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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건 설레임과 부담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어떤 이에겐 그 특별함의 이유가 남들보다 빼어난 외모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겐 값비싼 선물이나 정성스레 준비한 이벤트 일 수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난 그 중 무엇 하나도 가진게 없었다.
잘생긴 외모도 아니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를 감동시켜줄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할 주변머리도 없었다.
난 남들보다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 초년생에 불과했다.

둘 다 일을 했기 때문에 데이트라고 해봤자 동네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가끔
영화를 보러 가는게 고작이었다.

가끔 우리는 데이트 비용을 두고 다투고는 했다.
하지만 보통 연인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다툼과는 약간 달랐다.

"내가 낸다니까?"

"아 됐어. 오빠 저번에도 냈잖아."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구만."

"오빠가 멍청하니까 그런거지. 그걸 왜 기억 못하냐?"

"뭐 임마?"

꼭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부담하라는 법은 없었지만 좋은 곳으로 여행을 데려 가지도.
비싼 선물을 사주지도 못했던 내가 해줄수 있는 그 아이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남자라서. 8살이나 많은 오빠라서. 라는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나의 돈씀씀이를 두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돈을 흥청망청 쓰는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꽁꽁 싸매고 아껴두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그 아이는 항상 그 점을 못마땅해 했다.

"이거 뭐야? 못 보던 건데?"

"그거? 인터넷보다가 싸길래 하나 샀지."

"야. 너 내가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라 그랬지?"

"아 왜. 넌 무슨 자산관리사냐? 내 돈 내가 쓰는데 뭔 상관이야."

그 아이의 서운해하는 표정에 마음이 뜨끔했다.

며칠 후 함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오빠. 우리 통장 하나 만들자."

"통장? 무슨 통장?"

"데이트 통장. 둘이서 돈 모아서 우리 만날 때 마다 그걸로 쓰면 되잖아."

"싫어."

"왜?"

"그냥 싫어."

"오빠 자꾸 애같이 굴래?"

"아 싫어. 싫어. 싫어. 싫다고."

그렇게 밉살맞게 구는게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때문인지 그 때는 몰랐다.
그 이유는 자존심도 자괴감도 아니었다.

난 불안해 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내 맘속의 불안감과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이대로 평범한 날들이 계속 되면 계속 될수록 우리 사이도 그냥 평범해 질 것 같았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샌가 내 머릿속에선 그 아이에게 난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자리잡았다.
이러다 어느새 나도 그 아이에게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난 불안해 하고 있었다.

그 아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난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뭘 사줘야 그 아이가 기뻐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그 아이가 눈여겨 보던 핸드백이 생각났다.
백화점을 돌아다니다 그 아이가 예쁘다고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했던 핸드백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고급브랜드의 핸드백처럼 몇백만원씩 하는 고가는 아니였지만 그 당시 우리에겐 분명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동안 조금씩 저금했던 돈으로 결국 그 핸드백을 사고야 말았다.
선물을 받고 기뻐할 그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핸드백을 내밀었을 때 그 아이는 환하게 웃었지만 그 웃음기는 금새 가셔 버렸다.

"이거 환불하자."

"뭐?"

"이거 너무 비싸. 그냥 환불하고 다른거 사자."

"됐어. 환불은 뭔 환불이야. 그냥 써. 선물이잖아."

"아냐. 괜히 부담스럽기만 하고 어차피 들고다닐 일도 별로 없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너 사람 무시하냐?"

"아니 오빠 무시하는게 아니라. 그냥.."

"니 주제에 무슨. 딱 그런거 아니야 지금. 그게 무시하는게 아니면 뭔데?"

그 아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뚝 떨어트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결국 그 날 나는 그 아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며칠밤을 설레이며 기대했던 그 아이의 생일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이났다.
말 한마디 없이 그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후로 며칠간 그 아이에게서 오는 연락을 받지도 하지도 않았다.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다시피 하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분명 내 잘못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할 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에 안개가 가득 찬 것처럼 희뿌연 느낌이었다.

다시 그 아이를 만났지만 평소와는 달리 우리 사이에는 고요한 적막만이 흘렀다.
결국 힘겹게 먼저 말을 꺼낸건 그 아이였다.

".. 아직 화 많이 났어?"

난 말없이 가방에서 가져온 물건을 꺼내 그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이게 뭐야?"

"내 월급통장."

"이걸 왜 나한테 줘?"

"그냥.. 니 말이 맞는거 같아서. 내가 가지고 있어봤자 또 쓸데없는거나 사겠지 뭐."

그 아이는 여러감정이 교차하는듯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 이제 3일 이상 연락 안되면 경찰서에 신고한다?"

다시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며칠간 날 괴롭게하던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다.

그 아이에게 내가 특별한 이유는 그냥 나 였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사람이 아닌 그냥 그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애를 쓰면서 우리 사이를 특별하게 만드려고 했던게 날 괴롭히던 부담과 불안감의 원인이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비싼 선물때문도. 달콤한 이벤트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우리 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평범하게 생각했던 일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함께 사랑하던 그 시간들.
그 순간 순간 들이 우리에겐 가장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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