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220.64) 조회 수 18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마법같은거 안나옴.

 

판타지란 것은 그냥 비현실적이기만 하면 된다.

 

참고로 2009년 07월에 처음 발상한 글이고 2009년 말에 수능 끝나고 타이핑에 들어갔으며

 

마지막엔 귀찮아서 찍 싼 작품.

 

==========================================

 

그 날은 햇빛이 유난히 고운 날이었다. 오늘로 사락고 1학년 D반에 편입학하는 권도훈은 고개를 들어 태양을 바라 보았다.
 
날카로운 햇빛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렸다. 그는 반 쯤 열린 교문을 통과해 사락고등학교 건물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학교는 학교라기 보다는 교도소 같았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운동장을 보았다. 노란 흙먼지가 자욱한 운동장 위에는 학생들이 각자의 체육복을 입은 채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단상 위의 체육 교사는 커다란 방망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고 입에는 슬림형 담배가 물려 있었다.
 
'교내는 분명 금연일텐데.'
 
도훈은 왠지 이 학교가 정상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 학교로의 전학은 결정되었고, 그에겐 그 결정을 번복할 힘이 없었다.
 
그는 한 숨을 쉬며 교무실로 향했다.
 
재빨리 전학 수속을 마친 도훈은 교무실을 나가며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 보았다.
 
그 속에는 얼굴을 반 정도 덮을 정도의 커다란 안경을 쓴 평범한 체격에 평범한 키를 가진 소년이 있었다. 소년이 입고 있는 옷은 왼쪽 가슴에 사락고의 마크가 박혀 있는 교복이었다.
 
도훈은 자신을 안내하는 선생의 뒤를 따라 1학년 D반으로 향했다.
 
1학년 D반은 학기 초부터 문제 반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1학기 중반을 달리는 지금은 몇몇 학생의 자퇴와 퇴학으로 어느 정도 조용해졌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도훈이 이 반으로 전학오게 된 것도 학기 초 1학년 D반 구성원들 중 몇몇이 퇴학을 당했기 때문이다.
 
"도훈이라고 했느냐? 권도훈......"
 
D반의 담임인 구문형 선생은 깡 마르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이었다. 그는 도훈의 어깨를 감싸고는 타이르듯 말했다.
 
"조심하거라."
 
도훈은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 때까지는.
 
드르륵
 
구문형 선생이 앞 문을 열었다. 도훈은 교실 문 너머로 펼쳐진 그 신비한 세상에 잠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들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 것도 교실에서!
 
창문도 열지 않은 채, 당당하게 책상 위에 재떨이와 물휴지를 올려둔 채 담배를 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본 도훈은 오히려 학교란 담배를 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교실이란 기본적인 흡연 장소가 아닌가하는 의문까지 들었다.
 
그 만큼 그들의 행위는 거리낌이 없었다.
 
"흠흠, 주번, 창문 좀 열자."
 
구문형 선생의 명에 앞니가 유난히 크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그리고 키가 작은 약삭빠르게 생긴 소년 하나가 창문을 5cm정도 열었다.
 
"자요, 됐죠?"
 
"조금만 더 열지."
 
소년은 2cm 정도를 더 열었다. 구문형 선생은 잠시 그 소년을 노려보더니 이를 악물고 출석부를 폈다.
 
"강민환."
 
"예."
 
"구승호."
 
"예."
 
낮고 거친 소년들의 음성이 울렸다.
 
하지만 다들 아직 완전히 어른이라기엔 이른 목소리들이었다. 그제서야 도훈은 이들이 자신과 함께 공부해 나갈 친구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미소지었다.
 
"선생님."
 
아까의 큰 앞니를 가진 간사한 인상의 소년이었다.
 
구문형 선생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일어서더니 선생의 옆에 있는 도훈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실실 쪼개는 쟤는 뭔가요?"
 
그의 말에 약간의 웃음이 일었다. 도훈은 약간 정색하며 그를 바라 보았다.
 
"이 친구는 오늘부터 너희들과 함께 공부를 할 권도훈이라고 한다. 도훈아, 인사해라."
 
"예."
 
도훈은 구문형 선생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분필을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세 자를 썼다.
 
당당한 자세로 뒤를 돈 도훈은 친구들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공부를 하게 된 권도훈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중국에 있는 외국인 학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개를 든 도훈은 급우들의 반응을 살폈다.
 
모두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아까 자신에게 삿대질을 한 큰 이빨의 소년 역시 박수를 치고 있었기에 도훈은 안도했다.
 
"자, 그럼 도훈이는 저기 저 희빈이 옆에 가서 앉아라."
 
희빈은 도훈에게 삿대질을 했던 소년의 이름이었다. 도훈의 안경과 마찬가지로 얼굴의 반은 덮을 정도로 거대한 이빨과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희빈의 얼굴을 보며 도훈은 정말 못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도훈이 보았을 때 희빈은 아부 근성과 허세 빼고는 아무 것도 없는 녀석이었다.
 
키는 160cm도 넘기 힘들 정도로 작았고 생긴 것은 인간이라기 보다는 온라인 게임에서 나오는 몬스터, 특히 코볼트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 작은 체구와 못난 얼굴에서 나오는 허세는 또 어찌나 대단한지, 매 수업시간마다 그는 껌을 소리나게 씹으며 다리를 떨어댔다.
 
선생의 말도 소용없었다. 아니, 선생은 말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훈이 느끼기엔 말릴 가치가 없어 그런 것 같았지만 희빈의 생각에는 선생들이 자신의 위세에 위축되어 그렇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어느 선생이 필기 거리를 잔뜩 칠판에 써놓고 급한 전화가 왔다며 교실 밖을 나갔을 때, 그 필기를 베끼던 도훈에게 희빈이 말을 걸어왔다.
 
"야, 너 중국에서 왔다고?"
 
"응."
 
도훈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말을 건 인물이 희빈이라는 사실에 약간 불쾌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겠다는 기대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호오, 그래......? 중국 어디서 살았는데?"
 
"상하이 쪽에. 외국인 학교가 거기 많거든."
 
"상하이? 거기가 그거 있던 곳 맞지? 그....... 뭐냐...... 그 있잖아, 우리 일제 시대 때...... 아, 씨발. 좀 있어봐. 나 기억날 것 같은데......"
 
희빈은 정말로 아는 것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보다 못한 도훈이 그가 생각하고 있던 바를 먼저 얘기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그래! 그거!"
 
희빈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이제야 생각났다.' 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도훈의 멱살을 잡고 자신의 얼굴 쪽으로 끌어 들였다.
 
"야, 이거 딴데 가서 말하지 마라. 나 몰라서 그런 거 아니다. 단지 생각이 안 났을 뿐이니까......"
 
갑작스런 그의 반응에 도훈은 당황했지만 희빈의 그런 허세가 약간 재밌기도 했기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하하, 알았어. 말 안 해. 그러니깐 이거 좀 놔줄래?"
 
"조심해라."
 
희빈은 거칠게 멱살을 풀며 말했다. 그 이후로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어느 순간엔가 선생은 들어왔고 다시 수업을 재개했다.
 
도훈은 중국과는 다른 한국에서의 교육에 실망과 희열을 반 씩 느끼며 수업을 마치는 종을 기다렸다.
 
기다리던 종 소리가 들리고 도훈은 책을 덮었다. 그리고 그가 그 책을 책가방에 넣으려 할 때였다.
 
쾅!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책상 위에 흙 발자국이 찍혔다.
 
고개를 들어보니 담배를 문 더벅머리 소년이 있었다. 찌푸린 미간에서는 그가 현재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야 권도향? 권두한? 이름이 뭐였지?"
 
"궈, 권도훈인데......"
 
도훈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생각하며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못한 것이 없었다.
 
도훈은 고개를 돌려 희빈을 바라 보았다. 혹시라도 자신이 뭔가 잘못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희빈은 그 곳에 없었다.
 
"성호야, 저 새끼 존나 잘난척 해. 뭐? 임시 정부가 어쩌고...... 아 저 새끼 옆자리에서 존나 앉아있기가 띠꺼워서......"
 
희빈은 도훈의 책상을 걷어 찬 소년 옆에서 뭐라고 입을 놀리고 있었다. 도훈은 배신감에 잠시 치를 떨었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눈 앞의 소년은 자신보다 강해 보였고 주변을 돌아보니 모두 그 소년의 편인 듯 했다.
 
책상을 걷어 찬 소년, 성호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퇴계 이황 선생이 그려진 푸른 색의 천원 짜리 한 장을 꺼냈다.
 
"야, 매점가서 고기시대 2개 사와."
 
그렇게 도훈의 첫 날은 시작되었다.
 
"고기시대......? 그게 뭐야?"
 
도훈은 식은 땀을 흘리며 물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와서는 책상을 발로 차고 한다는 말이 고기시대라는 웬 아이돌 가수 짝퉁스러운 것을 사오라고 하지 않나. 주변 아이들은 아주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나.
 
솔직히 무서웠지만 그보다 호기심이 앞선 도훈은 그 천원을 집어 들며 물었다.
 
"야, 중국놈!"
 
그 말에 고개를 돌리자마자 도훈에게 날아온 것은 상한 듯 불쾌한 냄새가 나는 비닐 뭉치였다. 반사적으로 그 것을 퉁겨낸 도훈은 자신의 앞으로 떨어진 비닐 뭉치를 집어 들어 폈다. 그 곳에는 패스트푸드 점에서 파는 일반적인 햄버거를 축소시켜 놓은 듯한 모습의 빵이 그려져 있었고 네 개의 글자가 그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바로 고기시대였다.
 
고기시대는 매점에서 파는 간식거리였던 것이다.
 
이제서야 도훈은 마음을 놓았다.
 
성호라는 눈 앞의 친구는 간식거리를 원했던 것이다.
 
"이거 사오면 되는거야?"
 
"그래. 쉬는 시간 6분 남았으니깐 그 안에 다녀와라."
 
"알았어."
 
아무 것도 모르는 도훈은 밝게 웃으며 한 손엔 고기시대의 포장재를 들고, 다른 한 손엔 성호에게 받은 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문을 박차고 나섰다.
 
4층에 있는 교실에서 벗어나 중앙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와서야 그는 깨달았다.
 
그는 매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보니 이미 쉬는 시간은 4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다. 친구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니!
 
그 때, 중앙 계단을 향해 걸어오는 소녀들이 있었다.
 
명찰 색깔을 보니 자신과 같은 1학년이었다. 그녀들의 손에 이온 음료가 들려져 있는 것을 확인한 구세주를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저기요!"
 
첫번째 부름에 그녀들이 응답하지 않자 도훈은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우, 우리......요?"
 
안경을 쓴 단발머리 소녀가 자신들을 가리켰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이 들고 있는 음료를 가리켰다.
 
"그거...... 어디서 사죠?"
 
"이거요?"
 
"예."
 
"다, 당연히 매점이죠......"
 
"아, 그러니까! 매점이 어딨죠?"
 
도훈은 절박한 심정을 담아 물었다. 소녀들은 처음보는 동급생이 갑자기 자신들을 불러 존댓말로 묻자 크게 당황한 듯 서로 눈치만 보았다. 그 때, 165cm정도의 희빈보다 큰 키와, 하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소녀가 나섰다.
 
"저기, 혹시 전학오셨어요?"
 
"네네. 매점이 어딨는지 아시나요?"
 
소녀는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저기 보면 체육관 있죠? 거기 뒤에 있어요. 근데 웬만하면 다음 시간에 가세요. 쉬는 시간도 2분 밖에 안 남았는데. 그럼."
 
그녀는 살짝 손을 흔들고 교실을 향해 뛰어 올라갔다.
 
"꺄아 늦었어! 늦었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하연!!"
 
"뭐가! 너도 포카리랑 게토레이 사이에서 흔들려놓고! 잠깐, 같이가!!"
 
소녀들의 그런 발랄한 모습을 보며 도훈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하연. 분명히 이하연이라고 했다.
 
도훈은 달렸다. 남은 시간은 2분. 그 안에 고기시대 2봉지를 갖다 줘야 한다. 자신을 믿고 맡긴 성호에게!
 
도훈의 마음 속엔 이미 하연의 눈부신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에게는 성호의 기대를 충족시킬 생각만이 가득했다.
 
'성호야. 기다려. 곧 간다.'
 
도훈은 매점 문을 열었다.
 
"어, 어서 오렴."
 
전력으로 달린 탓에 땀을 주르를 흘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도훈의 모습에 매점 아주머니는 무척 당황한 듯 했다.
 
"하, 학생. 뭐줄까?"
 
도훈은 계산대위에 당당하게 천원짜리를 올리며 말했다.
 
"고기시대 2개 주세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말이 없었다. 10초 쯤 지났을까? 혹시 셀프 서비스인가 생각한 도훈은 말없이 고기시대 두 봉지를 집었다.
 
"잠깐 학생."
 
"예......?"
 
"200원 더 내야지."
 
"......네?"
 
도훈은 한 손에 들고 있던 고기시대의 포장지를 폈다. 분명 새로 산 고기시대와 같은 모델이었다. 근데 왜 200원을 더 달라고 하는 걸까? 분명 성호는 천원을 주며 고기시대 두 봉지를 사오라고 했다.
 
도훈은 그제서야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위치한 가격표를 보았다.
 
희망소비자가격 600원
 
그랬다. 고기시대는 봉지당 600원이었다.
 
도훈은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돈을 찾을 수 없었다.
 
"......저, 저기...... 할인 되나요?"
 
"......"
 
"안 되는군요."
 
별 수 없이 도훈은 고기시대 한 봉지와 거스름돈 400원을 받고 터벅터벅 교실로 향했다.
 
성호의 부탁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 점이 미안했지만, 고기시대 가격이 600원인 것을 성호가 몰랐겠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도훈이 운동장을 반 정도 지났을 때 수업 시작 종이 쳤고 도훈은 미친듯이 달려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에 겨우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서, 성호라고 했니? 여기......"
 
책상에 턱을 괸 채 침을 뱉고 있던 성호는 도훈이 내민 한 봉지의 고기시대에 의문을 표했다.
 
"이거 뭐야? 나머지 하나는?"
 
도훈은 밝게 웃으며 거스름돈 400원을 내밀었다.
 
"네가 잘 못 알고 있었어. 고기시대는 500원이 아니라 600원이더라구. 그러니깐 두 봉지를 사려면 1200원을 줘야 하는데, 네가 1000원 밖에 안 줬잖아. 그래서 한 봉지 밖에 못 샀어."
 
"......"
 
성호는 잠시 도훈의 순진한 미소를 바라 보았다. 주변 공기가 급격하게 험악해져 갔다. 하지만 도훈은 아직 그 기류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다음 시간에 얘기 좀 하자. 우선 지금은 수업시간이니......"
 
때마침 교실 문이 열렸고 험악하던 분위기는 거짓말처럼 사그라 들었다. 도훈은 성호가 무슨 얘기를 하자고 할지 몰랐지만 아마 나쁜 얘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고맙다거나 친하게 지내자는 얘기겠지.
 
도훈은 살짝 웃으며 수업을 경청했다. 그 때, 희빈의 손바닥이 도훈의 뒷통수를 갈겼다.
 
"뭘 쪼개, 병신아. 너 이따 죽었어."
 
"......?"
 
도훈은 아무렇지 않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희빈은 장난이 너무 심한 것 같다.
 
그 때까지 그는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지옥은 곧 시작되었다.
 
종이 치고 선생이 나가자 마자, 교문이 닫힘과 동시에 급우들은 도훈을 둘러 쌌다.
 
그리고 그들 틈새를 헤치고 나타난 것은 빵을 주문했던 성호였다.
 
"서, 성호야."
 
그제서야 험악한 분위기를 인지한 도훈이 말을 더듬으며 성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놔라."
 
성호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치고 말없이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 올렸다.
 
184cm의 성호는 그 키만큼이나 덩치도 상당했고, 그 덩치만큼이나 힘도 셌기에 도훈은 그 힘을 거부하지 못한 채 위로 딸려 올라갔다.
 
"죽을래?"
 
성호는 눈을 매섭게 뜨고 도훈을 노려 보았다.
 
"으으...... 왜 이러는지 이유는 설명하...... 억!"
 
성호는 더 이상의 말을 허락하지 않고 도훈의 배를 갈겨대기 시작했다.
 
"빵을 두 개 사오라고 했지. 그럼 사왔어야지."
 
"억! 억! 하......컥! 하지만 네가......! 악! 분명히......"
 
도훈을 신나게 때린 성호는 거칠게 잡고있던 머리를 놓았다. 도훈은 의자 위에 나동그라졌고, 의자는 그 순간적인 충격을 버티지 못한 채 옆으로 쓰러졌다. 덕분에 도훈은 꼴사납게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안경을 놓치고 말았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었기에 깨지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근시인 도훈은 덕분에 거의 맹인이 되고 말았다.
 
"그래. 내가 천원만 줬지. 그럼 뭔 소리냐? 이 중국 놈아."
 
성호는 도훈의 안경을 걷어 찼다. 안경은 저 멀리 날아가 사물함 틈에 끼였다.
 
성호는 주먹을 폈다. 도훈의 검은 머리카락이 한 웅큼씩이나 뽑혀 있었다.
 
"200원은 네 지갑에서 충당하란 소리다. 알겠냐? 짱깨야."
 
성호는 도훈의 발을 밟았다. 도훈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수치심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 것보다 더욱 그의 마음 속을 많이 차지하는 것은 공포였다.
 
"전학온 첫 날이라고 살살 했더니 안 되겠네."
 
성호는 담배를 빼 물었다. 약삭빠른 희빈이 달려와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치직하는 소리와 함께 담뱃불이 붙었다. 성호는 숨을 깊게 들이 마시며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여전히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도훈의 얼굴에 후하고 연기를 불었다.
 
도훈은 갑작스런 그의 행위에 기침을 했다.
 
"손 내놔봐."
 
"......?"
 
도훈은 여전히 기침을 하며 힘겹게 성호를 바라 보았다.
 
"손 줘 보라고!"
 
성호가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자 도훈은 기겁을 하며 왼 손을 내밀었다. 왠지 오른 손을 내밀면 앞으로의 생활에 큰 지장이 올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담배를 빨아대던 성호는 담배가 반 쯤 타들어 갔을 때가 되어서야 그 왼 손을 잡았다.
 
"잘 봐라."
 
성호의 오른 손에 들린 담배가 천천히 도훈의 왼 손을 향해 다가갔다.
 
"앞으로 한 번 더 이런 실수가 있으면."
 
담뱃불의 열기가 그의 손등에서부터 천천히 전해져 왔다.
 
"네 얼굴에 이런게 새겨진다."
 
치지직
 
성호는 그의 손등에 담뱃불을 거칠게 비벼 껐다.
 
도훈은 무릎을 꿇고 왼 손을 앞으로 내민 채 비명을 질렀다.
 
발버둥을 치고 싶어도, 손사래를 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급우들이 그의 사지를 봉쇄하고 있었다.
 
힘없는 그는 그저 하늘, 아니 천장을 향해 미친듯이 고함을 질러댈 수 밖에 없었다.
 
그 날 도훈은 끼니를 걸렀다. 아니 거를 수 밖에 없었다.

숟가락은 아령같았고 젓가락은 장대 같았다. 또 그 누구도 도훈이 끼니를 거르는 것에 신경쓰지 않았다.

다행히 담뱃불로 손등을 지진 행위 이후로 그 날의 괴롭힘은 더이상 없었다.

왜 일까? 전학오자마자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이유따윈 없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도훈은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가 싫었다.

자신이 그렇게 쉬운 이유로 그런 꼴을 당했다는 것은 그 자신에 대한 또다른 모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먹지 않아 쓰린 속을 움켜쥐며 집으로 터벅터벅 들어온 도훈은 컴퓨터를 켰다.

 
이번에 전학을 오면서 아버지는 그의 생에 첫 컴퓨터를 사주셨다.

중국에서 십여년 살 동안 그가 컴퓨터를 쓸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을 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서툰 타자로 한 글자 씩 자신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 사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고민 상담 페이지나 지식 검색 페이지를 뒤적였다.

그가 찾는 키워드는 정해져 있었다.

 
담배. 빵. 매점.

한참을 찾았지만 자신이 원한 결과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가 막 포기하려던 때 거짓말처럼 오후에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전학생이 이제 성호 빵셔틀인가?'

'그런 것 같은데? 글쎄......것보단 샌드백이나 알셔틀 아닐까?'

빵셔틀. 알셔틀.

둘의 공통점은 세글자에 '셔틀' 이라는 의미 모를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도훈은 떨리는 손으로 쉬프트와 비읍을 함께 눌러 쌍비읍을 만들어 냈다.

그 후 모음 'ㅏ'와 이응을 찾자 '빵'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뜨는 수많은 검색어들에 도훈은 침을 꼴깍 삼키며 스크롤을 내렸다.

빵집. 빵 만드는 곳.

그런 평범한 소재들을 지나 머지않은 곳에 그 단어가 있었다.

빵셔틀.

도훈은 그 글자를 클릭했다.

우선적으로 뜨는 것은 빵셔틀에 대한 수없이 많은 비웃음과 조롱이었다.

아직 빵셔틀이 뭔지 정확히 모르는 도훈이 읽어보아도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그 것들은 신랄하고 잔인했다.

도훈은 지식 검색 탭에서 '더 보기'를 눌렀다.

몇 번의 클릭 후에야 그는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빵셔틀.

교내에 권세를 가진 존재들에게 매점 심부름을 강요 당하는 존재. 모든 이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빠른 자살이 벗어나는 지름길.
 
도훈은 주먹으로 키보드를 거세게 내리치며 절규했다.
 
알셔틀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빵셔틀은 매점에서 빵을 사오는 존재이지만 알셔틀은 핸드폰을 대신 빌려주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어찌 됬든 그들이 가지는 교내에서의 직위란 하등한 것이었다.
 
도훈은 낙심했다. 십여년만에 밟는 고국의 땅, 그리고 처음으로 다니는 고국의 학교에서 처음 받는 대우가 빵셔틀, 즉 노예라니.
 
인터넷에는 빵셔틀을 조롱하는 글들이 가득했고 도훈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의 편은 없었다.
 
모든 곳에서 그를 공격해 들어왔다.
 
학교에서는 구타와 모욕이 계속되었고 집에서 컴퓨터를 붙들고 온라인 게임에 미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쉬는 시간, 성호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천원을 내밀었다.
 
"고기시대 2개다. 늦지 마라."
 
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나마 성호의 심부름이 가장 낫다는 것을.
 
천원으로 고기시대 2개를 사기에는 200원이 부족하다. 그 부족한 200원을 채우는 것은 도훈의 몫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본,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행위를 관찰한 그는 그보다 더 한 행위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순응했다.
 
빵셔틀.
 
이것은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가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지게 될 신분이다.
 
빵만 제 시간에 잘 갖다주면 더이상 구타를 당하지 않아도 되니 어찌 보면 편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심신의 충격으로 지친 도훈은 그 것을 알 수 없었다.
 
10분의 쉬는 시간에서 4층인 1학년 교실에서 운동장 끝에 위치한 매점까지 달려가는 시간이 2분.
 
줄을 서고 있는 아이들을 제끼고 고기시대 두 봉지를 사는데 2분.
 
다시 교실을 향해 돌아오는데 2분 30초.
 
6분 30초라는 시간동안 그는 이 모든 것을 행했다. 가끔 아이들이 없을 때는 이 모든 것을 5분 안에도 해냈다.
 
5분 안에 도착했을 때 성호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마지막 한 입을 양보해주기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도훈은 왠지 모를 뿌듯함에 몸을 떨었다.
 
그는 아직 자각하지 못했다. 그의 노예 근성이 점점 일어나고 있음을......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실연 티드립 관계자들.jpg 4 file 오타쿠첨보냐 2013.04.15 14110 0
공지 기타 문학게시판 시한부 2대 관리자 Cab 인사드립니다. 5 Cab 2012.07.30 12070 0
공지 소설 다시보는 티드립 명작 소설 "보대리의 야근" 12 오타쿠첨보냐 2012.06.11 15240 0
공지 실연 실연 탭이 추가되었습니다 1 오타쿠첨보냐 2012.06.08 14487 0
공지 기타 문학게시판 완결작 목록 4 오타쿠첨보냐 2011.06.22 18738 1
공지 문학게시판 관리자 Aveno입니다. 1 file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0284 2
28 [虛客] Pater noster 김손님 2011.06.25 1296 0
27 백일장 토르 2011.06.25 1187 0
26 백일장. 시 두벌식 2011.06.24 1507 0
25 이런씨빨 토르 2011.06.24 1232 0
24 시조 1 두벌식 2011.06.23 1306 0
23 시벨 시조선3 시벨 2011.06.23 1316 0
22 시벨 시조선2 시벨 2011.06.23 1264 0
21 나름 진지하게 쓴 시조 2 토르 2011.06.23 1477 0
20 걍 망작 씨발 3 토르 2011.06.23 1932 0
19 시벨 시조선 2 시벨 2011.06.22 1672 0
18 [虛客] 손가락 끝을 보지말고 달을 보라 김손님 2011.06.22 1712 0
17 [虛客] NIHIL 1 김손님 2011.06.22 1486 0
16 [SF] 모니터 속 그녀 - 프롤로그 1 오타쿠첨보냐 2011.06.22 1605 0
15 [현대 판타지] 빵셔틀 - 2 오타쿠첨보냐 2011.06.22 1513 0
» [현대 판타지] 빵셔틀 - 1 오타쿠첨보냐 2011.06.22 1826 0
13 조금 오래된 이야기 - 8 ver.ilbe 3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160 0
12 조금 오래된 이야기 - 7 ver.ilbe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066 0
11 조금 오래된 이야기 - 6 ver.ilbe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128 0
10 조금 오래된 이야기 - 5.5 ver.ilbe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142 0
9 조금 오래된 이야기 - 5 ver.ilbe 오타쿠첨보냐 2011.06.22 2009 0
Board Pagination Prev 1 ...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Nex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