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인 2015년 8월에 올라온 글이에요 · 댓글은 지금도 달 수 있어요
그 아이는 소소한 걸 좋아했다.
화려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소박하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보다는 동네 허름한 식당의 김치찌개를 좋아했고
대형 극장에서 보는 영화보다 함께 침대머리에 기대앉아서 보는 드라마를 좋아했다.
고급 핸드백보다 조잡한 노래테이프를 듣고 더 환하게 웃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난 그 아이의 그런 소박한 모습이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안쓰럽고 미안하기도 했다.
분명 그 나이때라면 화려하고 눈에 띄는걸 좋아할 나이였다.
어쩌면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습관일지도 몰랐고
현재 자신의 상황과 나에대한 배려로 인한 어쩔수 없는 선택일지도 몰랐다.
그 아이는 함께 장을 보는 걸 좋아했다.
가끔은 눈을 반짝이며 시장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오빠. 우리 시장갔다오자."
"시장? 뭐 살것도 없는데?"
"그냥. 가서 구경도 하고 저녁거리도 사오면 되잖아."
"있는걸로 해 먹으면 되지 또 뭘사?"
"가자~ 응? 내가 맛있는거 해줄게"
"니가? 맛있는 걸? 그러니까 더 가기 싫어지는데."
처음보단 나아졌지만 아직도 그 아이의 요리솜씨는 보통에도 못미치는 정도였다.
"가자~ 응? 응?"
"알았어. 대신 조건이 있어."
"뭔데?"
"요리는 내가 하는걸로."
어쩌면 그 아이에게 같이 장을 본다는 건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방법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언제서부턴가 나는 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는 불안해 하고 있었다.
"벌써 가게?"
"응 내일 출근해야지."
"좀만 더 있다 가면 안돼?"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일 일찍 나가야돼."
"....."
날 배웅하는 그 아이의 눈빛은 외로움과 쓸쓸함 섭섭함이 뒤섞인 묘한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전에 그 사람과 함께일 때.
난 매일같이 그 사람과 함께있다가 잠시 헤어질때면 불안할 때가 있었다.
왠지 지금 보는 그 사람의 모습이 마지막 일 것 같고 내일이면 지금까지 행복했던게 모두 꿈이었을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멈출수 없을때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나보다 먼저 이 곳이 와서 생면부지인 사람들 속에 둘러쌓여 혼자 견뎌내고 있었다.
분명 그동안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고 더 외로웠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 아이가 지금 기댈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더 불안해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난 알았다.
그 때 난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항상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고민했고
오지도 않을 이별을 미리 걱정하고 준비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그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 아픔을 알기에 이 아이에게는 똑같은 아픔을 주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내 맘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지방출장이 잡혔다.
출장을 며칠 앞두고 난 그 아이와 저녁을 먹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나 지방으로 출장좀 다녀올 거 같아?"
"출장?? 언제? 그런말 없었잖아."
"일주일 정도 걸릴거 같은데 혼자 잘 지낼수 있지?"
그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앤가? 오빠나 잘 챙겨. 우리 오빠 신나겠네? 일주일동안 잔소리 안들어도 되니까?"
웃고 있었지만 그 아이의 얼굴엔 그늘이 져있었다.
밥을 먹고 그 아이을 집에 데려다줬다.
집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그 아이에게 난 가져온 물건을 전해주었다.
"이게 뭐야?"
"하루에 하나씩만 봐. 한번에 다 보지말고."
내가 그 아이에게 전해준 건 일곱장의 편지였다.
말로는 전할 자신이 없어 하루에 한 장 씩 그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적은 편지였다.
"원래는 커플링을 줄까 했는데 반지같은거 해본적이 없어서 너 사이즈를 모르겠더라. 출장 갔다오면 하나 맞추자 우리."
편지를 받아든 그 아이의 얼굴이 다시 환해졌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해가 지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걸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 이유는
내일이 되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다시 떠오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만나고 사랑하는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슬퍼하고 걱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여름은 끝났지만 우리들의 사이는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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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드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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