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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2013.06.17 20:26

선생님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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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에요?] 나는 시시한 말을 해버렸다. 뭔가 더 그럴싸한걸 말할 수 있으면 좋았는데. [여기? 학교.] [네?] [그건 그렇고. 안 올라오니? 바로 거기가 현관이야. 나막신 상자에 슬리퍼가 있거든? 신고 들어와.] [네...] 나는 그 건물 현관으로 향했다. 활짝 열어 놓은 문 저쪽에는, 먼지처럼 보이는 나막신 상자와 복도가 있다. 전등은 없었지만, 유리 창문에서 밝은 햇살이 비춰서 건물 안이 잘 보인다. 좌우로 나 있는 복도에는 [일, 이학년.] 이나 [삼, 사학년.] 이라고 써있는 푯말이 벽에 달려 있다. 현관 맞은편에는 계단이 있다. 나는 겁을 내면서 발을 내디딘다. 한쪽 발만 올려도 삐끗 삐끗 거리는 오래된 나무 계단이다. 좁은 교실 벽에는 압정 자국과 그림 같은 자투리가 붙어 있었다. 이 층에 도착하니 일 층처럼 복도가 있다. 왼쪽 교실에서 아까의 그 여자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나는 뭐라고 답변할지 몰라서, [참!] 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조금 웃으면서, [여기는, 옛날에는 초등학교였어. 지금은 폐교지만. 어린이가 줄어들어서.] 그런 말을 하면서 나를 교실 안으로 데리고 갔다. 푯말에는 [육학년생] 이라고 쓰여 있다. 작은 교실에는 책상이 다섯 개가 있다. 그것이 아마도 마지막 졸업생의 숫자인지도 모른다. 나는 수많은 책상이 가득 들어찬 자신의 교실을 떠올리며, 어쩐지 눈앞의 광경이 장난감처럼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책상에 손을 두고,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원래 이 토지는 우리 집 물건이었기 때문에, 폐교된 뒤에 돌려받았어. 부숴도 좋지만, 지금 집에는 나와 어머니만 있기 때문에. 빈 교사의 바로 옆에 단층집이 있었을 거야. 거기에 살고 있단다.] 그렇게 말하니까 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지금은 여름방학이지요? 나, 여름방학 기간에 이 주변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있어.] [공부?] [응. 나는, 옆 도시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어. 임시고용이지만. 나도 여름방학이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그래서 이 여름방학 학교에서는 월사금은 받지 않아. 단 오전만 수업한단다. 학교에서 숙제는 가르쳐 주지 않아. 평소에 정해진 시간에 할 수 있었던 과목을 공부하고, 여름방학 동안만이라도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과목, 흥미가 있는 과목을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손가락이 책상의 나뭇결을 스친다. [그런데 오늘은 모두 쉬는가 봐.] 그렇게 말하더니 얼굴이 조금 흐려졌다. [감기가 유행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창 밖으로 눈을 돌린다. 나도 덩달아 그쪽을 향한다. [너, 몇 학년이야? 어디 아이지? 말투가 틀리네.] [아, 그게 저..] 나는 조금 말을 더듬고 나서, 자신이 육 학년인 것, 그리고 친척 집에 놀러 온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집 이름도 말한다. 그리고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같은 성씨라는 사실을 떠올리고서, [정원에 나무가 있는 이부키 씨의 집입니다.] 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아, 시게가 사는 곳이네.]라고 수긍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분했다.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 시게의 말은, 역시 거짓말이었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눈이 크고, 젊었다. 꽃무늬가 그려진 흰 원피스가 어울리는 예쁜 사람이었다. 왠지 비밀스럽게 혼자만 알고 싶을 정도로. [이 교실이 가장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항상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 탐험하다가 헤맨 거지? 공부하고 가. 아무도 오지 않아서, 나도 싫증 나고 있었단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은 나의 선생님이 되었다.

 

교실에 있는 책상은 다섯. 하나는 선생님이 앉는 자리. 그리고 나머지가 여름방학 학교의 학생 수였다. 선생님은 일부러 다른 교실에서 나를 위해 책상과 의자를 날라 와 주었다. 5번째 학생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 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은 누구냐는 말에 [마지막 졸업생은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나. 졸업하는 것이 쓸쓸해서 슬펐지만, 중학생이 되는 것은 기뻤고, 그 후에 학교가 없어져 버리는 것이 슬펐단다. 마이너스1 플러스1 마이너스1. 역시 기쁨보단 슬픔이 더 컸다고 생각해. 이미 10년 이상 지난 일이네.] 선생님이 눈을 조금 가늘게 뜨자, 눈동자의 빛이 바뀌었다. [자, 무엇을 공부할까? 무엇을 좋아하니?] 나는 생각했다. [수학이 싫어요.] 선생님은 나의 농담에 웃지도 않고 [응, 그래?] 라고 말했다. [사회와 국어와 과학과 가정과 음악이 싫어요.] 내가 늘어놓은 하나하나에 수긍한 뒤, 선생님은 [좋아, 그럼.] 이라고 말하고 칠판으로 향했다. 작고 귀여운 칠판이다. 분필을 하나 집고, 선을 긋는다. [세계사대문명] 그런 글자가 눈에 보였다.


선생님의 글자는 멋졌다. 지금까지 그 어떤 선생님보다도 멋진 글씨였다. 그래서, 그 세계사대문명이라고 하는 단어도, 상당히 멋진 것으로 생각돼서 두근거렸다. [세계사는, 아직 네가 배우기 전이지만, 수학과 국어와 사회, 과학도 싫어한다면 공부 자체를 싫어하는 거야. 그렇지만 공부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해서 선생님은 세계사 수업을 했다. 처음 하는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고, 선생님의 입에서 이야기되는 아득히 먼 옛날의 세계를, 나는 머릿속에 반짝 반짝거리는 마음으로 그려넣고 있었다. 마침내 선생님은 분필을 놓고 [오늘은 여기까지.] 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자신의 피라미드가 생겨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멀어지고, 나는 폐교가 된 초등학교 교실에서 오늘 막 만난 선생님과 둘만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어때, 재미있을 것 같지?] 라고 묻길래, 응이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이 방긋이 웃으면서, [잘됐네. 사실은, 대학에서 사학과 전공이었어. 준비를 한 적이 없어서, 수학 이외에는 이것밖에 할 수 없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그런 모습이 매우 예뻤고, 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즉 곤경에 빠진 것이다. [벌써 점심이네. 오늘은 끝. 내일은 더 빨리 오렴.] 그래서 이런 선생님의 말에는 간단하게 수긍해버렸다. 왠지 모를 아쉬움을 뒤로, 교정에서 뒤돌아본 나를 이 층 교실 창문으로 선생님이 손을 흔들어서 배웅했다. 나도 지지 않을 정도로 손을 흔든 뒤, 내일도 반드시 와야겠다고 마음에 생각하고 돌아가는 길로 들어섰다. 돌아가려면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을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쳇..] 이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면서 발을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올 때는 어둑어둑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엄청 간단하게 빠져 나오게 됐다. 그 후 나는 이부키씨의 나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가 만들어 준 소면을 먹고, 내던졌던 숙제를 조금 하고 나서 낮잠을 자고, 요우와 그 친구들과 섞여서 공을 차면서 노니까 하루가 끝났다. 그날 밤, 시게가 없는 집은 지독하게 조용했다. 나는 불을 끄고 나서 모기장 너머로 보이는 천장의 나뭇결을 올려다보며, 오늘 만난 선생님과 그 작은 학교를 생각했다. 오늘 아침, 공부가 싫어서 밖으로 뛰어나왔는데도, 지금은 빨리 그 학교에 가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어쩐지 이상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 곧바로 집을 나섰다. 요우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지만, [어디긴!] 대충 말하고 나왔다. 오늘은 가방을 챙기지 않았다. 음식이 필요한 그런 모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제처럼 고장수호신을 모신 수풀에 들어가서, 어둑어둑한 나무의 아치를 빠져나갔지만, 오늘은 그렇게 무섭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두렁 길을 빠져나와서, 언덕길을 오르자 학교가 보인다. 이 층의 창문 근처에 선생님이 있다. 턱을 괴고 멍하니 밖을 보고 있다. 나는 손을 흔든다. 이번에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어서 와.] [곧 올라갈게요.] 그렇게 해서 교실에 들어갔다. 오늘도 다른 아이들은 오지 않은 것 같다. 할 일이 없었던 선생님은 기쁜 듯이 나를 맞이했고, [어제에 이어서 계속.] 이라며 분필을 집었다.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에게해에 번성한 미케네 문명이 멸망한 후, 철기문화 시대로 들어가면서 그리스에서는 많은 폴리스라고 하는 도시국가가 생겼다는 것을 배웠다. 그중에서 아테네나 스파르타라고 하는 유력한 폴리스가 나타나고, 동쪽의 대제국 아케메네스,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공에 대항한 것이 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를 격퇴한 뒤에 각각의 폴리스가 모여서 결성한 것이 델로스동맹.

 

맹주 아테네와 다른 동맹을 만든 스파르타가 싸운 것이 펠로폰네소스전쟁. 중우정치에 빠져서 약체화된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대신해서 떠오른 테베(Thebes).... 테베(Thebes) 선생님의 분필이 거기서 멈췄다. 교단에 서 있는 등이 굳어진 것을 알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이 퍼뜩 제정신이 들었는지 곧 칠판지우개를 손에 들고, [테베(Thebes)]를 [테바이]로 고쳐 썼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생님은, 그 후 [테바이] 는 아테네와 연합해서 북방의 침략자 마케도니아와 싸웠지만 깨졌고, 시대는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사회에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거대한 전제국가사회로 옮겨가 갔다고 말했다. 그때는, 그것을 고쳐 쓴 의미를 몰랐다. 단지 선생님의 등이 한순간, 무겁게 가라앉은 것 같은 생각이 든 것은 확실했다. 헬레니즘 문화의 설명까지 끝나고, 드디어 선생님이 손을 놓았다. [지쳤어. 계속 같은 과목을 하니까 싫증 난다. 다음에는 이걸 해 보지 않겠니?] 그래서 받은 것이 수학문제가 적힌 종이였다. [헉..] 하지만 자세히 보니까 의외로 간단할 것 같다. [어디까지 진도가 나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어려울지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라는 듯이 스피드하게 풀자 선생님은 [굉장하네!] 라며 손뼉을 쳤고, [그럼, 이건 어때?] 라며 다음 종이를 꺼냈다. 여유만만. [네 또 있어요?] 이번에는 솔직히 조금 어렵지만, 어떻게든 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꽉 쥐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사이에 세계사 수업은 수학 수업으로 변했고, 문제를 충분히 풀고 나니까 점심이 되었다. [내일 또.] 돌아가는 길, 결국에는 싫어한다고 말했을 것인 수학과 어느 사이에 친구가 돼있었던 사실을 떠올리면서 걸어갔다. 수학 문제를 손으로 직접 손으로 풀고 있으면 어쩐지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그다지 싫지 않았다. 내일 또 가자고 생각했다.





괴담돌이 http://blog.naver.com/outlook_e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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