리를 쓰는 것과 이 애가 교내 방송의 DJ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펌웨어 업그레이드를 못하는 그 애에게 펌웨어 업그레이드법과 함께 노래 몇 곡을 다운받아 주자 그 애는 대신 교내 방송에 신청곡을 틀어준다고 했다.
"신청곡 진짜 아무거나 해도 돼?"
"응."
그래서 나는 데드 오어 어라이브의 you spin me round를 신청했다.
"뭐 신청할 거 있어? 있으면 말해봐. 내가 틀어줄게."
"그럼 you spin me round:"
솔직히 반쯤 장난이었다.
"그거 외국 노래야?"
"어."
"가수는?"
가수는......
"Dope"
데드오어어라이브가 원곡이긴 하지만 데드오어어라이브는 왠지 게이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도프는 강렬해서 그렇게 선택했다.
"도프의 유스핀미라운드? 또 없어?"
"DDR OST 중에 Butterfly"
"버터플라이는 또 뭐야?"
"그 있잖아. 야이야이야 하는 노래."
"아, 그거? 가수가 누군데?"
"그건 가수 모르는데."
그 외에도 몇 곡을 신청했지만 뭐뭐 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아이돌은 다음 금요일을 기대하라고 하며 눈을 찡긋거렸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하는데 그 애 자리에 계속 눈이 갔다. 걔는 지금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겠지.
그러고보니 나랑은 진짜 다른 애다.
나는 매번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기 위해 잔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그 애는 온갖 노력을 다해 성과를 거머쥔다.
내가 놀 궁리를 할 때 그 애는 책을 펴고 있다.
내가 야자를 튈 때 그 애는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어쨌든 금요일이 되었고 점심 시간 방송이 나왔다. 방송을 듣기 위해 나는 일부러 밥을 혼자서 재빨리 먹고 올라오고 있는데 그 애가 방송실에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어라? 쟤가 왜 올라가지? 방송하는 날 아니었나?'
핸드폰 슬라이드를 여니 금요일이 맞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른 계단을 통해 교실로 돌아갔다.
교실에 앉아 있으니 내가 신청한 곡이 나왔는데, 버터플라이도 아니고 유스핀미라운드도 아닌 다른 발라드였다.
내가 곡 순서까지 정해준 건 아니니까 얘가 알아서 셔플했나보다 생각하고 듣고 있는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렸다. 12시 20분이 점심시간 시작인데 문이 열린 시간은 12시 25분 쯤이었다. 나야 뛰어나가서 반찬 몇 개 집어먹고 왔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놈들이 이렇게 빨리 먹을 리는 없다.
거기다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지만 급식실이 따로 있는 학교는 언제나 경쟁이 치열하다.
나는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그 애가 서있었다.
"아, 안녕."
나는 어눌하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애 표정이 무척 안 좋았다.
"GDS......"
그 애가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리고 그 애가 울었다. 왜 우는진 나도 몰랐다. 그냥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나는 그 애에게 달려가 어깨를 감싸고 토닥여 주었다.
"야, 왜 울어? 응? 뭔 일인데? 그리고 뭐가 미안한데?"
우는 그 애와 반 쯤 끌어 안은 나,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흘러 나오는 슬픈 발라드에 왠지 우리가 뮤직 비디오를 찍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 상황에서도 살짝 흥분되는 나였다.
한참을 울던 그 애가 진정한 것은 다른 여자애들이 들어온 뒤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애에게서 약간 거리를 두었다. 그러자 그 애도 진정하고는 내게 말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친한 후배 알파에게 신청곡을 미리 다운받고 순서를 배정해두라고 명해놨는데 후배가 곡 몇 개를 찾기 힘들다고 빼버렸다고 한다. 근데 이게 울 만한 일인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이 애가 멀쩡해보이지만 워낙 특이하기도 했고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여자 마음같으니까.
별 것도 아닌 일이지만 나랑 관련된 일에 눈물을 보이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나는 미소를 띄며 위로했다.
"괜찮아. 그런거 안 들어도 별 상관없는데. 울지마. 응? 울지마."
만화나 영화에서 보면 "넌 웃을 때가 예쁘니까" 하면서 여자를 부왘하게 만드는 대사가 있던데 나는 차마 그 것까지는 못 하겠더라.
그리고 그 날도 하루종일 학교에서 자다가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는데 문자가 왔다.
<미안해. 나 그 후배 엄청 혼냈어. 다음에 또 부탁하면 진짜 똑바로 틀어줄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 신경쓰지말고. 정 미안하면 다음에 매점이라도 쏘던가.>
그렇게 답하고 슬라이드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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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씨발 저 때 와갤러 인증 제대로 했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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