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조회 수 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린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꽃이 피는 봄이 왔다.
살랑거리는 봄 바람을 느낄새도 없이 이제는 외투를 벗어 던져야 할 시기가 오고 있었다.

날이 점점 뜨거워 질수록 우리 사이도 뜨거워졌다.
쌀쌀한 겨울밤처럼 냉랭했던 분위기로 나에게 다가왔던 그 아이는
시간이 지나 봄바람 처럼 포근한 동생이 되었고 함께 봄 길을 거닐다보니
어느샌가 우리는 여름햇살처럼 뜨거운 연인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연인이 되었지만 겉으로 느껴지는 우리 사이에 큰 변화가 있는건 아니었다.

"치워."

"싫어."

"치우라고 했다."

"싫다고 했다."

"야. 니가 유치원생이냐? 왜 이렇게 말을 안들어?"

"야. 니가 우리 엄마냐? 왜 자꾸 시키는데?"

"야!"

"왜!"

우리는 자주 티격태격거렸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성격은 상극이었다. 항상 꼼꼼하고 깔끔한 걸 좋아하던 그 아이와는 달리 나는 평소엔 느긋한 편이었다.
그 아이는 최씨였고 나는 강씨였다. 속된 말처럼 우리는 둘 다 고집이 센 편이었다.
항상 아무것도 아닌 일로 투닥거리고는 했다.

며칠간 그 아이가 우리집을 찾아오지 않은 사이 내 방은 또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읽다 내려놓은 책과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수북히 쌓여 있었다.

보통은 어느정도 티격태격하다 내가 못이기는 척 그 아이 말을 들어줬지만 가끔은 나도 괜한 오기가 생겨 끝까지
고집을 부리곤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치워라."

"나쁜 말로 해도 안치울건데?"

"야 눈이 있으면 방 꼬라지 좀 봐. 이런데서 살고 싶니?"

"어. 편해. 완전. 깨끗하기만 하구만 뭐."

그 아이는 난 뚫어질듯이 노려봤다.

"뭐. 왜. 아이고 저 눈 봐라 눈. 사람 죽이는 눈은 저렇게 생겼구만? 왜? 치게? 한대 쳐 보든가. 이 참에 나도 깽값이란거 한 번 받아보자."

말로는 안되겠다는 걸 느꼈는지 그 아이는 노선을 바꿔 아까보다 다정하게 얘기했다.

"그냥 우리 같이 치우자? 응?"

"의욕이 안생겨."

부글부글 끓고있는 그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가끔 보이는 저런 표정이 이상하게 귀여워보였다. 그래서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오빠."

"왜?"

"방 치우면 뽀뽀해줄게."

이번엔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 차라리 돈을 줘."

"뭐?"

"뽀뽀. 그까이꺼 한다고 쌀이 나와 밥이 나와. 그러니까 차라리 그냥 돈을 달라고. 그럼 생각해볼께."

"야!"

결국 난 한 두 대 얻어맞고 나서야 방을 치웠다.

그 아이는 가끔 그렇게 다툼 아닌 다툼을 하고나면 토라져서 나에게 한 마디 말도 안하고 가만히 앉아있을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눈치를 보다가 옆으로 슥 다가가 그 아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 삐졌어?"

"아 몰라. 건들지마."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청소를 하기 싫다는게 아니라그냥 뭐 가끔 이렇게 지저분하게 사는 것도 좋지 않겠나..
그런 말이지.. 너무 빡빡하게 살면 재미 없잖아?"

날 찌릿 째려보는 그 아이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토라져있는 그 아이 근처를 강아지마냥 돌아다니면서
계속 말을 걸다보면 화를 풀곤 했지만 가끔 단단히 삐지는 일이 있었다. 그럴 때는 끝까지 아무 말도 없이 날 째려보기만 했다.

그러면 난 슬그머니 부엌으로 갔다.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앞에 갔다주고 계속 먹으라고 권하면
그제서야 그 아이도 못이기는 척 굳은 얼굴을 풀고 웃어주곤 했다.

이사를 온 후 몇 달간은 내 방 냉장고에 들어있는 거라곤 물과 맥주 뿐이었다.
그 아이를 알게되면서부터 어느샌가 내 냉장고 안은 식재료들로 채워져갔다.

새로생긴 내 취미는 장보기였다.

언제부터인지 퇴근을 하기 전에 마트에 들러 이런저런 음식재료를 사는게 내 취미가 되었다.
그 이유는 그 아이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먹는 걸 좋아했다. 호리호리한 체형과는 달리 뭐든지 잘 먹는 편이었다.

내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나도 행복해졌다.
남들처럼 여자들이 꿈꾸고 바라는 특별한 이벤트나 선물을 챙겨 줄 주변머리도 없는 나였기에
내가 그 아이를 위해서 해 줄 수 있는일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항상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 아이를 위해 나는 마트에서 이 것 저 것 먹을거리를 사와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장보기는 내 새로운 취미가 되어 있었다.

둘 다 일을 하다보니 우리는 주로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서로의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침대에 기대고 앉아서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아이는 어느새 내 옆으로 와
어깨에 얼굴을 기대곤 했다. 그런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끔 못견딜정도로 사랑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럴때면 그 아이를 꼭 껴안곤 했다.
내 품에 파고드는 그 아이의 체온이 느껴지면 피로도 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오빠. 오빠 심장 엄청 빨리 뛴다."

"뭐.. 협심증이라도 오나 보지."

피식 웃는 그 아이 얼굴을 보는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 아이가 일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는 노래였다.
가끔 회사에서 혼나거나 싸우고 나면 나에게 전화를 해서 씩씩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야! 나와. 노래방가자."

"웬 노래방? 너 또 회사에서 깨졌냐? 또 뭔짓을 하셨어요?"

"성질 긁지 말고 나와라."

"... 어디로 갈까?"

그렇게 노래방에서 악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샌가 평소의 그 아이모습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그 아이는 내 노래를 듣는 걸 좋아했다.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잘하는 것도 아닌 그냥 평범한 내 목소리를 듣는 걸 좋아했다.

일이 바뻐 며칠동안 만나지 못하게 되는 날이면 그 아이는 항상 자기전에 전화를 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오빠 나 노래 불러줘."

"뭔 노래야 또. 그냥 디비자."

"불러줘~ 듣고 싶어."

"너 mp3 살 돈 없어서 그래? 하나 사줄까?"

그 아이는 한참을 졸랐고 결국 나는 노래를 불러줘야했다. 나에겐 참 쑥스러운 일이었다.
노래를 듣다보면 그 아이는 잠이 들었다.

전화기 너머로 울려퍼지는 우스꽝스러운 노래소리와 함께 여름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22977 현대 싼타페 개소리 결함ㅋㅋㅋㅋ 2015.07.27 106
22976 내년부터 경차도 취득세 낸다네요.. 2015.07.27 52
22975 피도 눈물도 없는 박사님 2015.07.27 31
22974 외국인의 한국인 역관광. 2015.07.27 48
22973 무서버 ㅜㅜ 2015.07.27 36
22972 사무라이 칼 2015.07.27 47
22971 임기응변 2015.07.27 28
22970 야, 솔직히 여자가 할수있는게 뭐가 있냐?. 2015.07.27 42
22969 터널내 아반떼 차선변경 실패사고(퍼옴) 2015.07.27 46
22968 흔한 슈트 퀼리티 2015.07.27 65
22967 얼음과 10마리의 고양이 2015.07.27 25
22966 집사야~ 일루 와 봐.gif 2015.07.27 53
22965 박병일 명장이 현대를 고소한다고 했으니 기대 됩니다 2015.07.27 63
22964 여자친구 엉덩이를 만졌더니 2015.07.27 54
22963 경주 한화리조트 숙박중입니다 소고기 맛난데 추천해 주세요 2015.07.27 115
22962 엄청난 반응속도 2015.07.27 35
22961 독일의 교통문화 2015.07.27 50
22960 짐캐리의 여름휴가 2015.07.27 68
22959 백주부님 아프리카 여행가셨을때 2015.07.27 53
22958 (19금) 여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섹시남이 되는법을 알아봅시당. 2015.07.27 88
22957 3대가족 죽을뻔했습니다 어떻게처리해야하나요 2015.07.27 21
22956 미용실 갔다온 냥이들 2015.07.27 29
22955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웃긴게.. 2015.07.27 32
» 내 스물 아홉 이야기 11. 2015.07.27 33
22953 헷갈리는 국기들 2015.07.27 51
22952 오늘 출퇴근하면서 본 진귀한 장면입니다. 2015.07.27 43
22951 비싼 차에 뜨거운 물을 뿌려보았다 2015.07.27 41
22950 오늘자 역사학자 전우용님의 트위터. 2015.07.27 26
22949 서울시민 연령대별 사망 순위 2015.07.27 36
22948 군단 주임원사 2015.07.27 67
22947 1.5억원 투자처 선택 2015.07.27 85
22946 월급날 2015.07.27 26
22945 3대가족 죽을뻔했습니다 어떻게처리해야하나요(동영상)첨부 2015.07.27 42
22944 냥이발 2015.07.27 44
22943 영화 아저씨를 본 엄마의 카톡. 2015.07.27 69
22942 흔한 바닥에 전기코드 고정하는 법. 2015.07.27 135
22941 ■ 다시보는 성재기 일침들. 2015.07.27 26
22940 아이고 나으리 2015.07.27 54
22939 최근의 불미스러운 문제에 관하여... 2015.07.27 83
22938 ▶◀ 오늘이 뭐 하기 좋은 날인지 아세요?. 2015.07.27 55
22937 오늘 다큐 3일에 나왔던 대안학교(푸른숲 발도르프 학교) 학부모입니다. 질문 받아볼까요? 2015.07.27 91
22936 초능력 하나 고르기 2015.07.27 95
22935 EXID 팬아트. 2015.07.27 29
22934 (펌)제헌절이 공휴일에서 제외된이유 2015.07.27 35
22933 부산 마린 파나메라 2141 너 잡히지 마라 2015.07.27 176
22932 이 차의 차종이 무얼까요? 2015.07.27 34
Board Pagination Prev 1 ... 345 346 347 348 349 350 351 352 353 354 ... 849 Next
/ 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