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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적극적으로 누군가를 이끌어가는걸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항상 가만있지를 못하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궁금한건 참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러다보니 항상 크고작은 사고들을 치고 다니고는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성적표에는 항상 정서불안이란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이 이사를 가면서 나는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중 세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다들 같은 동네에
살아서인지 우리는 그때부터 함께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성격은 한 명도 비슷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었지만
희안하게도 어느순간부터 우리는 뭘 하든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다니며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고무줄 놀이를 하는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클래식한
장난부터 함께 먼 동네까지 나갔다가 단체로 길을 잃고 헤맨다던지 교실에서 장난치다 문짝을 부순다던지 하는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고 어느샌가 우리는 선생님들의 요주의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 날은 현장학습이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교실을 벗어나 교외로 나간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마음을 읽었는지 담임선생님은 출발하기 전부터 선생님 말을 잘 듣고 혼자 움직이면 안된다고 신신당부 하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동네 산 중턱에 있던 절이었다. 우리는 분단별로 조를짜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 한명은 우리와
다른분단이었고 우리는 출발과 동시에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신이 나서 웃고 떠드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인 절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받은건지 스님들 몇 분이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스님들을 따라 절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들이 속해있던 조를 안내해주시던 스님은 젊은 스님이었다. 스님은 인자한 미소를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신기했다.
그때까지 내 상상속의 스님은 TV에서 주로 보던 아저씨나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였고 그래서 나는 스님은 다들 나이가 많은줄만
알았기에 젊은 스님이 있을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마 출가한지 얼마 안된 스님이었던 모양이었다.
절 안을 돌아다니는건 금방 우리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용한 경내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건 초등학생 이었던 우리에겐
너무 이른 일이었다. 우리는 금새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고 젊은 스님은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했다. 경내에선 정숙해야 한다고
우리를 타일렀지만 우리는 초딩이었다. 정숙이라는 고급스러운 단어로 제어하기에 우리는 너무나 무지하고 난폭한 생명체들이었다.
스님의 얼굴에서 인자한 미소도 조금씩 사라지고 속세의 번뇌가 느껴지기 시작할때 쯤 우리는 탈출을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스님이 다른 아이들에게 신경이 팔려있는 사이 우리는 잽싸게 행렬을 이탈했다. 조가 틀려 따로 떨어져 있던 남은 친구를 찾아
다시 모인 우리는 눈치를 살피다 무리를 벗어나 우리들끼리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자유를 되찾은 우리는 절 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를 발견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정자였다. 그 정자 가운데는 종이 있었다.
책에서 본 커다란 종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관심을 끌기엔 충분한 물건이었다. 종 앞에는 종을 치는 통나무가 줄에 매달려 있었다.
그걸 보고 난 멋진생각이 떠올랐다.

그 당시 가장 유행하던 만화는 피구왕 통키였다. 등교를 하면 전날 본 통키내용에 대해 얘기하는게 우리의 주된 화제거리였고
쉬는 시간이면 운동장에 나가서 우리끼리 피구를 했다. 줄에 매달려 있는 통나무를 보고 난 얼마 전에 본 통키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통키가 숲속에서 통나무를 몸으로 막아내는 훈련을 하던 장면이었다. 우리는 그 장면을 직접 시도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허무맹랑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통나무를 몸으로 막는다니..
통키가 무슨 북파공작원도 아니고.. 생각해 보면 그런 비인도적인 훈련장면이 한두개가 아니었다.
만화 제목을 피구왕통키가 아니라 은밀하게 피구하게라고 지어도 충분할 정도로..
그리고 보면 초등학생이 한손으로 철봉에 매달리고 맨손으로 공을 터트리는가 하면
초등학생이라고 나오는 애들이 죄다 노가다 십장, 살인청부업자, 민방위3년차 같이 생긴것만 봐도
이 만화의 허구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땐 우린 너무 어렸다. 나도 연습만 하면 충분히 불꽃슛을 쏠 수 있을것 같았다.

1번타자는 당연히 제일 먼저 아이디어를 낸 나였다. 호기롭게 통나무 앞에 섰지만 실제로 통나무를 보고있으니 긴장이 되기시작했다.
통나무가 크진 않았다. 성인남성 혼자서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사이즈였지만 우리는 초등학생 이었다. 친구들 셋이 달라붙어
낑낑대며 줄을 당기기 시작했고 통나무가 나에게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겁이나기 시작했다. 통키가 해냈으니 나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지만 전혀 격려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친구들의 손에서 줄을 놓았고 통나무는 나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걸 그대로 받았다간 피구왕이 아니라 피살자가 될게 분명했다.
나는 잽싸게 몸을 옆으로 피했고 통나무는 그대로 종을 때렸다. 뎅~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피하지 않았다면 그 종소리는 아마 천국으로 가는 종소리 였을 것이었다.

안도할 새도 없이 친구들의 실망어린 눈빛이 나에게 쏘아졌다. 야 그걸 막아야지 왜 피해! 겁쟁이! 라는 친구들의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머쓱해진 나는 이건 아무래도 아닌거 같다고 다른 놀이를 찾자고 말했지만 친구들은 이미 푹 빠져있었다.
친구들은 용기를 내라며 통키 주제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밝고 활기찬 노래가 나에겐 장송곡으로 들렸다.

점프 높이올라 멀리 (내 생명을) 던져보자!
뜨겁게 타오르는(고통으로) 정열의 (골절된) 벅찬가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이놈들은 악마다.

갑자기 괜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이번엔 꼭 받아내서 영웅이 되고 말리라 하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나는 겁도없이 통나무 앞에 다시섰다.
그리고 다시한번 통나무를 받아내려는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차 싶었다. 우리가 따돌리고 온 그 젊은 스님이었다. 우리를 찾다가 종소리를 듣고 급하게 뛰어온 모양이었다.
이미 처음 봤을때의 그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우리에게 18나한장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결국 우리의 작은 모험도 이렇게 마무리 되었고 나는 현장학습 따라갔다 통키아빠 따라갈뻔한 위기를 그렇게 모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님도 욕을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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