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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3.03.24 03:52

[해파리] 입속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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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LjMC4




이것은 내가 중학생 시절 체험한 이야기다. 곧 여름 방학이다. 여름 방학이 몹시 기다려진다.


칠월 말. 그날 나는, 산 하나 넘으면 나오는 바다에서 하루 종일 수영하고 있었다. 


해수욕장이 아니다. 가파른 절벽아래에 위치한, 현지 아이들만 알고 작은 해변이다. 


여름 휴일에는 [거기에 가면 누구 있을까?] 이런 설레임이 가득한 곳. 


그날도 아는 사람들과 함께 놀면서 몸을 검게 태우고 있었다. 


바다에서 나와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가 오후 6시쯤. 


목욕 하기 전에 수영하느라 지쳐서 목이 말랐기 때문에 부엌에 있는 수도꼭지를 틀고, 


컵에 물을 부어서 마셨다. 그때였다. 뭔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정체 모를 위화감을 느꼈을 때, 그것은 한순간에 맹렬한 구토로 바뀌었고, 


방금 마신 물을 싱크대에 쏟아 버렸다. 목이 따가웠다. 잠시 동안 기침을 했다. 


수도꼭지에서 나왔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민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마신 것은 보통 물이 아니였다. 그것은 확실히 바닷물이었다. 


나는 꼭지에 집게 손가락를 집어 넣었다가, 물방울을 빨아 보았다. 바다 맛이 난다. 


 

 

어릴 적 바다에 빠졌을 때 삼켰던 그 바닷물과 같은 맛이다. 


그런데 왜 꼭지에서 바닷물이 나오는 것일까. 


우리 물은 지하수를 끌어 올리는 것도 아니고 산에서 끌어오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수도국에서 들어오는 물이다. 소금이 섞일리 없다. 


[저기, 엄마. 수도꼭지에서 바닷물이 나와..]


엄마를 부르자 옆 거실에서 나타났다. 


한번에 봐도 나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짓말! 아까 거기서 저녁식사를 만들었는데.] 


[진짜야! 자, 여기 소금물.]


컵에 물을 부어 엄마에게 건네주었다. 


엄마는 잠시 의심하듯이 냄새를 맡았지만, 몇 모금 입에 넣더니 단순에 마셔 버렸다. 


[.... 바보 같은 소리구나. 빨리 목욕하고 밥 먹을 준비하렴. 머리가 엉망이구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머리를 쓰담었다. 나는 영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수도꼭지 물을 마셔 보았다. 역시 보통 물이 아니다. 


어머니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하지만 눈앞에서 원샷해버렸다. 


거짓말은 해도 몸은 속일 수 없다. 게다가 일부러 그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아마도 하루 종일 바다에서 수영하는 바람에 미각에 이상이 있는 것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외부에서 바닷물이 스며 들고, 일시적으로 몸이 이상한 거라고. 


미각의 착각 때문인지, 소금물을 마셔 버린 탓인지 나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수돗물은 내버려두고, 대신 냉장고를 열어 오렌지 주스를 마시기로 했다. 


컵에 부어 마신다. 그리고 나는 다시 뱉고 말았다. 바닷물이 아닌가. 


아직 절반 정도 남아있는 컵 속의 액체를 쳐다 보았다. 


색깔도 냄새도 확실히 오렌지 주스인데, 내가 마신 것은 분명히 오렌지색을 한 바닷물이었다. 


다른 것도 마셔보기로 했다. 냉장고에 있던 보리차, 우유, 유산균 음료. 냉동고 안의 얼음조차도. 


짜다. 나는 아무것도 마실 수 없었다.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목욕하면서도 알 수 있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물방울 탓이다. 몸은 시원하지만, 입안과 목구멍은 따가웠다.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저녁도 안 먹고,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다. 


진찰과 검사를 해 준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미각 장애의 원인인 내장의 이상도 없었기 때문에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때는 의사도 부모도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을거라고 낙관하는 것 같았다. 


나만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의식적으로 바닷물을 한 컵 정도 마신 적이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있다고 해도 극소수겠지만 말이다.


그건 도저히 마실 게 못된다. 


 

 

다음 날부터 나는 병원에 입원했고, 링거로 수분을 얻게 되었다. 


보통 방법으로는 수분을 공급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성분이 단순한 물이라도, 소금 맛과 향이 나는 물을 마실 수 없었다. 


마신다고 해도 곧 바로 토했다. 수분이 많이 있는 과일도 무리였다. 


심지어 입안의 침조차 짜게 느껴졌기 때문에 물을 마시지 않아도 토했다. 


또 가벼운 열도 났고 설사도 했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나빠지면서 생긴 증상이겠지만, 


그때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니라 온몸이 미쳐 버린 것 같았다. 


인간은 물을 먹지 않아도 어느 정도 살 수는 있지만, 물을 마셔야만 한다. 


마시지 않으면 죽게된다. 입원 후, 단 며칠만에 놀랄정도로 체중이 줄었다. 


내 몸이 바싹 말라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 미라가 되어 죽는 걸까? 이대로 가면 분명히 죽을 거야.. 


엄마와 아빠는 매일 나를 보러 와주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나를 소중히 한다는 걸 실감했다. 


죽고 싶지 않다. 

 

 


그런 생활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병원에 병문안을 왔다. 


당연하지만, 입원 중에는 학교를 쉬고 있었다. 


부모님도 학교에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병실에 들어 오자 마자, 무표정 인 채로 멍하니 입을 열었다. 


[마른 저기......]


말투가 이상해서, 나는 웃고 말았다. 오랜만에 웃었다. 


나에게 아직도 웃을 기운이 있다는 게 놀랄 뿐이었다. 


그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고, 다른 입원 환자도 없었기 때문에, 


병실에 있던 건 나와 그 뿐이었다.


그는 해파리라는 별명을 가진 특이한 남자였다. 


바다에 떠있는 해파리처럼 반에서도 조금 떠있는 존재.


그 이유는, 그가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소위 자칭 보이는 사람이다. 


어느 날 집 욕조에서 몇 마리의 해파리가 떠있는 것을 본 날부터 그런 것을 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그런 특별한 능력을 겉으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내가 어째서 그런 능력을 가졌냐고 원인을 물어보면 


[나는 질병이라고 생각해.]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당시 나는 해파리와 자주 놀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면 재미있는 체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위험한 거 같아. 죽을지도 몰라..]


나는 해파리에게 말했다. 


그런 말이 생각보다 시원스럽게 나왔다. 그런 나를 해파리는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왼팔 관절 부분에 박힌 링겔 바늘에서 영양과 수분을 보충해 주는 팩에서 끝났다.


[이건 ......, 여름 감기가 아닌데. 무슨 일이야?]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해파리에게 말했다.


도중에 그는 맞장구도 치지 않고 조용히 내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응.] 이라고만 말했다.


[야, 입 좀 벌려봐.]


[...... 입?]


[응. 아~ 하고 벌려봐.]


나는 입을 벌렸다.


그러자 해파리가 조금 허리를 굽혀서 내 입속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 아, 이래서 짠 맛이 느껴진 거였군.]


해파리가 말했다.


[바다가있어. 네 입에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해파리는 뭔가를 납득 한 것처럼 혼자 수긍하면서


[그럼, 나 잠시, 바다에 갔다 올게.]


라는 말과 함께 병실에서 나갔다.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입을 벌린 채로, 그가 나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간호사가 사탕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해파리가 병원 매점에서 산건데, 나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침 때문에 짠맛이 강해서 맛은 별로 없었지만


다른 거랑 비교하면 그래도 먹을만은 했다.

 


 

그날 밤, 나는 지금까지 겪었던 메스꺼움 중에서 가장 심한 메스꺼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고있는 동안, 반사적으로 옆에 놓여있던 물통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마치 폭포처럼 입 안으로 물이 흘러 들었다.


하지만 부어도 부어도 물이 몸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리고 물이 몸 속으로 간신히 들어갔을 때, 나는 침대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리니 병실에 불이 켜져있었고, 내 주위에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너스콜을 눌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곁에는 5 리터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은 물통이 있었는데


그 물통의 절반이 구토물로 가득 차 있었다.


뱃속에 들어간 게 없었기 때문이지, 무서울 정도로 투명한 액체였다.


내 몸에 아직까지 이렇게나 많은 수분이 남아 있었는지 놀랄 정도로 말이다.


간호사와 의사는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얘기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고 있어. 괜찮아.]


어머니에게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안에 위화감을 느꼈다.


아니, 위화감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위화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입안이 깔끔해진 것이다.


 

 

지금까진 토만 했다하면 악몽같은 기억밖엔 남지 않았는데 말이다.


침을 삼키려고 했지만, 입안이 바싹 말라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낮에 해파리에게 받은 사탕 하나를 입에 물었다.


달콤했다. 그 어떠한 것의 방해 받는 일 없이, 말 그대로 순수하게 달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물 좀 달라고 했다.


조심 조심 입에 부었다.


한 모금, 혀끝으로 확인하려고..


두 모금, 가볍게 입에 부어본다.


그리고 단숨에 마셨다.


이때의 물 맛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물이 이렇게까지 맛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자연스레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입원 생활은 매우 괴로웠지만, 운 것은 그때 뿐이었다.


간신히 얻은 수분을 눈물로 사용해서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울면서 의사와 어머니에게 증상이 치료 된 것을 말했다.


뺨을 타고 입안으로 들어온 눈물은 역시 좀 짭긴했다.


그리고 스스로 말하는긴 뭣하지만, 나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입원 자체는 단기간이었던 것도 있었고, 체력도 그만큼 빨리 되찾아갔다.


1학기 종업식에는 가지 못했지만, 여름 방학은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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