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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라고."

"네?"

"아, 대구 인마 대구, 대구라고."

과장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나를 노려봤다.

"내일 바로 출발이에요?"

"왜? 못 가?"

못 간다는 한마디를 기다린다는듯 과장은 비웃음을 흘렸다.
못 간다는 대꾸를 할 수 있을 리 없다. 더러운 새끼.

이번 주말에는 지영씨의 방에 들려볼 예정이었다.

주말을 끼워서 2주씩이나 대구에 붙어있어야 한다니,
나의 스토커 생활에 적신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퇴근길 편의점에 들려야 했다. 앞으로 거의 3주 동안 그녀와는 교류가 없을 것이다.
일단 얼굴은 한 번 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편의점 앞, 투명한 유리 뒤로 비춰 보이는 그녀는 다음 교대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는 "어서 오세요." 라며 반사적으로 인사를 했다.

"마일드세븐 하나 주세요."

"각으로 드릴까요. 팩으로 드릴까요?"

인수인계를 받고 있던 남자가 내가 물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각을 꺼내 들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바코드 찍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체
담배각을 계산대 위에 얹으며 스윽 나를 향해 밀었다.

"2,700원입니다."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보루로 주세요. 한보루."

"예?"

그녀가 적잖이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며 고개를 들었다.

거의 매일같이 퇴근길에는 이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 갑씩 사갔다.
다음날 일이 있는 날은 한 갑, 쉬는 날은 두세 갑.

한 보루를 샀던 것은 그녀를 스토킹하고 나서부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녀를 보던 남자 점원이
어물쩡 거리다가 테이블 밑에서 담배를 한보루 꺼내 들었다.

"27,000원입니다."

카드를 내밀며 그녀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 나름대로는 한동안
편의점에는 찾아올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주고 싶었다.

표정이 굳어가는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길은 없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순간 저번 현관 앞에 붙어있던 메시지가 떠오르며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걱정 마세요. 이 이상은 다가서려고 하지 않을게요.'

이 이상 내게도 다가오지 말라는 통보처럼 느껴졌다.

내 방에 얼마든지 놀러 오세요. 제 얼굴을 보러 편의점에 찾아오세요.
저도 당신의 방에 찾아가도 되죠? 편의점에 찾아오는 당신을 기다려도 되죠?
하지만 우리 이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이 마음에 밟혔지만
성실한 스토킹을 하기 위해서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며, 다음날 대구행 버스에 올랐다.

대구지사에는 내가 손봐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바로 다음날 출장을 떠나라는 말이 날 괴롭히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의외로 정말 많이 바쁜 상황이었다. 과장이 나를 마냥 떨거지처럼
생각했던 것도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보다 하루 일을 일찍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지영씨와 교류가 끊기는 것이 일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동네 어귀에 접어든 나는 편의점에 들러 지영씨의 얼굴을 먼저 보고 싶었다.

"2,700원입니다."

처음 보는 여학생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카드로 하실 건가요?"

"새로 오셨나 봐요?"

아르바이트생은 내게 찝쩍거리지 말아 달라는 듯 인상을 구겼다.

"네, 그런데요."

"전에 계시던 분은요?"

"예?"

"전에 계시던 여자분이요. 여기서 일 년도 넘게 일했는데요."

자신도 급하게 뽑힌 아르바이트라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지만,

월요일부터 원래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갑자기 결근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저야 모르죠."

"아무도 확인 안 해봤데요?"

"몰라요."

바로 편의점을 빠져나와 지영씨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주변이 어둑해졌는데도 지영씨의 방 창에선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열쇠를 조심히 돌리며 발소리가 안 나게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불 꺼진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흐르며 사람의 기척이란 일체 느껴지질 않았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신발을 벗고 방에 올라 방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역시 그녀는 집에 없었다.

'이거 아직 안 봤죠?' 하는 메시지가 책장에 붙어있었다.

냉장고 위에는 '맥주 사놨어요. 드시고 가세요.' 라는 메시지가,
화분 위에는 "이거 물 얼마나 주는 거에요?'하는 메시지가,
그 이외에도 방 이곳저곳에 내가 찾아올 것을 기다린 듯 붙여놓은
메시지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왜 편의점을 관뒀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마치 이별이라도 한 연인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연인이었다면 나는 무차별적인 이별통보를 하고 사라진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떠났을 곳을 예상해보려 애썼지만, 나는 그녀의 스토커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녀가 사는 방. 그녀가 일하는 편의점.

나는 스토커 실격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며 집 앞에 들어서자
집 앞 현관에는 그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수십 장의 메시지가 붙어있었다.

'어디 갔어요?', '언제 와요?', '제가 무슨 잘못한 거에요?', '제가 찾아오지 않는 편이 좋았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죄송해요. 다시 왔어요.', '제가 싫어졌어요?', '돌아와요.'

'나쁜 놈. 스토커 주제에...'

방문을 열고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방의 식기는 전부 거실바닥에 깨져서 난잡하게 흩어져있었고 냉장고는 열린체 붉은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거실 벽에는 알 수 없는 검붉은 자국이 번져있었다. 순간 피인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주변을 보니 반찬 가지를 집어던진 흔적으로 보였다. 

수많은 글이 벽지위에 적혀있었다. 벽지를 새로하지 않는 이상 지울 수 없는 낙서들.

'니가 먼저 좋아했잖아.', '개새끼.', '죽여버릴꺼야.', '어디로 사라졌어.', '왜 사람 가지고 놀아.'

착잡한 기분이 들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발밑에 난잡하게 늘어진 물건들을 발로 살살 밀며
조심스럽게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방문에 붙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저, 여기서 기다릴래요.'

문을 열어젖히자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그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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