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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드립
랜덤

극심한 우울증을 불러 일으키는 그 사건

샹키Lv.403로스터
11년 전인 2015년 5월에 올라온 글이에요 · 댓글은 지금도 달 수 있어요


이 생각만 하면 좀 우울해 져요. 약간의 트라우마 인데요...
날이 흐리네요.

제가 군대 들어가기 전, 그때는 mp3의 시대 였어요.
초창기라 외관으로 승부보는 mp3가 많았죠. 제가 쓰던건 다이아몬드 모양의 32메가 짜리.
저와 친구는 노래부르길 좋아해 한적한 공원에 가서 mp3 녹음을 하곤 했어요.
사이먼앤가펑클 노래랑 서태지 노래를 화음 맞춰 부르곤 했죠.


보문동 뒷산으로 올라가면 한적한 공원이 있어요.
가파른 계단 힘들게 올라가면 산을 깎아 만든 넓직하고 한적한 공원이 나와요.
밤에 오르면 동대문 야경이 화려해서 연인들이 맥주 한 잔 하며 데이트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저희는 그곳에서 전망도 좋고 인적도 드문 정자 하나를 아지트로 삼았어요.
4명이 앉을 수 있는 정자인데 시야가 탁 트여서 노래부를 맛이 났거든요.
그날은 맥주페트 하나랑 6000원짜리 시장통닭 하나 사서 올라갔습니다. 초여름, 아직 꽃향기가 남아있던 밤이었어요.


땀 삐질삐질 흘리며 올라갔더니 저희 아지트를 누가 차지하고 있었어요.
검은 점퍼 입고 왜소한 체격의 아저씨 였는데
그분도 술 한 잔 하고 계셨어요. 동대문 야경을 바라보며, 의자 옆엔 검은 봉지 하나랑 소주 두 병.
안주가 뭐였는진 기억나지 않아요.
아저씬 술을 많이 드신건지 고갤 흔들흔들 하시더라구요.

아지트를 뺏긴 우린 ‘에이씨 저기가 딱인데’ 궁시렁 거리며 다른 곳을 물색했어요.
마침 아지트 조금 아래에 비어있는 정자가 있어서 잽싸게 향했습니다.
하지만 거긴 나무가 우거져서 야경이 보이질 않았어요.
힐끔힐끔 뒤돌아서 아지트를 올려다보며 “저 아저씨 일어나면 자리 옮기자” 하고
봉지에서 통닭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어요ㅎ

노래와 수다가 시작됐습니다. 그때가 군입대 전인데 우린 여고생 저리가라 할 정도로 수다킹이었어요.
수다 뿐만 아니라 노래부르기도 잘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너에게> “깊은 한숨뿐만” 하면은 친구가 “한숨뿌운~야~이야이” 하면서 들어오고…
여튼 두세시간을 쉬지않고 떠들며 mp3에 녹음했어요.
공원 이용하셨던 분들은 저희가 매우 불편했을거예요.
시커먼 남자애들 둘이서 담배 막 피고 술마시며 노래를 부르다니.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때 아무것도 몰랐어요.

술기운이 더해져 한 참을 놀고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죠.
저희는 갑자기 재미없어 졌습니다. 재미없어 졌다기 보다 착, 가라앉았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죠…
동대문 야경을 가린 회색나무숲을 보고 있었어요. 갑자기 나무들 사이로 뭔가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뭐지? 돌아보니까 아지트 근처에 경찰차가 와 있었어요. 웅성 웅성. (저의 기억은 이쯤에서 부터
항상 우울증에 빠져 버립니다. 이해해 주세요)

갑자기 기분 다운 됐는데 경찰차 까지 보니까 다 놀았다 싶었어요.
담배 한대 더 피고 주섬주섬 쓰레기 챙겨서 계단을 올라 갔습니다.
저희가 앉으려고 했던 그 자리. 아지트. 검은봉지에 소주 드시던 아저씨가 정자 천장에 목을 매달고 자살을 하셨어요.
운동하시던 할아버지가 먼저 발견하신건지 경찰분과 얘길 나누고 계셨고요,
경찰은 노란 폴리스 라인으로 정자의 기둥을, 저희가 보는 앞에서 두르고 있었어요.

야, 사람 죽은 것 같아 “뭐?” 저기봐 “뭐, 뭐 어디” 왼쪽 기둥

친구는 자세히 봐야겠다며 그쪽으로 슬금슬금 가다가… 얼마 못 가더니 사색이 되어 돌아왔어요. “목이 늘어났어…”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가 쭈뼛 섰습니다. 계속 그 상태 였어요.
등골이 오싹하고 온몸에 소름이 계속 끼쳤습니다. 우리는 멍 해져서 얼레벌레 내리막길을 내려왔어요.
눈에서 야경이 사라지고 가로등빛과 집들이 보이고 도로가 보이자 마음이 좀 안정됐어요.
둘이 긴 말 안하고 헤어졌습니다. 얘기는 이게 끝이예요.

가끔 이때를 떠올리면 참을 수 없이 우울해요.
우리가 놀고 떠드는데 정신 안 팔리고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정자를 확인했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아저씨는 죽기전에 우리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목이 메이는 그 순간에도 우린 가까운 곳에서 노래 부르며 떠들고 있었는데. 바로 코앞에서.
동대문 야경을 배경으로 목 매달린 시체의 실루엣. 땅에서 발 사이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멀리서 보면 그냥 서있는거라 착각할 정도? 한 뼘 정도밖에 되질 않았어요.
한 뼘!! 그 한 뼘이 비어서 사람이 죽다니요. 내가 밑에 없드려서, 아저씨 발 밑에 공간을 채워 드렸으면!!
아저씨가 나를 밟았으면 살았을텐데… 그 한 뼘이 비어서 사람이 죽다니요…

왜 이렇게 사는게 참 허무한 것일까요. 이 얘기 많은 사람한테 한 적 없어요.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서도아직 이 기억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냥 한없이 우울하고 슬플 뿐이예요.

이 자릴 빌어서나마 명복을 빌어요. 죽음을 선택해야 될 정도로 힘든 이유였을거라 넘겨짚기만 할게요.
나중에 가면 꽃 한송이 사서 갈게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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