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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0 12:42

우리들의 대화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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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들은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주말에 술집에 모여 이런저런 주제들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두세시간은 훌쩍 지나가버리곤 한다.
다 큰 성인 남성 넷이서 하하호호 수다를 떨며 주말을 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다.
자주 만나다보니 대화의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일 이야기부터 영화 이야기 음악이야기 등 여러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그 대화의 주제나 수준의 격이 심히 떨어지는경우도 있다.
초등학생도 하지않을 주제를 놓고 마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냥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과연 이게 30대를 넘긴 남성들이 모여서 할 얘기들인가 이 쓰레기 같은놈들..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어느새 그 사이에
끼어서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
가끔은 진지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 거의 분기마다 한번씩 이긴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진지한 얘기를 해도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최근에 나눴던 대화의 주제는 '후레쉬맨이 강한가 바이오맨이 강한가' 였다.
이 대화의 발단은 내가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 말에서였다.
"요즘 우리 조카가 파워레인저에 푹 빠졌더라."
"그래? 요새 애들은 파워레인저가 대세인가보네. 그래도 후레쉬맨이 최고지."
"뭔소리야? 후레쉬맨 보다는 바이오맨이지."
이렇게 뜬금없이 토론이 시작됐다.
"장난하나.. 사람들이 롤링발칸은 기억해도 바이오맨 필살기가 뭔지는 알기나 하냐?"
"야 바이오맨은 우주특공대야. 이새끼야. 후레쉬맨은 지구방위대고 바이오맨은 현역이고 후레쉬맨은 향토예비군 정도 되겠네 상대가 되겠냐?"
"미친소리 하네. 바이오맨은 중간에 노란애가 죽는거 알기는 하냐? 그만큼 더 약하단 얘기 아니겠어?"
이렇게 쓸데없는 토론은 점점 더 그 열기를 더해갔다. 가만히 듣고있던 친구가 넌지시 스필반은 어떠냐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봤지만
어디 우주형사나부랑이가 끼어드냐며 친구의 의견은 단번에 일축되었다. 이 열띤 토론은 한시간이 넘도록 계속되었고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채 대화를 마무리 해야 했다. 이처럼 개드립으로 무장하고 어떤 이야기에도 무슨 이야기를 꺼내도 진지하게 받아치는게
나와 친구들의 대화방식 이었다. 다시 술을 마시던 중 이번엔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나 일 그만둘까봐."
"왜? 그럼 뭐하게?"
"... 호카게."
나루토가 완결되고 요즘 나루토 정주행중인 친구의 한마디였다. 다른사람들이라면 무슨 개소리냐며 비웃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 그거 등본상 주소가 나뭇잎마을이어야 될껄.. 일단 주소이전부터 해야겠네."
"그래. 출신성분도 본다더라. 가족관계증명서도 떼와라. 가족중에 모래마을이나 뭐 이런데 사람 있으면 안뽑는대."
"나도 일 그만두고 해적왕이나 할까?"
"선박등록증은 있냐? 직원도 있어야 될껄. 소말리아에 괜찮은 애들 많다더라. 근데 걔들이 취업비자가 나올라나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원피스 봤냐? 기어4가 나왔어."
"또? 걔는 무슨 보통1종이여 뭐여. 기어가 몇단까지 있는겨."
이토록 쓸데없는 대화들로 주말을 보내는게 우리들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친구는 여자친구와 헤어질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약 4개월만에 이루는 쾌거였다.
우리는 다시 모였다. 평소와 달리 친구의 표정이 어두웠다. 친구는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며 우울해 하고 있었다.
이새끼가 살이찌더니 배만 부른게 아니라 진짜로 배가 불렀구나 라며 니가 뭔데 건방지게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냐는 우리의 추궁에 친구는 여자친구가 술만 마시면 연락이 안된다며 도저히 힘들어서 안되겠다는 말을 꺼냈다.
사실 둘 사이의 관계가 위태위태하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이 일로 몇 번인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고친다는 말뿐
매번 같은 상황이었고 헤어지자고 말해도 여자친구의 매달림에 맘약한 친구가 다시 맘을 돌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헤어지는게 좋겠다고 말했지만 친구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답지 않게 진지한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그래서 어쩌려고?"
"뭘 어째. 헤어져야지. 근데 연락오면 또 맘약해질 것 같아."
"내가봤을 땐 그 버릇 못고친다. 고칠거면 진작 고쳤겠지."
"그건 아는데.. 어쩌냐?"
"자 예를 들어줄게. 니가 지금 여자친구랑 결혼을 했어. 그때까지도 니 여자친구는 술만 마시면 연락이 안되겠지?
니가 퇴근을 했는데 집에 니 와이프가 없으면 넌 전화를 하겠지? 근데 안받어. 너는 피곤하지 방에서 애는 울지 와이프는 여전히
연락이 안되겠지? 여차저차해서 와이프가 왔어. 근데 와이프는 만취해서 아무것도 못하겠지? 그럼 너는 우는 애를 업고 와이프
해장국을 끓이겠지? 그러다 보면 넌 쉬지도 못하고 출근하겠지? 엄청 피곤하겠지? 그러다보면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겠지?
그리고 와이프는 또 전화를 안받겠지? 그럼 넌 또 찾으러 가야겠지? 그럼 일을 제대로 못하니까 넌 곧 짤리겠지?
여전히 와이프는 전화를 안받겠지? 그럼 너는 애를 업고 옆집에 가서 젖동냥을 하겠지?
옆집 처자한테 가서 제발 젖좀주세요 라고 말했다가 성추행법으로 신고당해서 차디찬 철창 안에서 니 비루한 인생을 마감하겠지.
그게 니 앞날이야."
그 말을 듣고도 친구는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친구가 입을 열었다.
"난 그래도 결혼까지 생각했어.."
그 한마디에 우리들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결국 참지못하고 입을 열고 말았다.
"... 아이 크라이.. "
친구는 필사적으로 평정심을 찾으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른친구가 말했다.
"그래. 니 여자친구는 헤어지질 못하는거고 넌 떠나가질 못하는거네."
"사랑하지 않는 니네. 그래서 노노노노노노.."
결국 친구는 평정심을 참지 못하고 터지고 말았다. 우리의 진지한 대화의 시간은 그렇게 채 한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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