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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사장에게 삼십 분만 일찍 교대를 부탁했다.
사장은 별일이라는 듯 꼬치꼬치 캐묻다가 순순히 자신이 삼십 분을 채워주겠다고 했다.

스토커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

아니, 이제는 내 스스로가 그 사람을 스토커라고 여기는 것조차 웃기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위해 방의 문을 열어주고, 음식을 준비했으며, 다시 찾아오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사람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손님이었다.

편의점을 마치고 집까지 온 힘을 다해서 달렸다. 단지 삼십 분만 일찍 끝냈다고
그를 확인 할 수 있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으며, 나는 그 남자가 집에서 나오는 것을
직접 마주하기보다는 한켠에 숨어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그를 위해서
더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향해 계단을 오르던 순간 잠깐 익숙한 얼굴이 스쳐지나 갔다.
나는 방문을 향해 달리던 것을 멈추고 계단을 다시 내려가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야 했다.

그 남자를 불러 세웠을 때,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

"아저씨, 여기사세요?"
"아니요."
"네, 저도 아저씨 본적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요?"
"여기 왜 오셨어요?"

그 남자는 당연히도 자신이 스토커라는 것을 부정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편의점에 매일 같이 들려서 담배를 사가는 사람. 편의점 밖에서
기웃기웃 나를 엿보던 사람.

그를 돌려보내고 방으로 들어갔을 때, 모든 메모지가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사람이 확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가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너무 드세게 그를 몰아 치진 않았나 자신을 탓하고 있는 나를
눈치챘을 때는 내가 그에게 얼마나 빠져들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그가 편의점에 찾아들었을 때는 표현 할 수 없는 기쁜 마음이 일었다.
여전히 나의 방에 들려주는 것이 안심되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일이 줄어들고, 방을 꾸미거나 그 사람이 다시 찾아올 것을 기다리며
메모를 남겼다. 내가 남긴 메모의 의도를 알고 그대로 움직여주는 그 사람.

처음 그의 뒤를 쫓았을 때, 혹여 남자가 뒤를 돌아볼까 노심초사였지만,
그는 길을 걸을 때 곧잘 땅만 쳐다보며 걷고는 했다.

열쇠를 손에 넣는 것은 의외로 순조로웠다.

"아가씨 못 보던 분인데?"

그의 방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나에게 어떤 아주머니께서 말씀을 걸어오셨다.
아주머니는 의심의 눈초리인지 호기심의 눈초리인지 애매한 태도로 나를 경계하며 다가왔다.

"아, 저희 남자친구네 집인데요. 지금 열쇠가 없어서..."
"여기 총각 여자친구야? 어마! 이쁘네~."
"아, 하하..."
"열쇠가 왜 없어. 남자친구 부르면 안 돼?"
"지금 일가서 좀 그러네요. 제 서류가방이 안에 있는데."
"아침에 두고나왔구만?"

아주머니는 무엇이 그리도 신이 나는지 싱글벙글하며 나의 거짓말에 일단일조 장단을 맞춰왔다.

"관리 아줌마 불러줄까? 열쇠 금방 가지고 올 텐데."
"정말요? 그러면 감사하죠."

관리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결혼을 하기로 했다. 사귄 지 2년이 넘었다. 일만 해서 서운하다.
내가 가끔 찾아오지 않으면 방이 개판이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다.

아주머니는 내가 꺼내는 거짓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미있는 듯 우리의 거짓 연애담에 푹 빠져들었다.
나도 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술술 거짓말을 뱉을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거짓말을 하면서
이 거짓말의 현실성이 느껴지는 것이 즐거웠다.

"여기 열쇠."

관리자 아주머니께서 시큰둥한 얼굴을 하며 열쇠를 건넸다.

"똥 씹다 왔어? 얼굴이 왜 그래?"

아주머니가 관리자분을 나무라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여기 총각 혼자 사는데?"
"왜 혼자 살면 여자친구도 못사귀어?"
"아니, 아는 사람 맞는 건지."
"아! 됐어 무슨 내가 여기 살면서 이 처녀 얼굴을 한두 번 봤는지 알어? 괜찮아."

아주머니가 대뜸 얼토당토 안는 거짓말을 했다.
만난지 삼십 분 남짓 아주머니는 나에게 이상하리만치 깊은 신뢰를 갖은 듯 했다.

"아, 나 지금 부동산에 손님 와계시니까. 그쪽으로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저기 바로 앞인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자 아주머니는 급하게 발을 돌렸다.
나와 장단을 맞춰주던 아주머니는 내 등을 두드리더니

"남자는 혼전에 확실히 잡아 놔야되! 알았지? " 하며 계단을 올라가셨다.

내가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함박웃음을 머금으시며 계단에 오르는 아주머니.
손 위에 열쇠를 바라보며 내가 근 한 시간여 동안 거짓말을 하며 이루어낸 것들이 믿겨지질 않았다.

열쇠를 따고 방에 들어섰을 때.

그의 방은 뭐랄까. 향이 없었다. 남자들의 냄새. 
그리고 또 특별히 뭐라 콕 찍어 설명이 힘들었지만,
이곳은 남자의 방이라는 뉘앙스가 없었다.

꼭 남자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 방에는 그 흔한 여자 연예인이나, 게임 포스터조차 한장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걸리지 않은 창문에는 어설픈 페인트칠이 볼품이 없었고,
침대는 순 시커먼 진 남색의 민무늬 커버로 재미없는 물건들뿐이었다.

냉장고 안에는 요리할 수 있는 식재료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
물, 맥주 몇 캔, 언제부터 얼어붙어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고기 한 덩어리.

15인치 즘으로 보이는 작은 TV와 그 옆에 오히려 TV보다 커 보이는 모니터가 하나
컴퓨터와 함께 책상도 아닌 조막만 한 작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옷장 속은 남자의 옷장이란 느낌을 풍기며 별 옷이 들어있지 않았다.
확실히 내가 그를 보아왔던 옷들이 대부분으로 그는 옷을 몇 벌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방을 둘러보다 졸업앨범을 찾아 앨범을 뒤적이며 그를 찾았다.
졸업 사진의 고등학생 시절의 얼굴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금방 그를 찾아낼 수 있었다.

2006년 졸업생. 이름 김성민.

어릴 적부터 어두운 상이었 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지금 모습을 보면 예상이 어려워 소스라칠
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모습보다는 밝아 보이는 느낌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컴퓨터를 켜자. 바로 윈도우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하드디스크 내용물을 살살 뒤져보자, 순 게임과 영화 그리고 몇몇 야동이 나왔다.
남자란 별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약간 실망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웃음이 나왔다. 메모지에 휘둘려주는 상냥한 스토커가 그래도 남자는 남자였다.

한참 방을 뒤져보고는 텅텅 비어있는 방의 살풍경이 마치 남자의 삶을 대변하듯 느껴졌다.
나를 스토킹하는 남자에게 이런 생각은 모순되었지만, 나는 김성민이란 남자를 동정하게 되었다.

이 사람에게 이 이상 빠져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발이 방을 떠나지질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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