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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3.07.09 05:30

[threadic] 박제[剝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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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만 씨는 물욕이 강했다. 소유욕도 심했다.
그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물건을 줄 때는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 때 뿐이었다.
그런 건만 씨에게는 취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동물 박제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박제를 모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건만 씨는 유독 아름다운 것, 특히나 짐승을 좋아했고, 그것 모두를 소유해야 직성이 풀렸다.
처음에는 학교 앞에서 파는 자그마한 병아리였다.
노랗고 작고 따뜻한 그것은 그의 병적인 소유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날 건만 씨는 그의 어머니의 곗돈을 훔쳐 팔고 있는 병아리를 죄다 사들였다.

건만 씨는 그 병아리들을 무척이나 아꼈다.
따뜻한 아랫목에 두고 그것들을 바라보고 쓰다듬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었다.
그러나 병아리들은 끝없이 그의 손길을 거부하며 도망가려고만 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건만 씨는 병아리들이 도망갈 수 없도록 그것들을 고정시켜놓기로 했다.
방 안 여기저기 보이던 테이프를 사용해서 병아리를 바닥에 붙여놓았다.
처음에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니 한 마리가 없어져 있었다.
테이프를 떼어내고 방 밖으로 도망친 것이다.
따라서 건만 씨는 테이프 말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마침 그의 누이가 준비물로 사다놓은 압정 통이 눈에 띄었다.
건만 씨는 반색하며 그것을 집어들었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듯 했다.
건만 씨는 아직 바닥에 붙어있는 병아리의 몸에서 테이프를 떼어내었다.
꿩과 특유의 찢어질 듯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테이프를 보니 노란 깃털이 뽑혀나와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그러나 건만 씨는 아랑곳 않고 병아리의 작고 연약한 날개를 벌려 압정을 꽂아넣었다.
압정을 바닥에 박고 나자 병아리에게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작은 육신에서 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한 양의 뜨끈한 피가 손과 바닥을 적셨다.
그러나 건만 씨는 몹시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병아리는 그에게서 도망갈 수 없었던 것이다.
건만씨는 테이프에 들러붙어있는 다른 병아리들을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일주일만에 집에 돌아온 건만 씨의 부모를 맞이한 것은 코를 찌르는듯한 악취였다.
그들은 냄새의 근원을 찾았고, 곧이어 그것이 안방에서 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안방 문을 열어젖혔을 때 본 것은 거의 안방 전체를 뒤덮고 있는 말라붙은 피와 바닥에 박혀있는 수 없이 많은, 반 쯤 부패되어 악취를 내뿜는 병아리들이었다.

그 후 건만 씨의 취미생활 많은 방해를 받았다.
일단 그의 부모의 날카로운 감시도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면 동물들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대로 감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건만 씨는 진득한 썩은물을 흘리는 사체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건만 씨가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 쯤, 그는 새롭고도 굉장한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박제!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간 곳에서 건만 씨는 박제를 보았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름답지 않나? 김 선생의 걸작이지. 살아있는 모습, 아니 그보다 더 생생하다네."
집 주인의 말에 건만 씨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발톱을 세우는 매의 모습은 건만씨의 가슴을 진탕 뒤흔들어 놓았다.
"보아하니 자네도 박제에 꽤나 흥미가 있는 것 같군! 간만에 같은 동지를 만나니 반갑네. 다들 이렇게나 아름답고 고상한 취미를 이해해주지 못한단 말일세."
건만 씨는 환희에 가득 차 박제된 매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어찌나 잘 만들어졌는지 살아있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온기가 없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집사람이 워낙 칠색 팔색을 해서 이것밖에 들여놓질 못했네. 박제를 감상하는 것이 취미요, 하면 다들 변태나 광인을 보듯 한단 말이야. 통탄할 노릇이지."
집 주인은 박제를 뚫어질듯 응시하는 건만 씨를 보며 미소지었다.
"박제에 관해서는 김 선생을 따라갈 자가 없지. 하지만 그는 장인이야. 아주 극소량만 제작하고 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파는 법이 없지. 돈과 타협하지 않는 깐깐한 인물이란 말이야."
매에게만 정신이 팔려있던 건만 씨가 집주인을 돌아보았다.
건만 씨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집주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거의 만들지는 않지만, 운이 좋으면 호랑이나 사자같은 것을 만들어주기도 한다네."

의미심장하게 웃은 집 주인이 건만 씨의 어깨를 응원하듯 툭툭 쳐주며 말했다.
"지금 자네가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나중에 돈이 생기거든 내게 찾아오게. 김 선생을 소개시켜주지. 이것은 사막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동지를 발견한 늙은이의 호의라고 생각해주게."

그날의 기묘한 저녁식사 이후로 건만 씨에게는 일종의 목표가 생겼다.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박제를 구해 집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른이 되었을 때, 건만 씨는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그는 십 년만에 다시 그 집주인을 찾아갔다.

그때보다 더욱 늙은 집 주인은 상냥하게 건만 씨를 맞아주었다.
"오, 그때의 청년이 아닌가! 이렇게나 장성하다니, 시간은 과연 쏜 화살과 같군."
건만 씨는 처음으로 그에게 박제의 존재를 알린 매를 찾았다. 그러나 매는 없었다.
매가 어디있냐고 묻는 건만 씨의 질문에 집 주인은 슬픈 눈을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기어코 집 사람이 내다버렸지 뭔가. 밤중에 거실에서 희번득거리는 것 때문에 무서워 죽겠다고 화를 내더군. 심지어는 박제된 것이 움직인다는 헛소리도 하였네."

집 주인에게 소개받는 김 선생은 마치 미라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 자체부터가 벌써 박제처럼 보였던 것이다.
허리는 과연 펴진 때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굽었고, 머리는 성성한 백백발이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검게 말라붙은 피부는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했다.
"그대는 무엇이 필요해서 오셨는고?"
김 선생이 물었다. 건만 씨는 공손하게 박제를 구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끌끌 웃은 김 선생은 건만 씨를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는 어두컴컴했는데, 천장에 달린 흐릿하고 붉은 전구 하나가 공동을 밝히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본 건만 씨는 탄성을 금치 못했다.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박제가 있었다.
나비와 같은 곤충부터 파충류, 조류에 이르기까지 건만 씨가 아는 모든 동물이 모인 것 같았다.
그러나 대형 동물, 이를테면 동물원에서 자주 보이는 것들은 빠져 있었다.
기껏해야 사슴, 산양, 그리고 살쾡이같은 것들이 다였다.
건만 씨의 실망한 얼굴을 힐끗 본 김 선생이 혀를 차는 듯한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었다.
"처음부터 귀한 것을 바라다니 염치 없는 자로고. 그런것들은 수십년 된 지기에게도 거의 만들어주지 않는 법이거늘, 이런 허술한 곳에 쌓아둘 리가 없지 않은가."

건만 씨는 당장은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대형 식육목이 가장 매력적이었지만 작고 귀여운 것도 그 못지않은 맛이 있었다.
김 선생은 제법 잘 만들어진 것이라며 고라니 박제를 추천했다.
금방이라도 눈을 데룩 굴리며 껑충껑충 뛰어다닐 것 같은 모양새였다.
건만 씨는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 켠에서는 흥미가 일지 않는 것이었다.
건만 씨는 곧이어 그 이유를 알았다.
그는 각 종마다 아름다운,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박제만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들은 김선생은 욕심투성이 젊은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과연 정 씨의 말이 맞았군! 젊은이 중에서 그대처럼 박제에 관심있는 이를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와 같지. 간만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으니 선심을 좀 써보도록 할까. 이리 오시게나."
김 선생은 더욱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의 박제는 한 눈에 보기에도 아까와는 질이 다른 것 같았다.
"이걸 가져가시게나. 본인이 만든 사슴과의 박제 중 가장 질이 뛰어난 것이지. 이 녀석을 들여오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네. 값어치 나가는 것 치고는 유일하게 여태껏 팔지 않았어."
아마 자네가 가져갈 운명이었던 것 같네. 김 선생이 속삭이듯 말했다.
건만 씨는 용맹하게 우뚝 서 있는 순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묘하게 얽혀있는 뿔은 단단해 보였고 털은 금방이라도 휘날릴 듯 윤기가 흘렀다.
목덜미에 부드럽게 돋은 털이 마치 목도리를 두른 것만 같았다.

건만 씨는 떠올렸다.
툰드라에 우뚝 선 이 거대한 순록을.
북극해의 동토지저 를 단단한 발굽으로 짓밟으며 무리를 이끌고 뛰어다녔을 순록을.
머나먼 시베리아, 그 끝없는 땅의 북쪽 끄트머리. 극한의 극지에 다다른 순록의 영혼을!
금방이라도 코끝을 엘 듯한 한기가 느껴질 것만 같아 건만 씨는 전율했다.
이 순록은 그 높고도 높은 불모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순록이었을 것이다.
부식조차 용납하지 않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멀고도 먼, 불모의 어머니 땅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오게 되었어도 그 용맹과 긍지는 잃지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웠다.
심장이 뛰기는 커녕 온기조차 없었지만 그것은 정녕 살아있었다.

순록을 집에 들여놓은지 한 달 후, 건만 씨는 또다른 박제를 구입하기 위해 김 선생을 찾았다.
이번에도 김 선생의 두 번째 작업실로 안내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순록처럼 건만 씨의 영혼을 자극하는 것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건만 씨는 실망을 하며 돌아갔다.
한 달 후에 건만씨는 다시 김 선생을 찾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음에 드는 것이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마찬가지였다.
건만 씨는 깨달았다.
최고만을 고집하는 그의 성미는 보통 수준의 박제 따위는 조금도 용납지 않을 거라는 것을.
건만 씨는 이윽고 직접 박제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김 선생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당연하게도 김 선생은 건만 씨를 제자로 들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건만 씨는 김 선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댓가, 이를테면 아주 소중한 것이 제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 길로 자신의 누이를 찾아갔다.
건만 씨의 누이는 상냥한 미소에 입꼬리에 맺히는 보조개가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우연히 거리에서 건만 씨와 그의 누이를 본 김 선생은 건만 씨에게 지나가는 투로 굉장히 예쁜 계집아이라고 운을 띄웠었다. 건만씨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미이라같이 말라 비틀어진 한 사내의 정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만 씨는 누이를 김 선생에게 바쳤다.
김 선생은 몹시도 흡족해하며 건만 씨에게 박제를 하는 법을 정성껏 가르쳐주었다.

그 후로 건만 씨는 박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첫 작품은 집 앞에서 매일 시끄럽게 울어대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다시는 울 수 없게 되었고, 건만씨는 제법 흡족해졌다.
김 선생의 작품에 비하자면 아직 많이 미흡한 수준이었지만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건만 씨는 마흔이 되었다.
그 사이 그의 집에는 박제가 하나 둘 쌓여가, 이윽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꽤 많은 수의 동물들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뭐든지 최고만을 고집하다보니 아주 많은 수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들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것들은 검만 씨의 인생의 낙이었고 목표였으며 희망이었다.
타고난 감각과 야무진 손끝 덕분에, 건만 씨는 박제에 손을댄지 10년이 채 못되어 김 선생에 버금가는 박제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건만 씨가 쉰이 되었을 때, 그의 집에는 그가 아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들의 박제 머무르게 되었다. 박제 실력 또한 상당해져서, 자신보다 박제를 잘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건만 씨에게는 여전히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아는 동물들 중 딱 한 종류의 박제를 여직 모으지 못한 것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

그러던 어느날, 건만 씨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슬픔에 젖어있는, 그러나 아리땁기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 선생의 딸이었다.
김 선생은 사별한 부인의 몫만큼 늘그막에 얻은 딸을 몹시도 애지중지했다.
건만 씨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김 선생에게 이야기를 전해들었었다. 일면식도 없는 여자의 일상을 매일같이 듣는것은 과연 고역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건만 씨는 그녀가 인어같이 아름답고 성녀처럼 상냥하며 눈부시게 총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쩐지 간지러운 음색에 건만 씨는 그녀에 대한 미약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빈소에서 본 김 선생의 딸은 그의 자랑이 무색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미라같은 늙은이에게 저런 딸이 있을 줄이야…… 김 선생을 아는 이들은 모두 놀랐다.
건만 씨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도드라진 골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과연 인어같은 여자였다.
누런 베 옷 하나를 걸쳤을 뿐이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다.
건만 씨가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 하자 그녀가 얼굴에 슬픈 듯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걸었다.
"아버지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라도 만나뵙게 되어 반가워요."
건만 씨는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목덜미를 내려다 보았다.
건만 씨는 마른침을 삼켰다.

건만 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비로소 수십년간 이어온 기나긴 여정의 마지막 조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휩쌓였다.
이 여자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수집욕에 정점을 찍어줄 것이리라!
건만 씨는 그녀를 가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이 어떤 수단을 바탕으로 하는지는 불분명했다.
종래에는 영원한 아름다움을 위해 박제가 될 것이었지만 그녀를 소유하는 또 다른 방법은 많고도 많았다.
가지런하게 빗어내린 머리, 화장기 없이 수수한, 그러나 더 없이 매혹적인 얼굴과 거친 삼베옷에 가려진 덜 익은듯 풋풋한 젖가슴. 그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건만 씨의 속마음을 모르는 그녀는 마치 세이렌의 노랫소리같은 목소리로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잠깐 사람을 만난다며 밖으로 나간 김 선생의 외동딸이 돌아오지 않았다.

건만 씨는 황홀하다는 얼굴로 침대 위에 죽은 듯 늘어져있는 나신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드러난 어깨를 쓸어내리자 마치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왔다.
그녀는 순진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건만 씨가 건넨 커피를 생긋 웃으며 받아들었던 것이다.
박제에 모든 정열을 쏟아부었던 쉰의 건만 씨는 그제서야 비로소 정욕이라는 것을 느껴보았다.
어쩌면 이것 역시 소유에의 또다른 갈망일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좋았다. 박제하는 것이나 지금 이 상황이나 똑같이 소유하는 과정이므로.

아름다움을 두고두고 보존하는 것 만큼이나 아름다운 것과 하나가 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녀의 속에 자신을 묻고, 그렇게 하나로 융합되는 것!
건만 씨는 성스러운 의식을 치루는 양 조심스레 그녀의 입술에 입맞추었다.

건만 씨가 한창 몸을 흔들고 있을 때 옅게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가 깨어났다.
얇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길디긴 속눈썹이 들어올려지고, 그 너머에 있는 촉촉한 눈망울이 드러났다.
잠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는 이내 경악한 듯 눈을 홉뜨더니 무슨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재갈이 물려진 입은 발성을 불허했다. 알 수 없게 뭉그러진 억눌린 소리가 마치 짐승같았다.

한참 벗어나기 위해 몸을 바르작거리던 그녀는 이윽고 처연하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건만 씨는 자신의 아래에 있는 성스러운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슬픔을 가득 머금은 눈과 함없이 늘어진 팔 다리, 한 사내의 이기적인 정욕으로 인해 더럽혀진 육체는 그 어느 인간, 그 어느 종, 그 어느 생물보다도 아름다웠다.

이 모습을 평생 보존해야 한다!

벼락에 머리를 맞은 듯 영감을 얻은 건만 씨는 자신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여인의 목을 졸랐다.
체념한 듯했던 그녀는 막상 목이 졸리자 격렬하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여인의 손톱이 자신의 목을 조른 건만 씨의 손등을 있는 힘껏 할퀸다.
눈에는 의미를 읽을 수 없는 지독한 원독이 가득 차 있었다.

박제는 예술이고 재창조였다.
단순히 살아있었던 상태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장인이 예술적 감각과 해부학적 지식을 이용해 재해석하는 일종의 종합 예술이자 학문이었다.
단순히 박제에 흥미를 가졌던 건만 씨는 손으로 박제를 해보는 과정을 거쳐 완벽하게 박제에 매료되고 말았다.

한 차례의 지독한 엑스터시를 겪고 난 건만 씨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그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목에 선연한 손자국과 까뒤집어진 눈동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 정도야 건만 씨의 실력으론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건만 씨는 굳어있는 그녀의 얼굴과 몸을 정성껏 주물렀다.
이것은 그가 터득한 것 중 하나로, 사후경직을 미루면 더욱 아름다운 박제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원래 박제를 하기 위해서는 배를 절개해서 가죽을 벗겨내야 했지만 인간은 다르다.
털이 없어서 절개하고 봉합한 자국이 바로 드러나는 것이다.
건만 씨는 고민했다. 사체를 뒤집어 척추를 따라 절개할 것인가, 아니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든 방식을 약간 변형시켜 시도해볼 것인가.
전자는 얼굴과 몸의 앞면이 깨끗해지는 대신에 등과 다리 뒤쪽이 보기 흉해진다.
반면 후자는 아름답고 깨끗하게 사체를 보존할 수 있지만 대신 전자에 비해 관리가 굉장히 까다로워진다.
건만 씨는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바라보다가 이내 결심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몸에 봉합 자국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건만 씨는 욕조에 물을 받고 그녀를 옮겨 담았다.
이미 경직되기 시작한 그녀의 몸은 차갑고 딱딱하고 묵직했다.
건만 씨는 그녀의 육신을 아주 정성껏 씻겼다.
경직된 몸이란 유연성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법이어서, 그녀의 겨드랑이 부근을 씻길 때 건만 씨는 실수로라도 팔을 부러뜨릴까봐 몹시도 조심했다.
사체를 씻긴 건만 씨는 타올과 드라이어를 이용해 그것의 물기를 꼼꼼히 제거했다.
한때 장미빛을 띄었던 뺨은 희게 질려 있었고, 눈부신 생동감을 담아내던 육체는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푸르스름한 빛을 띄었다.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약동하는 건강미가 아니라 마치 조형물같은 정적인 균형미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건만 씨는 그녀를 발견하게 된 자신의 행운에 기뻐하며 그녀의 차가운 몸을 껴안았다.
그때 건만 씨는 등 뒤로 싸늘하고 묵직한 감촉을 느꼈다. 등허리를 타고 차가운 소름이 내달렸다.
잠깐 굳어있던 건만 씨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그녀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히 가지런하게 놓여있던 팔이 어느새 움직여 그의 등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골을 울리는 섬뜩한 느낌에 건만 씨의 목울대가 꿀럭거렸다.

아니다. 이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육신은 죽었어도 신경이 미약하게나마 살아있어 이렇듯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
수많은 사체를 다뤄보았던 건만 씨는 이보다 더한 것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건만 씨는 애써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무시하며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천천히 등 뒤로 손을 가져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팔을 붙잡았다. 
손바닥 아래로 차갑고 딱딱하고 섬찟한 감촉이 느껴졌다.
건만 씨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등을 감싼 팔은 단단하게 굳은 채 풀어지지 않았다.

사후 경직이다. 단지 사후 경직일 뿐이야. 건만 씨는 되뇌였다.

사후 경직은 죽기 직전 썼던 근육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녀는 목을 조르는 자신의 손을 풀려고 애썼으니까, 그러니까 손아귀의 힘이 강해진 거다. 그런거다.
건만 씨는 마른침을 삼키며 더욱더 힘을 주었다.
한 시간 가량 사투를 벌인 끝에 그녀의 팔을 원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왜인지 처음부터 쉽지가 않았다.

원래라면 날카롭게 구부러진 갈고리 모양의 철사로 뇌를 적출해내야 했다.
그러나 그쪽으로는 경험이 전무한 건만 씨가 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더군다나 자칫 잘못하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엉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뒷머리에는 머리털이 있었으므로 건만 씨는 얼굴에 대해서는 박제하는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건만 씨는 날카로운 칼로 단 번에 뒷머리의 두피를 갈랐다. 차가운 피가 뭉글뭉글 쏟아졌다.
그는 날렵한 손놀림으로 단숨에 그녀의 머리가죽을 뒤집었다.
그러자 피와 지방과 근육이 엉겨붙은 두개골이 드러났다.
일견 무뎌보이는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머리가죽 내부와 두골의 겉면에 붙은 지방과 근육을 모두 긁어내고 뇌와 뇌수를 제거하였으며 어쩐지 그를 응시하는 것 같은 안구를 뽑아내었다.
건만 씨는 땀을 닦으며 시계를 흘끗 보았다.
오전 중에 시작했던 작업이 어느덧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약품 처리된 피부 안쪽에 살붙임을 하고 의안을 넣으니 작업이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
건만 씨는 다시 조심스레 두골에 머리 가죽을 덮은 뒤 봉합했다. 그 다음에는 몸이 남아있었다.
몸에 관해서는 미라를 만드는 방식을 따라갈 생각이었다.
사체의 갈비뼈 아래를 갈라 내부 장기를 모두 꺼내었다. 물론 심장도 포함되었다.
고대 이집트 인들은 사후세계를 위해서는 심장이 필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걸 빼지 않았지만, 건만 씨가 굳이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인간을 상대로는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작업은 굉장히 더디게 진행되었다.
마침내 다음날 정오가 되었을 때 건만 씨는 포르말린으로 방부처리를 하는 것으로 작업을 끝낼 수 있었다.

"아름다워……."
건만 씨는 감탄했다.
그의 박제 컬렉션의 가장 심장부에 위치한 그녀는 정확히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었다.
건만 씨의 걸작이었다.
그녀에게선 기묘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마치 단백질 인형같다가도 소녀가 넋없이 주저앉아 있는 것 같았다. 건만 씨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기쁨과 허탈감이 뒤섞인,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한 것이었다.
그녀는 비록 숨을 거뒀으나 혼백마저도 착각하고 다시 육신에 깃들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살아 생전 그녀 스스로도 내보이지 못했던 그녀의 내면을 건만 씨가 이 박제 하나에 다 담아내었다!
아니, 그것은 착각일지도 몰랐다.
시신을 분해하고 조립하며 건만 씨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투영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바랐던 것은 그가 원했던 그녀의 모습이었지 그녀의 실체는 아니었으니까.

건만 씨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했다.
평소 자잘하게 잡혀 있었던 모든 약속들을 취소했다.
퇴근하자마자 술이나 같이 하자는 상사의 요구를 뒤로하고 집에 오기에 바빴다.
살짝 내리깐 눈, 마늘쪽같이 모양새 좋은 코, 금방이라도 키스를 갈구할 듯한 입술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절감했다. 그는 너무도 행복했다.

하루하루 그녀와 떨어져있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건만 씨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밥을 먹으러 자리를 비우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건만 씨는 먹지 않기로 했다.
자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래서 건만 씨는 자지 않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눈을 깜빡거리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건만 씨는 얼굴에 미소를 피우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자, 내게 웃어보렴……."

건만 씨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살풋 미소지었다.
그 순간만큼은 건만 씨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였다.

어느날 전화가 왔다. 그의 늙은 아버지가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이라는 것이었다.
건만 씨는 그녀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죽는다는데야 별 수가 없었다.
건만 씨가 건성으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삼일장까지 지낸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건만 씨가 떠나기 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어 건만 씨는 그녀의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 내게 웃어주렴……."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그녀가 웃어주지 않은 이후로 건만 씨의 하루는 엉망이 되었다.
그는 그녀의 웃음이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의 웃음은 저 먼 정글 깊숙한 곳에서만 피어난다는 아름답고도 독이 가득한 꽃과도 같았다.
창백하지만 화사했고 매혹적이었지만 위험했다.
건만 씨가 마치 기계처럼 그녀에게 웃음을 요구하는 말만 내뱉은지 정확히 나흘 째, 그녀는 다시 웃음을 허락했다.

몇 일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건만 씨는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가 어느덧 더욱 짙어져 있었다. 건만 씨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린듯이 앉아 그림처럼 미소짓던 그녀가 문득 손을 내밀었다.
마치 잡아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뻗어진 손.
건만 씨는 손을 마주뻗었다. 그것은 감격에 겨워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차갑고 딱딱한 손과 건만 씨의 손이 맞닿았다.
건만 씨는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가락을 깍지끼워 넣었다.
그녀가 행복한 듯 미소지었다.

건만 씨는 사망한지 한 달이 넘어서야 그의 지하실에서 발견되었다. 사인은 아사였다.






기괴한담奇怪寒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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