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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1.12.04 22:24

모니터

조회 수 1168 추천 수 1 댓글 3
"야, 넌 씨발. 내가 아주 같잖지? 아우, 쪽팔리게 매번 내가 이렇게 지랄해야겠냐? ....

이 돼지새끼야"

일호는 마지막말과 함께 복부를 걷어 찼다. "컥" 

태우는 배를 잡고 무릎을 꿇었다.

매번 이런식이었다.

돈을 가져오라고 을러대는 일호와, 매번 요구한 액수를 가져오지 못해서 맞는 태우.

아무도 말리지 않고 지켜보는 아이들,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여자아이들과..


무엇보다도 태우를 쳐다보는 소연이의 눈빛.

혐오.. 경멸..

'왜 저러고 살까?' 라는 비웃음의 눈초리.

도망치고 싶다..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다른 남자앞에 무릎 꿇을때. 모멸감과 수치가 뱃속에서 꿈틀거렸다.

"미안...해. 일호야, 내가 내일까지 꼭 가져올게.. 내일은 꼭.."

어이없다는 듯이 하하 웃어대는 일호와 패거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말했다.

"지랄, 내가 오늘까지 4만원 가져오라고 했지. 니가 내말은 아주 좃으로 아는거 아냐 새끼야.. 엉?"

"아냐, 정말 아니야. 내가 내일은 꼭.."

"5만원"

"...어..?"

일호는 입꼬리를 길게 올리고 태우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5만원이라고, 새끼야"

"오늘.. 3,3만원 줬잖아.. 일호야, 제발.."

태우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굴욕감과 모멸감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없는 돈을 구하려고 엄마의 지갑에까지 손을 댔다. 그런데 돈을 더 가져오란다.

더.. 좀더..

"누가 모자라게 가져오래? 이 돼지새끼가 아주 맞먹으려고 드네. 정 돈없으면 니 비곗살이라도

정육점에 가져다 팔어.. 응? 더러운 새끼야"

일호는 교복바지 밖으로 늘어져내린 태우의 뱃살을 꼬집으며 말했다.

"야. 5만원이다, 5만원. 알았냐?"

일호는 태우의 뺨을 툭 치고는 일어섰다. 낄낄거리며 멀어져가던 일호가 별안간 뒤돌아보며

말했다. "야, 가방갖고 집에가라. 담탱이 상처보고 또 지랄할라" 그러더니 반 애들을 돌아보며

크게 외쳤다. "야, 전부 아가리 닫아라. 저새끼 꼴 안날라면"

드르륵- 교실문을 열고 사라지는 일호패거리.


반 아이들의 시선이 잠시 태우에게 머물렀다가 다시 책상위로 옮겨진다.

아무도 태우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주지 않는다. 빈말이라도.

하긴, 반에서 두번째로 작은 키에 첫번째로 많이 나가는 몸무게..

더할나위없이 '왕따' 당하기 좋은 스펙. 거기다 눈이 작아보일만큼 두꺼운 돗보기 안경은 덤이었다.

공부라도 잘한다면 친구들과 어울릴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태우는 공부를 못했다. 그게 전부였다.

가방을 챙겨 교실을 뒤뚱뒤뚱 걸어나가는 그에게 염려스러운, 혹은 걱정스러운 어조의 위로나

인사가 없는 이유.

태우는 교정을 빠져나와 천천히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벗어나지 못한 따돌림이었다.

한창 사춘기였을 때의 중학교 무렵,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다.

"니가? 나랑?"

전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났던 양예슬은 동시에 소위 '잘나가는 아이' 로 유명했었다.

사람관계에 어둡고, 자신이 나서면 모든 것이 해결될것이라 착각하며 자신만의 세상속에서

살아가던 태우였다. 자신이 나서면 안될것이 없다고.. 저 콧대높은 양예슬도 내 여자친구로

만들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던 태우였다.

"미친.. 야, 너 주제파악 너무 안되는거 아니니? 그냥 가서 공부나 해. 아, 땀냄새.."

한번의 거절.

그 뒤로 아이들의 태도는 무관심에서 조롱과 경멸로 바뀌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중학교때 태우의 사건을 알던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오게되었고, 나름대로 부푼꿈을 안고

새롭게 시작해보리라 다짐했던 태우에게 새 고교생활은 지옥이었다.

"쟤, 쟤가 예슬이한테 고백했었다며.."

"뭐? 미친거아냐? 예슬이 눈이 얼마나 높은데"

"그러니까 말야, 키킥. 돼지새끼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대냐?"

"아.. 저 살좀봐, 얼굴봐라 진짜 죽인다, 죽여"

그 와중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타난 일호와 그 패거리들-

폭력과 조롱은 날로 심해져갔고, 태우는 한명뿐인 가족에게 전학을 보내달라고 성질을 부렸었다.

"미안하다, 태우야.. 요새 엄마 일이 잘 안되.. 우리 아들 몇년만 참고 견디자, 응?"

"아, 지금 당장 죽을거 같단 말이야! 씨팔! 이렇게 아무것도 못해줄거면 왜 낳았어! 어!"

어머니의 울음.. 그래도 태우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으니까.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서 태우의 전학욕구를 말끔히 잠재워버린 여학생,

이 소 연

3학년 선배들한테도 알려져있고, 1학년 후배들은 소연이를 보러 이학교에 들어왔다고 떠든다.

심지어 성적마저 전교 1등으로 감히 태우가 다가갈수없는 그녀다.

사춘기 시절의 시작부터 끝까지 여자와 말한마디 제대로 못해봤던 그다.

야수같은 성욕은 기어코 삐뚤어졌다. 이제는 학교내에서 여자만 보아도 비밀스러운 상념들이

고개를 불쑥 불쑥 들고는 했다. 태우는 이미 자위를 하면서 수많은 여학생들을 상상속에서 더럽혔다.

이소연을 생각하면.. 그의 성기가 달아오른다.

옷을 찢고 강제로 범해버리고 싶다.






태우는 잠시 고개를 올려 낡은 빌라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1층 102호,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태우는 그대로 가방을 앞으로 집어 던졌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보따리 장수를 하는 어머니는 한번 집을 비우면 대략 십여일간 집에 오시지 않는

다. 냉장고에 가득 든 음식들과 식탁에 놓인 약간의 생활비만이 태우를 반겼다.



태우는 집이 싫었다. 아무것도 할게 없기 때문이다.

모니터 한쪽이 부러져 고장나버린 컴퓨터한대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홧김에 집어던진 모니터는 왼쪽 아래 모서리가 이그러져 작동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거실 구석에 새로운 모니터가 있는 것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다가가 모니터를 살펴보던 태우는 그것이 새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명 꽤 신형인 LCD모니터였지만, 군데 군데 묻은 손때와 낡은 흔적들이 보였다.


"여보세요?"

"..어, 엄마 난데.."

"너,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 아니냐?"

"오늘 단축수업했어"

"...무슨 단축수업을 하루 걸러 하루 한다냐? 으휴.."

"... 이 모니터 엄마가 가져온거야?"

"것 때문에 전화 한거냐?"

"아니, 뭐 그렇긴 한데.. 이거 꽤 좋은 거.."

"엄마가 큰 맘먹고 산거니까, 깨먹지 말고 잘 써, 엄마 이번에 큰 장에 와서

집에 갈라믄 일주일 있어야 된다. 밥 잘 챙겨먹어, 냉장고 제일 아래에 된장국있다"

뚝-

태우는 조용히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자코 엄마가 새로사온 모니터를 본체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삣-

원활히 작동되는 컴퓨터앞에 식탁 의자를 끌어다 앉은 태우는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1년전에 부서진 모니터때문에 게임은 고사하고 웹서핑조차 해보지 못한 그였다.

얌전히 실행되는 컴퓨터를 보며 태우는 간신히 할만한 것을 생각해냈다.

인터넷 검색어 타이핑하는 공간에 대고 서툴게 타자를 쳤다. "포..르노.."

순신간에 화면을 메워버리는 수많은 자료들.. 태우는 마우스로 손을 빠르게 가져갔다.






한 차례의 쾌감이 가시자, 태우는 슬슬 현실적인 문제들로 돌아왔다.

"일호 개새끼.. 내일 또 5만원을 어떻게 가져가지.."

순간 컴퓨터 인터넷 광고창에 만원권 지폐의 모습이 보이며 문구가 떴다.

'언제나 빠른 대출, 연락만 주시면..'

태우는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학생신분에 대출이라.. 그것도 5만원때문에.."

그는 투덜거렸다. "차라리 모니터에서 쏙 잡아뺄수 있으면 좋겠다. 쑥-!"

그때였다.

장난스럽게 손을 모니터로 가져간 태우는 모니터가 마치 물이 퍼지는 듯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굳었다. 정확히는, 모니터 내부로 들어간 자신의 손을 보고 굳었다.

"으, 으아아"

다시 손을 쑥 빼낸 태우는 모니터가 마치 물처럼 출렁이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점차로 고요해진 모니터는 단단한 고정체로 돌아가 있었다.

잠잠해진 모니터에 다시 대출광고와 만원권 지폐가 보였다.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의 발현이었을까?

태우는, 다음 순간 손을 모니터로 깊숙히 집어넣었다. 화면이 요란하게 요동쳤다.

집어넣은 모니터 안에서 무언가 잡히는 감촉이 느껴지자, 그는 서둘러 손을 빼냈다.


그리고 태우의 손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들려있었다.


잠잠해진 화면속에는 아까와 변함없는 광고가 있었다.






"여기..5만원.." 일호는 희희낙락하며 태우의 손에서 돈을 낚아챘다.

"여어, 돼지새끼. 왠일로 재깍 가져왔냐? 너 운좋다. 오늘 안가져왔으면 진짜

죽여버릴라 했는데.. 낄낄.."

태우는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또 인상을 찌푸린 일호는 손짓을 했다.

"야, 이제 꺼져라. 나중에 형이 또 돈필요하면 부를테니까 미리 모아두고"

태우는 옥상에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5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빼앗겼지만, 태우의 표정은 밝았다. 웃고 있었다!

잠시 주머니를 끄적인 태우는 곧 만원권 지폐뭉치를 꺼내 들었다. 셀수없을 만큼 많았다.

"뭔진 모르겠지만.. 난 이제 부자야!"

그 모니터의 정체가 무엇인가는 태우에게 중요치 않았다. 원하는 건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엄청난 쾌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서둘러 집으로 달려온 태우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집에는 그가 사온 게임 씨디와 패스트푸드 봉지로 어질러져있었다.

장장 30만원을 썼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는 이제 부자였으니까.

서두를것 없다는 느긋한 태도로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와중에, 그는 학교 애들이 가장

자주 화제로 꺼내는 '싸이월드' 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검색했다.

"싸이월드가 뭔가 했더니, 미니홈피 제작 사이트구나. 재밌는데?"

태우는 이것 저것 뒤적여보다가 [회원찾기]라는 기능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타이핑했다.


타닥, 타다닥, 탁 "이..소..연.."

1990년 출생, 생일 8월 12일.. 출신 학교 천마 고등학교.. 여자..

이미 소연의 모든 것을 알고있는 태우는 따로 고생하지 않고 그녀의 미니홈페이지를 찾아내었다.

딸깍

메인을 클릭한 태우는 곧 소연의 사진이 가득한 사진첩을 발견했다.

교복차림으로 해맑게 웃는 얼굴들, 사복을 입고 친구와 야외에서 찍은 사진..

자신의 외모를 과시하고 자신있어 하는 그녀의 태도는 미니홈페이지에 당당히 기재된

핸드폰 번호로 최고조를 이루었다.

자신의 양물이 힘껏 발기된 상태로 정신없이 사진을 훏어 보던 태우는 이내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모니터속으로 힘껏 손을 집어 넣었다.

요란하게 출렁이는 화면! 그리고... 

'물컹' 

만져졌다... 있었다! 무언가가!

태우는 환희감에 사로잡혀 그것을 꽉 잡은채 화면 밖으로 끌어 당겼다.

하얀 살결의 가느다란 여자의 팔!

태우는 이제 숨을 헐떡이며 그것을 모니터 밖으로 끌어내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녀였다.

그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이소연, 그녀였다.

그런데.. 시체처럼 축 쳐져 움직이지 않았다. 이소연을 모니터에서 끄집어내 거실 바닥에 눕힌

그는 미동도 않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둘러 그녀를 더듬어본 그는 안심했다.

온기가 있었고, 심장도 뛰었다. 숨도 쉬고 있었다.

단지 의식만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눈은 뜬 상태였고, 온몸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있지 않았다.

마치, 소위 말하는 단백질 인형처럼.

"모니터에 있는 모든 것을 꺼낼수 있는 거였어! 하지만.. 의식이 없는건.. 그래!

철저히 모니터에 비추어지는 '그 모습 그대로' 나오는 거야!"

아닌게 아니라, 소연의 교복입은 사진을 보고 꺼낸 소연의 몸은 교복을 입은 모습이었다.


학교에서 보던 그대로 예뻤다.

꽉 조여지게 줄인 교복 상의는 여고생치고 풍만한 가슴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냈다.

갈색 팬티스타킹의 아릿한 선과 짧게 줄인 검은 치마..



어려움은 없었다. 그가 평소 하던 상상대로, 옷을 찢고는 자신의 성기를 밀어넣었다.

모든게 상상대로였다. 쾌감도, 흥분도, 만족감도.

다만 항상 있었던 반항만이 없었다.

그는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여자의 신음도, 움직임도, 떨림도 없는 무미건조한 사랑이었지만

태우는 개의치않고 몇번이고 사정했다.

그는 욕망을 채웠다.




그 사건 이후 태우의 삶은 굉장히 만족스러워졌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 그는 전에 비할바없이

행복했다. 날마다 마음껏 돈을 썼고, 소연의 몸을 불러내 정사를 나누었다.

처음에 소연을 꺼낸 날에, 그는 그 육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간단했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다시 모니터로 집어 넣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대로 빨려들어가 사라지는

소연의 육신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충분히 즐기기만 하라고 말하는듯했다.

일주일동안의 ㅅㅅ, 그것도 그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여자와.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고 해도

태우는 만족스러웠다.

일주일뒤 돌아온 어머니에게도 전에없이 친절하게 대했다.

어머니는 어리둥절하여 이틀뒤에 다시 장사를 하러 가셨고, 이번에는 열흘 뒤쯤 올거라고 그에게 말했다.

큰 맘 먹고 용돈을 주겠다고 해도 아들은 한사코 사양했다.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열흘의 말미동안 그는 그야말로 천국을 누렸다. 학교에서의 굴욕적인 생활따윈, 방과후에 자신을 기다리는

천국에 가기전에 작은 시련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가 그의 것, 모든 물건이 그의 것이었다.

최근 잘나가는 여성 아이돌 그룹들과 모조리 사랑을 나누어 보았다.

유명한 레이싱걸들과 외국의 영화배우들, 톱스타.. 모조리 그의 여자가 되어 그의 사정을 몸소 받아냈다.

비뚤어진 성욕을 가진 그는 문자 그대로 야수였다.

포르노에 나오는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체위와 뜨거운 체온, 음란한 신음소리를 내지르는

인기 절정의 여성스타들을 본 남자가 그 이외에 누가 또 있을 것인가?

섹시함과 재기발랄함, 귀여움 과 아름다움을 갖춘 브라운관의 여신들을 마치 내 노예처럼 부리고

주무르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남자들의 꿈이 아닌가!

새로나온 신형 MP3와 PSP, DMB.. 그것들은 가격에 상관없이 그의 것이 되었다.

명품 신발과 지갑, 1200만원대를 호가하는 스위스 시계까지 모조리 그의 것이었다.

꺼낸 돈으로 비씬 식당에 가서 세끼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태우는 정말로, 진심으로 현재의 삶을 사랑했고, 그의 모니터를 사랑했다.

학교에서 일호패거리가 요구하는 돈쯤은 우습게 내주었다.

그의 일은 과거의 악몽에 대한 보상이었다. 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태우의 행복은 짧았다.

불행의 근본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흔히 모든 중고생들이 걱정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성적표였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꼴찌는 해본적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던 태우의 어머니는

담임의 전화로 태우가 학교를 심심찮게 빠지며, 그리고 요번 기말고사에서 학년을 통틀어

최악의 성적으로 전교 꼴찌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듣고는 처음으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방과후에 콧노내를 흥얼이며 집에 돌아온 태우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

실망한 표정으로(하지만 여전히 밝은 얼굴로) 말했다.

"엄마 집에 있네? 요번에 장이 빨리 끝났나봐"

어머니는 어두운 표정으로 아들을 보았다.

"네 성적표 봤다"

태우의 표정이 굳었다. 모자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태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엄마, 미안.."

"네 컴퓨터 가져다 버렸다"

"..뭐?"

어머니는 싸늘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네 컴퓨터, 버렸다고"


온갖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그럴순 없어.. 그럴순없어..

내 행복의 근원이야.. 내 존재의 이유야..

내 여자들, 내 돈.. 뭐든 할 수 있는데.. 뭐든 할 수있는데..

왜!!


"생각해보니, 너도 이제 고3이고 엄마처럼 장사나 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어머니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태우를 보았다. 퉁퉁하게 살찐 손이 목을 강하게 졸랐다.

"어딨어!"

"커..억.. 태..우야.."

"어딨냐고!"

폐가 숨을 빨아들이지 못하자 모든 기관이 아우성을 쳤다. 얼굴이 금새 새빨갛게 변했다.

"고..고물상.."

태우는 짐승같은 표정으로 멈추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그는 씨근덕거리며 계속 목을 졸랐다.

"씨발 대체 왜! 왜! 왜!! 언제, 언제야!"

"아까.. 방금..전에..켁"

어머니를 패대기 치듯 방바닥에 던져놓은 태우는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맨발로 달렸다.


되찾아야해! 내 컴퓨터! 내 컴퓨터!


10여분 정도 도로를 달렸을까, 저만치 사차로에서 파란색 트럭에 실린 그의 컴퓨터가 보였다.

거친 돌바닥을 달린 태우의 발바닥을 피투성이였다.

그는 미친사람처럼 내달렸다.

"멈춰! 멈춰어!"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4차로를 횡단하는 그에게 검은색 승용차가 달려들었다. 빠앙!

쾅!!

그의 몸이 지상의 5M 높이에서 비행했다. 어지러울만큼 회전하고 있었다.

퍼벅! 살점과 피가 튀는 화려한 착지.


그는 피거품을 물면서 경련하는 손을 트럭 방향으로 뻗었다. 조금더 가늘게 경련하다가

손은 아스팔트 위로 떨어졌다. 트럭은 이제 중앙로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29살의 허울좋은 재수생인 지혁은 츄리닝 차림에 담배를 물고 집앞에서 기다렸다.

금방 올거라 생각하고 삼선 슬리퍼를 신은 발이 시려웠다.

"존나게 안오네"

저 멀리서 드디어 파란 트럭이 오는게 보였다.

"아, 중고 컴퓨터 주문시키신 분입니까?" 운전자가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아, 아저씨.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요? 한 30분 기다렸잖아"

운전자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를 들고 내렸다.

"아이구 미안해요, 차가 좀 막혀서.. 아까 4차로에서는 왠 미친놈이 차에 치었더라고.

깜짝 놀라서. 자, 중고품이지만 쓸만한 놈입니다."

지혁은 인상을 찌푸린 상태로 컴퓨터를 받아 들었다.

손때가 군데 군데 묻고, 낡은 것 같기는 했지만 확실히 좋은 모니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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