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선 전후 재건이 한창이던 1950년대 후반

다른 곳에선 차마 웃지 못할 이유로 내전 아닌 내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곳은 다름아닌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 싸웠던 미국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리틀록의 위기(Little Rock Crisis)

1957년 미국 아칸소 주

전미 유색인종 협회(NAACP)에서 우수한 성적과 품행, 태도로 선발된
9명의 흑인 고등학생들은 아칸소 주 폴란스키 군 리틀록 시 소재의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3년 전 미국 연방법원에서는 캔자스 주 토피카 군의 백인 학교 섬너 초등학교에
흑인 학생인 린다 브라운의 전학을 허가할 것을 지시하면서
공립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은 위헌임을 분명히 명시했다.
(이를 브라운 vs 토피카 교육위원회 사건이라고 함)
따라서 이 9명의 흑인 학생들이
공립 학교인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에 등교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칸소 주의 주지사 오벌 포버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포버스는 이 9명의 흑인 학생들의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 등교를 금지시켰다.

포버스는 또한 아칸소 주의 주방위군을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에 배치시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고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지시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결국 백악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포버스를 송환조치하였고
곧바로 미국 육군 소속의 101 공수사단을 리틀록으로 투입시켜
흑인 학생들의 호위를 명령했다.

오늘날 우리 군과 체계가 달라 개념이 헷갈릴 수 있는데
이때 투입된 101 공수사단은 제 2차 세계대전때도 참전한 사단으로서
우리나라가 해외에 파병하는 정규군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주방위군은 미국에선 총 든 공익과 다를 바 없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양 군의 대치 상황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흑인 학생들을 귀가조치시키는 아칸소 주 주방위군

리틀록으로 투입되는 미 101 공수사단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호위하는 공수부대원들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를 순찰중인 공수부대원들

당시의 사건을 나타내는 신문
(헤드라인엔 무장 병력이 흑인 학생들을 돌려보낸다고 하고 있음)

이 9명의 학생들은 이후에 리틀록 9인(Little Rock Nine)으로 불렸다.
이들은 백인 학생들의 온갖 멸시와 조롱 속에서도 굳건히 학업에 정진했으며
어니스트 그린이 그 해에 졸업하면서
리틀록 중앙 고등학교 최초의 흑인 졸업생이 되었다.

리틀록 9인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