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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1.06.26 03:23

[기묘] 약국 l

조회 수 2526 추천 수 0 댓글 1

 

얼마전 집 앞에 있는 약국에 약사가 새로 왔다.

전에 있던 할아버지도 친절해서 좋긴 했지만 이번에 새로온

사람은 젊고 예쁜 여자여서 더 좋은 것 같다.




"학원다녀 왔습니다. 콜록콜록."

"진수 너 감기걸렸나 보구나. 그러게 엄마가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랬잖니."

"괜찮아 엄마. 곧 나아지겠지."




이제 내일이면 나도 고등학생이 된다.

고등학교는 어떤 곳일까라는 설렘과 기대가 가슴 한 켠에서

기분좋은 떨림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녀공학인 만큼 이번엔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겠지?




"콜록콜록... 엄마 라면 하나만 끓여주세요."

"밥먹은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라면이야?"

"먹고 싶단 말야. 콜록... 콜록콜록... 으흐음."

"에휴, 니 고집을 누가 말리니? 그나저나 기찬이 너 기침이

그렇게 심한데 정말 병원 안가도 되겠어?"

"괜찮다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무래도 종합감기약이나 하나

사먹어야 할 듯 싶다. 

새로생긴 약국에 약사 누나하고도 친해질 겸 난 라면물을 올리는

엄마에게 금방 오겠다고 한 뒤 외투를 걸쳐입고 집을 나섰다.




"얼른 와. 라면 불으면 맛 없어."

"네."




멀지 않은 거리라 단숨에 약국 까지 달려간 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고른 후, 신호대기중인 차창에 얼굴을 한번 비춰보았다.

뉘집 자식인지 인물한번 훤칠하구만.

약국안엔 전에 봤던 예쁜 약사누나가 종이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난 조심스럽게 약국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콜록콜록... 안녕하세요. 저기 감기약 좀 사러 왔는데요."

"병원엔 갔다왔어요?"

"아뇨, 콜록... 그냥 병원 안가도 살 수 있는 약 같은거는 없는지..."

"흐음. 그럼 이거 새로나온건데..."




친절하게 식후 30분에 복용하라는 설명을 해주며 약을 건네준 

약사 누나는 가까이서 보니 훨씬 더 예뻐보였다.

그녀의 붉은 입술에서는 잘은 모르겠지만 달콤한 향기가 났다.

약사가... 저렇게 예뻐도 되는건가?




"왜 이렇게 늦었니? 라면 다 불었잖아."

"뭐 어때요.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하여튼 너도 참 별종이다. 그나저나 어디 갔다온거야?"

"응, 감기약 좀 사오느라... 콜록콜록."




라면을 먹고 30분 뒤 약사누나가 지어준 약을 한입에 털어넣은

난 내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켠 후,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버릇처럼 침대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약사누나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왔다갔다 거렸다.

이런걸 두고 첫눈에 반한다고 하나?




"으앙 누나앙... 사랑해..."




난 침대 위에서 벼개를 껴안고 약사누나를 생각하며 뒹굴거렸다.

그러다 열려진 문틈으로 엄마가 사과 접시를 들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색하게 말했다.




"엄마 고등학교는 어떤 곳일까?"

"너 여자친구 생겼니?"

"아냐 그냥 좀..."

"아무튼 감기걸렸는데 이거 먹고 일찍 자. 감기엔 푹 쉬는게 제일이야."

"네."




엄마는 컴퓨터 책상위에 사과접시를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난 의자에 앉아 인터넷에 접속한 후 엄마가 가져다 놓은 사과를

하나 집어 들었다.

거대한 지네 한마리가 수백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내 손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난 재빨리 지네를 던져 버렸고,

내 손에서 던져진 지네는 방바닥에 과즙을 남기며 어느새 사과로

바뀌어 있었다.




"어우, 생각보다 감기가 심한가? 왜 이러지?"




난 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한봉다리 더 입에 털어넣고는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누웠다.

약기운 탓인지 슬슬 졸음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도 난 약사 누나를 생각하며 시나브로 잠이 들었다.




"기찬아 일어나야지. 벌써 7시야."

"어우 10분만..."

"얼른 일어나 학교가야지. 첫날부터 지각할거야?"




눈을 떴을 땐 사람만큼이나 커다란 지네가 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난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 지네를 피해 거실로 도망쳐 나왔다.

거실엔 또 다른 지네가 쇼파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징그러운 다리를 꿈틀거리며 금새 내 뒤를 따라나온 지네는 

보기에도 끔찍한 촉수를 내 어깨에 올려놓았다.

미친듯이 촉수를 뿌리친 난 주방 도구함으로 달려가 식칼을 꺼내들었다.




[오늘 오전 7시경 대전시 XX동 XX아파트에서 45살 김모씨와 

41살 정모씨가 아들 김XX(16)군에게 살해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김군은 발견당시 지네를 죽였다며... 경찰은

정신감정을...]




치이익




텔레비전을 끈 약사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종이에

뭔가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실험대상 : 고등학생

약 물 : SD-3759

반 응 : 환각(지네)

결 과 : 살인

결 론 : 실험성공




그 순간 약국 문이 열리며 고급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은 한 중년

여인이 인상을 찌푸린채 배를 만지며 들어왔다.

약사는 펜을 내려놓고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냈다.




"어서오세요."

"아침에 먹은 랍스타 때문에 속이 좀 답답해서 그런데 소화제 좀 있나?"

"여기 이게 새로나온 건데 한번 드셔보세요."

"응, 고마워."




중년 여인이 만원짜리를 내고 거스름 돈도 받지 않은채 약국을 나가자

약사는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또 다시 펜을 들었다.




실험대상 : 주부(30대중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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