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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4 00:27

그냥걷기 20-2 完

조회 수 2083 추천 수 0 댓글 4

9월 18일 서울역을 출발지로 남쪽 방향으로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집을 향해
내게 진짜 목적지가 있다면 그건 집이지
그래 난 목적지가 있는거야

집에 가고 싶어
너무 먼 길이지만..... 걷다보면 나올거야
걷자
마음 급하게 먹지말고 
한번 걸어보자

 


서울에서 내려가기 ( 대구->서울 = 올라가기 , 서울->대구 = 내려가기) 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내 몸이 조금씩 약해지고 아파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게 다 먹는 걸 충분하게 못 먹고 다녀서 그런 거라 생각했고
당분간은 좀 제대로 먹고 다니자는 취지에 한번에 큰 돈을 벌어 보기로 했다
오산을 지나갈 때 용역소에 가서 공장일을 하고 일당으로 6만원을 벌었다
그 날 나는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영양이자 최고의 보약인 고기를 섭취하기 위해
만원짜리 고기뷔페에 가서 2시간동안 쉬지 않고 처묵처묵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지만.. 먹고 살아야하니까 무시하고 처묵처묵

 


그렇게 번 돈 때문에
오산에서부터는 지나가면서 잠깐동안 돈을 벌어보려는 1000원 벌기와, 라면과 같이 먹을 밥을 얻는 일은 잠정적으로 중단하고
고기뷔페에 갔다가 남은 돈으로 대개는 라면을 뽀글이를 먹었고 가끔씩은 식당에서 밥을 사 먹기도 했다

 

 


서울에서 천안, 대전을 거쳐, 곧바로 대구로 걸어 내려간다면 추석 전에도 도착할 수 있었을테지만
이왕 걸어서 내려가게 된 거 
어디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천안에서 방향을 틀어 아산, 예산을 거쳐 보령으로 갔다
추석이 다가올 때 즈음
명절인데도 집에 못 가는 것이 너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 집에 내 나름대로의 선물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걸어가던 길에 있던 과일농장에 들어가 품삯으로 돈 대신 집에 보낼 과일을 받는 조건으로 과일농장에서 일을 하게 됐다
마침 농장에서는 일이 한창일 때라 안 그래도 사람이 필요했다며 내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일하는 것보다 오히려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일하는 것을 휴식으로 생각했고 
게다가 농장에 있는 동안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내게는 일 하는 것이 여러가지로 이득이었다
약속대로 나는 집에 과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고 농장에서의 4일이 지난 뒤 다시 남쪽을 향해 걸어간다
농장 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는 내가 농장을 떠날 때 
혹시 모를 일이니 적은 돈이지만 가지고 가라며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 주머니에 넣어주셨고
나는 돈을 받는 행동이 오직 과일만을 받겠다고 말했던 내 자신의 약속을 어기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불편한 마음에 돈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가 농장을 떠난지 5일이 되는 날 오산에서 벌었던 6만원이 모두 바닥났고
그제서야 과일 농장에서 받은 돈을 꺼내보게 되었다
나는 용돈으로 쓰게끔 한 2~3만원 넣어줬겟지 생각했었는데 봉투 안에는 10만 5천원이라는 큰 돈이 들어있었다
이 돈 덕분에 나는 또 한 동안 돈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보령을 지나 군산,변산반도,고창,광주을 지나 목포로 향했다
광주에서 나주를 거쳐 목포로 가고 있던 도중에
길가에서 벼 가마니를 트럭에 싣고있는 모습을 보게되었고
나는 단지, 그 날 목표했었던 거리를 거의 다 온 상태였기 때문에 시간이 남는다고 판단되어 
순전히 그냥 잠깐 일을 도와보겠다는 생각만으로 벼 가마니 싣는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그러다가 거기서 얼떨결에 밥도 먹고 잠까지 자버렸고 어쩌다 보니 일손이 부족한 정미소에서 이틀간 일을 돕게 되었다
떠날 때 정미소 아저씨는 내게 5만원을 챙겨주셨다

 

내려가기는 올라가기보다 더 단조로운 시간이었다
올라가기를 할 때는 하루 먹고 하루 자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나가면서 소액으로 돈 벌기, 밥 얻기, 마을 찾아보기 같은 것 때문에 그나마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내려가기를 할 때는 내게 15만원이라는 큰 돈이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것들도 하지 않고 단지 걷기만 했다
밥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뽀글이과 최대한 저렴한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해결했고
잠자는 건 아산에서의 찜질방을 마지막으로 찜질방, 마을은 더 이상 가지 않고 주변의 정자나 빈 건물 따위를 찾아 서울에서 구입한 침낭을 덮고 잤다

 

 

본격적인 단순히 걷기
걸어가다가 쉬고
걸어가다가 멈춰 라면이나 밥을 사 먹고
걸어가다가 어두워지면 잘 곳을 찾아 노숙을 하고
잠에서 깨어나면 다시 걷고
정말 나는 그냥 걷기만 했다

 


집에서 출발 당시, 그리고 서울까지 올라가기를 할 때까지도
나는 그래도 내가 하는 이 걷기가 여행이란 것 중의 하나는 생각을 조금은 가졌었지만
내려가기를 할 때는 더 이상 내 걷기가 여행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거의 지우게 됐다
나는 그냥 걷기만 할 뿐이니까
이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다
사실 그런 회의는 내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항상 내 뒤를 따라오던 것이었다

 

 

나는 왜 걸을까
걸어서 어떤 것이 남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것일까
내가 이렇게 걸음으로써 느끼고 깨닫는 게 있을까
집에 돌아가면 내게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이런 회의은 내가 걸으면서 머리를 굴리는 시간, 하루 10시간 이상을 걸으며 그 사이에 드는 내 머리속의 이런 저런 생각,잡념,기억,물음,고민 같은 것들 중
항상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던 것이었다

 

걷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반응


ㅍㅍ : 무슨 계기로 그렇게 걸어다니고 계신거에요?
ㅍㅍ : 그렇게 걸어다니면 어떤 의미가 있어요?
ㅍㅍ : 어떤 걸 깨달았어요?
ㅍㅍ : 무엇을 얻을 수 있어요?
ㅍㅍ : 느낀 점이 뭐에요?


이런 질문에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거기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더 먼 거리를 걸을 수록


ㅍㅍ : 그냥 무식하게 걸어다니기만 하면 그게 뭐냐
ㅍㅍ : 왔으면 뭐라도 보고 가야지
ㅍㅍ : 그저....단순하게 걸어다는 건 아무 의미가 없지 않나....
ㅍㅍ : 그렇게 걷지만 말고...


이러한 말을 듣는 때가 점점 잦아졌고 그에 따라 내 회의도 조금씩 더 커져갔다

 


하지만 내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걷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이미 나온 거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다고
해보겠다고 나와서 시작한 거 내가 마음 먹었던대로 꼭 마무리 짓고 싶다
걷다보면 나오게 될 우리집을 보고 싶다
난 걸어갈꺼야

 

 

목포를 거쳐, 해남, 해남 땅끝에 도착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 내가 가진 침낭은 여름용이라 갈수록 침낭 하나로 밤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졌다
조금씩 아파오고 약해지는 몸
너무 길어지는 기간
- 집에서 출발 전, 언젠가 한 바퀴를 걸어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질 때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한 달이 ....아니 한 달은 무슨, 두 달, 세 달이 걸릴 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두 달이 걸리든 세 달이 걸리든...난 꼭 할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서도 정말로 할 지 안할 지는 모르는 .. 막연한 다짐
근데 그 당시에 이런 생각을 한 건... 이건.....그냥 .......그..... 
초등학생 때 방학시작하자마자 숙제부터 다 끝내고 놀겠다는..
그런 .. 그럴듯하게 다짐만 해보는 엉터리 다짐이었다
그땐 정말 내가 출발이라도 할 수는 있을지 확신도 못했었다
그러다가 막상 나오긴 나왔지만 진짜 이렇게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고.. 정말 세 달째가 될 때까지 이렇게 걷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 달까지는 끌고 싶지 않았다
막연한 다짐을 했을 때도 네 달이란 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래 이번 달, 10월까지는 끝내자
지도를 봤다
적당히 경로를 정했다
갈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 10월 31일
31일에는 집에 도착하자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르겠다;

 

 


해남에서부터 밑줄 긋기를 시작했다
해남에서 부산으로
이 길에
안 그래도 점점 잦아지는 사람들의 지적과 내 스스로의 회의도 커져가고 있던 도중
나로서는 너무 우울한 하루가 찾아왔다
가지고 있던 돈이 조금씩 줄어들어 슬슬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오랜만에 다시 한번 라면과 같이 먹을 밥을 얻어보기로 했다
내가 들어가 본 곳에서는 나를 반갑에 맞아주었고 내게 맨밥이 아닌, 밥과 반찬,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해줬다

ㅍㅍ : 여기서 드시고 가세요! 우와...뭐 걸어서 전국일주 하시나 봐요!

전국일주..
나는 나의 애매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ㅇㅇ : 뭐 그런 셈이에요ㅎㅎ

라고 단지 쉬운 말로 대답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ㅍㅍ : 우와.. 두 달이 넘으셨으면.. 정말 안 가본 데가 없겠군요
       그럼 전국 유명한 곳은 다 보고 오셨겠군요!

나는 가본 곳이 없었다
본 것도 없었다
유명한 곳? 알지도 못한다
내게 아주 기대하고 있는 듯한 사람들의 표정에
나는 자신이 없어졌고 밝았던 목소리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어디를 걸어왔냐는 질문에 어느 지역이라고 대답을 하면..

ㅍㅍ : 거기는 oo가 유명하죠 그걸 보고 오셨겠군요
       오... 거기가서는 xx에 다녀오셨겠군요
       아.. 거기라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걷기만 했으니....

ㅍㅍ : ?? 안 가보셨어요? 유명한 데는 보고 와야지.. 그게 전국일주지..

에이 이게 뭐야? 
점점 나의 실체를 알고 실망하는 분위기
내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어디로 숨고 싶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이 날은 정말 외로웠다
그 곳을 나왔을 때는 밖은 이미 한참 어두워져있었고
나는 기력이 다 떨어지고 의욕조차 사라져버린,
그저 힘 없고 우울하기만한 상태가 되어 근처에 있던 비닐하우스의 문을 열어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냥 누워버렸다
잠을 자려고 누운 것이 아니었다
우울하고 기운이 없어서 더 이상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나는 왜 이럴까....
왜 나는 뭘 해도 이렇게 병신같은걸까
왜 하필 나는 이런 쓸데없는 게 하고 싶었던 걸까
왜 내가 하고 싶다고 느낀 건 그렇게 쓸데없는 짓일까
후.........
외롭다
정말 낯짝이 뜨거웠다....
내가 나가고 나서 그 사람들 사이에선 내 이야기가 수근수근 오고갔겠지?
방금 그 사람 뭐야? 저게 뭐하는 짓이지? 저렇게 쓸데없이 걸어다니는 건 뭐야 그냥 시간 낭비지.....
나는 또 2달이나 넘게 여행했다길래 뭐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네
이런 말들을 하고 있겠지?
그... 무언가 참을 수 없었던 분위기
내가 정말 뭔가 큰 잘못을 한 것만 같은..
정말 처음에는 내게 큰 기대를 하는 것처럼 말을 걸어오다가
조금씩 날 알아가고 그래서 실망하고 그래서 말이 줄어들고 관심이 사라지고 결국 한 둘씩 자리를 뜨고..
내 자신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고...너무 창피하고...
아.......
우울하다......

 

 

 

그렇게 비닐하우스 안에서 힘 없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던 나는
얼마 후 잠잘 곳을 찾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고
꽤나 추운 날씨, 다음 날 비가 올거라던 일기예보, 고단한 몸과 우울한 기분
그런 것들 때문에 나는 좀 더 나은 잠자리를 갖고 싶었다
가능하면 실외에서의 노숙이 아닌 , 비와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실내에서 잠을 자기 위해
시골길이라 몇 없던 건물, 그 중에서도 홀로 불이 켜져있던 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혼자 남아 이제 막 퇴근하기 위해 마지막 업무를 끝내고 있던 아저씨 .. 그냥 아저씨라고 하겠다
여건상 잠을 재워주지는 못 했지만
무슨 일이에요 들어오세요 일단 안에서 좀 쉬면서 얘기하죠 라며 밤 늦게 찾아온 낯선 나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주었다

 

 

뜻밖의 반응
잘 곳을 찾는 다는 말에 허락도, 거절도 아닌 
내가 그런 부탁은 하지도 않았는데 일단 안으로 들어오라는 예상치 못한 제의에
속으로는 조금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내 기분
특히 내가 약하거나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좋지 않은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는 것을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최대한 그런 기색을 조금이라도 드러내 보이지 않기 위해
대게는 웃음, 헛소리 따위로 지나치게 밝게 행동하는 것이 아주 익숙하게 몸에 배여있다
이 날 역시
비록 기분은 좋지 않았었지만
잘 곳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해도 나는 밝게만 보이고자 했었다

 

 

이 날은 내 기분이 좀 심하게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저씨의 분위기 
왠지 내가 지금껏 지나쳐 왔던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진지함 친근함 따스함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이끌려가듯 나도 모르게 힘들어하는 내 속내를 아저씨에게 토해내버리고 말았다

 

ㅍㅍ : 참..... 멋진 분이군요..
       혹시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는지..       
       음....제 생각에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든..       
       일단은.. 처음 마음먹었던 것.. 하고자했던 것.. 그러니까 지금 그 분에게는 걷는 것이죠
       두 다리를 움직여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 
       지금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 심장을 다리에 맡기고.. 오직 앞만 보고 꿋꿋히 걷는 것만을..
       일단은 처음 목표로 했던 것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그런 건 나중에 가도 되는 겁니다...
       젊을 때 무언가 하고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걸 실천하는 것.. 그런 사람 많지 않습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나는 왜 이런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지..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다
다른 얘기도 해주셨는데 그 말은 무슨말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고마웠다
이 말이 아니었으면 그 무엇도 내게 힘을 주지 못했을 것 같은
그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을 것 같은
내가 왜 여기 오게 된거지
하필 이런 날에 이런 기분에 이런 사람을 만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니
나는 정말 정말 운이 너무 좋은건가
여기 와서 참 다행이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그 당시로서는 내게 완벽한 위로였고 덕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맙고 신기했다
이 순간에 꼭 내게 맞는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비록 밖에서 노숙을 하긴 했지만 우울했던 기분이 훨씬 나아진 상태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좀 괜찮아진다 싶더니..
전 날의 우울함이 너무 컸던 탓인지 여전히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때부터 나는 걸어가다 만나게 되는 사람에게 
내가 나온지 며칠째다, 어디서 왔다, 어디를 거쳐왔다
이런 대답 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혹시라도 그런 질문이 나올까봐 아예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게 됐다
그래서 왠만하면 아.. 그냥 나온지 좀 됐어요ㅎㅎ 라고만 말하고 대충 넘어가버렸다

 


계속 걸었다

 


진주에서 큰 형에게 29일에 포항에 찾아가겠다는 전화를 걸었다
걸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때까지도 나는 가족에게 걸어다니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파주에서 만나고 왔던 작은 형만 알고 있었다

 

 

 

실수?착각?
거리 계산 잘못
거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전국지도를 보고 대충 눈 짐작으로 판단해버렸다
실제로 걸어보니 부산까지의 거리가 내가 생각했던 거리가 아니였다
너무 멀었다
29일까지 포항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29일은 둘째치고
더 이상 못 갈 것 같았다
포항은 무슨
부산도 멀다....
아니 부산은 무슨......
마산도 힘들다..
못 가겠다..
조금씩 몸에 이상이 느껴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걱정됐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순 없다
가겠다
또 걸었다

 

 


일이 더 꼬여버렸다
창원에서 김해를 통해 부산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창원에서 김해로 가는 국도의 입구에 도착해서야 그 길이 자동차전용도로라는 걸 알게 됐다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아니었다
이런......
하는 수 없이 길을 바꿔 진해쪽으로 돌아서 가야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멀다고 느꼈던 부산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져 버렸다
이젠 아무리 걸어도 29일까지는 포항에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돼
이럴수가
29일에 형을 볼거야 31일에는 집에 갈거라고
갈 수 있을거야
무조건 걸었다

 

 

무리를 했다
억지로 부산에 도착했다
최악의 몸 상태
이 전까지 느끼던 고통과는 다른,
몸에 적응이 되고 뭐고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더 이상 걷다가는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릴, 부서져버릴 것 같은 느낌
고통과 함께 찾아오는 극도의 회의
불안함
안돼
너무 무리를 하는 것 같다
더 이상은 못 가겠다
힘들다
뭔데 이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3달이 지났다
3달동안 나는 뭘 한거지
다른 사람에게 3달이란 시간이 주어졌다면...
3달이면 누구는 정말 여행다운 여행을.. 아주 전국 곳곳을 실컷.. 지겹도록 구경하고 다녔겠지.. 
3달이면 누구는 열심히 일 해가지고 돈이라도 모아서 지금 쯤 돈 몇 백만원은 가지고 있을텐데..
3달이면 누구는 열심히 공부해서 도움 되는 자격증도 땄을 거고 시험 공부라도 제대로 했을 시간인데.. 
3달이면.. 차라리 놀기라도 실컷 놀았다면 정말 원없이 놀 수 있는 시간일텐데......
그런 3달을.. 나는 걷기만 했어...무식하게 걷기만 했다고....누가 알면 다 손가락질 할 걸..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리고 이제 곧 11월이고...올해가 다 지나갔다....
23살....안 그래도 내겐 감당하기 버거운 나이였는데.......그런 23살이 이렇게 휙 지나가버리고 이젠 한 살 더 먹고 24살이 된다..
군대를 제대하고... 걷기 위해 돈을 벌고..다 걷고나니까 내 23살이 이렇게 저물고 있다..
아.......막막하다....난 아직 무얼 할지 결정도 못했다....난 정말 3달동안 뭘 한거지.....
이러다가 정말 몸 까지 망가진다면...내게 남은 거라곤 아픈 몸 밖에 없게 되는 건 아닌가..... 
끔찍하다.......
이럴 수가....
나는 왜 하필 이렇게 걸어보는 게 하고 싶었던 거지....
왜 나는 이렇게 미련하고 멍청한 걸까....
한심한 새끼.....
이젠 정말 못 가겠다...이제 돈도 없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29일에는 형도 만나기로 했는데.....
형 만나고 이틀만 더 가면 집인데....
휴.....
아............
어떡하지.....
가야지...
그래도 갈래....
걸어갈래..........
29일까지 포항에 걸어가서 형을 만나야 돼
비상금
비상금을 쓰자
이거 5만원 집까지 남겨가봤자 어디에 쓸래
쓰자
먹자
지금 맛있는 거라도 안 먹으면 이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먹으면 몸도 좋아질거야
먹자 실컷 먹자
그리고 29일에 형을 만나자

히야
보고싶다
걸어서 우리 큰 형을 볼 거라고
그래
이렇게 걸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형이 전부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또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라고
내가 대구에서 바로 포항을 가지 않고 안동으로 올라가서 일부러 포항을 피해간 건 다 이유가 있었다고
큰 형이랑 나랑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서
한 때 내가 큰 형의 안 좋은 모습을 보고 큰 형을 너무 싫어했었으니까
그래서 큰 형이랑 나와의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래 좋다 한 바퀴를 돈다면 포항은 마지막으로 가겠다
나와 형의 멀어진 사이만큼을 내 발로 걸어서 형에게 가겠다
히야 내 왔다 이거 봐라 내가 히야 볼라고 일부로 돌아서 이만큼이나 걸어왔다
내가 그 동안은 히야를 너무 멀게 생각했었는데 이젠 안 그럴려고 이렇게 걸어왔다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왔으니까 이제 히야랑 내랑은 그 만큼 가까워진거다
그래 내가 진짜 그런 말은 못 하겠지 이런 걸 말로 하는 건 너무 닭살 돋잖아
형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큰 형
비록 내가 한 때 형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미친듯이 저주를 퍼부었었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형이 방에서 혼자 기타치면서 노래하고 있으면 그 소리가 내심 멋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것도 아니었지 
근데 난 그게 왠지 정말 멋있었다고
가서 기타치는 것도 보여달라고 해야지 노래 부르는 것도 들려달라해야지
보고 싶다
그리워
의젓한 우리 큰형
가자 
걸어갈거야
걸어서 형에게 가겠다
여기까지 와서 그만둘 수 없다
내 몸은 견뎌줄 것이다
먹자
비상금 꺼내서 먹는 데 다 쓰면 된다

 


부산에서 비상금 5만원을 꺼냈고 그 돈으로 음식을 사 먹으며 계속 걸어갔다
식당에서 사 먹을 시간도 없었다
가던 도중에 햄버거를 사거나 빵을 사거나 군것질 거리을 사가지고 먹으면서 걸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정해놓은 시간에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몸은 이제 아파질대로 아파졌다
쩔뚝쩔뚝도 아니고 이젠 비틀비틀 걷게 되었다
불안했지만 계속 걸어버렸다 
이젠 걸어도 걸어도 속력이 전처럼 나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오래 걸어야 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걸었다
울산에서 하루정도 머무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울산을 비껴 지나갔다


그렇게 무리하게 걸어서 29일 포항에서 형을 만나게 되었다

 

애태우며 간절히 기대하던 일도 정작 일어나면 별 만족을 얻지 못한다

흔히 그러한 기대는 실망감을 가져다 주기 마련이다

 


책 한 권을 읽어보고 머리에 남은 건 이게 끝
다른 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무슨 상황인지 아무 것도 모르겠고
읽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책을 덮는 순간 다른 내용은 모조리 잊어버렸고
와.. 정말 맞는 말 같다 라고 느낀 저런 문장만이 머리에 남았다

 

또 한번 저 말이 맞다고 느끼게 되어버렸다
혼자 머리속으로 상상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그 무엇
그리고 그 와는 어딘가 못 미치게 일어나는 현실
나는 무엇을 바랬었나
너무 큰 기대를 한 건가
헛상상을 한 건가
환상을 가졌었나

 

 

형과의 만남이
나빴던 건 아니었지만
뭔가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느낌
낯선 느낌
그래서 또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어리둥절 하기도 하고
혼란스러웠다
내색은 하지 않았다

 

 

형을 만나고
이틀을 더 걸어
10월 31일
대구에 도착했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지나친 기억이 있는 길들이 하나 둘씩 내 앞에 나오게 되었고
나는 이제 머지 않은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기분
대구다 대구 드디어 대구 이제 집에 갈 수 있다 집에 가면 엄마도 보고 푹 쉴 수 있다 노숙같은건 이제 안 해도 된다 그렇게 좋은 것 같으면서도
뭔가 허무함..허탈감...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그와 함께 그 동안 내가 걸어왔던 길이 내 뒤로 모두 무너지는..증발하는..사라지는..
알 수 없는 오묘한 기분
내가 지금까지 걸었나?
내가 집에서 나온 지 진짜 3달이나 됐다고?
내일이 11월이라니...
세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믿고 싶지도 않다..
내가 얻은 게 뭘까..
꿈을 꿨나..
멍하다...묘하다..
이상하다 ..
집에서 나와서 앞만 보고 걷다 보니까 난 다시 집으로 걸어가고 있네
당연하지 빵 사러 슈퍼 갈 때도 앞만 보고 걸어가지 그럼 뒤로 걸어가냐
그래 엉터리 논리인 건 알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이렇게 집에 들어가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 같다
기분이 이상하다
집에 가기 싫기도 하네
집에 가면 뭐하지
왜 아직도 그걸 결정하지 못한 걸까
나는 정말 안될 놈인가
집에 가면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걸어다녔다고 하면 엄마가 좋아할까
쓸데없는 짓을 왜 했냐고 혼내면 어떡하지
엄마까지 나한테 실망하면....
몰라...
집에 간다..
길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 
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게 그대로고..제자리인 것 같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고..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밤 10시 
집에 도착했다
이전에 오늘 집에 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택배기사 흉내내서 택배온 것 처럼 하고 싶었는데..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냥 나름대로 깜짝 놀래켜보고 싶었다
누나와 엄마를 만났다
반갑기도 하면서 무언가 여전한 느낌
나는 잠시, 아주 잠시 밖을 갔다온 기분
무뚝뚝 무덤덤함은 그대로
간단히 밥을 먹고.. 피곤해서 바로 잠을 잤다
이틀 간은 거의 잠만 잤다
답답했다
이제 난 무얼 해야하나
막막했다
일단은 좀 쉬자
답답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내가 한심했다
그저 멍하게

 


일주일 간 잠을 잘 땐 항상 꿈을 꾸었고 꿈 속에서 난 걷고 있었다
하루는 경기도의 어디서.. 하루는 전라도의 어디서.. 하루는 어디서.. 하루는 어디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고..
잠만 자면 그런 꿈을 꾸었다
얼마 전부터 고민했고, 집에 와서도 후기를 올려볼가말까 고민하다 결국 후기를 올려보기로 결정했다
봐 줄 사람이 있을까
무관심이면 쓰다가 그냥 다 지워버리자
그런데 후기를 쓰는 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뭘 써야할지.. 뭘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그리고 난 별로 할 얘기도 없는 것 같은데..
걷기만 했잖아
그리고 너무 까마득하다
내가 언제 그랬는지 믿기지가 않는다
3달이나 지난 일을 이제와서 꺼내려니 괜히 케케묵은 일을 쓸데없이 꺼내는 것 같고..
답답했다 
그냥 모든 게 답답


집에만 도착하면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할 것처럼 스스로 마음 먹었지만
사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정한 것이 없었다 
집에 가만히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답답해서
한 달 동안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일이라도 하면서 쉬자
일을 하면서도 내 자신이 너무 답답했다
뭐? 뭐 대단한거라도 할 것처럼 그러더니 고작 몸만 굴리는 아르비아트였나??
아니다 쉰다고 생각하자 이건 쉬는 거라고 일하면서 쉬는 거
그럼 아르바이트 끝나고는 뭐하지? 아.......모르겠다...
후기도.. 쓰기 싫다....
후기 쓰고 싶은 기분도 아닌 걸....
나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미 올리기 시작 했으니까.. 쓰긴 써야할 것 같은데.. 쓰는 것도 너무 막막하다..
지금은 걸어다닐 때 기분도 아니라고...
근데 이미 올려버렸는데.. 몇 개 올렸는데 이제 와서 다 지우는 것도 좀 그렇다..
쓰자.. 어떻게든 후기를 마무리 하자..
후기를 마무리 안하면 신경 쓰여서 다른 걸 제대로 못 할 것 같다..

 

 

후기를 써보려고 컴퓨터를 켜면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은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도 안 나고 맞춤법도 왠지 다 틀리는 것 같고
이것 저것 모든 게 복잡하고 막막해서 쓰다 말고 컴퓨터를 꺼버리고
또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켜서 조금 쓰고 다씨 끄고 다시 켜고 다시 쓰고 끄고..........
그렇게 하다보니
이제서야 끝을 내고 있다
지금도 내가 뭔 소리를 하는지 정리가 안 된다
지금 나의 모습은....
한심함 그 자체..

 

 

이제 마무리를 좀 지어보자
뭔가 머리속으로는 어떻게 써야할지 생각이 나는 것도 같은데
막상 써보려고 하면 개떡이 되는 것 같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써야겠다


걸어다니기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아닌
내가 믿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정말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꿈을 꾼 것 같다
믿기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걸어다녔다는 것
3달이 걸렸다는 것
집에 와서 또 다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고
올해가 이제 다 지나가버렸다는 것
내 23살이 다 끝나가고
오늘이 12월 27일이라는 것

믿기지 않는다
오늘은 꼭 끝을 내야지
그래야 될 것 같다

 

 

 

내가 걸어다니기를 하게 된 계기, 목적이 뭐냐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
사람들이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겠다! 초심으로 돌아가라. 초심!'
초심이라는 말을 꽤 많이 들어본 것 같다
그런데
어떤.. 그러니까 그 초심.. 그 예전의 어떤 다짐이..마음이..생각이..
시간이 지나고, 주어진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변해서
다짐 마음 생각 따위가 이 전과 달라져서
'아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야지'  라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과연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초심이라는 것이
정말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그 떄의 마음을 잊지 않고 가지고 있기나 한 건지
정말 초심이라는 게 완벽히 기억이 나서 그 때의 기분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
이미 변한 사람의 어떤 마음이
그렇게 쉽게 초심 초심 말하듯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변하는 순간
다신 완전하게는 돌아갈 수 없도록
머리에서 잊혀지는 것 같다
말처럼 초심으로 정말 돌아간다해도
그건 정말 예전 마음 먹었던 초심이 아니라
초심 비슷한 초심

 

개판이 됐네
고칠 자신이 없다
그냥 남겨둬야 겠다


왜 이걸 쓴 건지 확실하게는 표현할 수 없다

어...내가 처음 걸어보고자 했던
그 마음이
그 기분이
그때의 그 기분이 그때와 완전 똑같게는 떠오르지가 않는 것 같다

한번 떠올려보자...

나는
그냥
그냥 걷고 싶었다
그냥 우리나라를 한 바퀴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군대에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분명 나는 그게 하고 싶었고
말만 하고 실천은 하지 않을까봐 남에게 말은 하지 못했고 
전역을 한 뒤
조금씩..
조금씩..
정말 할 지 안할 지 나도 확신을 못하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준비해갔다 
집을 나가기 직전까지도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계속 걸었다

 

걸어보겠다는 것에
무전여행이라는 것이 덧씌워졌다
내 뇌에 어떻게 무전여행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게 된진 모르겠다
무전여행, 돈 없이 다니는 여행,
그런 말이 있고 그런 여행이 있고 그런 것을 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내 머리속에 들어있었고
나도 한번
나도 그걸 할 수 있을까 하고 걸어다니기에 무전여행을 추가했다


단지 얻어먹고 얻어자는 것만은 아닌
잠깐이라도 내가 신세진 것에 걸 맞게끔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기
사람들이 나를 내쫓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거절을 한다 해도
기 죽지 말고 태연하게 다른 곳을 찾고 찾아서 나를 받아줄 수 있는 곳을 찾아 하루를 해결하기


근데 무전여행이면 돈은 단 100원도, 어떤 돈이든지 10원도 손에 갖지 말아야하나?
돈을 조금이라도 쓰면 규칙 위반인가?
정말 돈을 단 한 푼도 없이 다녀야 되는건가?
집을 나선 뒤 그런 나만의 이상한 고민에 빠졌고
아무래도 그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그럼 내가 걸으면서 돈을 벌어보자
뭐 아르바이트 같이 하루 일 하고 하루 돈 버는 그런거 말고..
그렇게 돈 벌꺼면 집 나오기 전에 미리 돈 벌어온 거랑 다른 게 없잖아
없던 일을 내가 직접 만들어내자
그래서 1000원 벌기를 생각해냈다
잠깐, 뭐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가짢은 일이라도 조금이라도 돕고 1000원씩 벌어보자
내 제안을 받아줄 사람이 아예 없진 않을거야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찾고 또 찾으면 누군가는 나를 받아줄 것이다
재미있게 보이자
비굴하고 불쌍하게 말고
당당하게 가서 들이대고 들이대자


사실 그렇게 마음을 먹어도 막상 해보려니까 행동으로 잘 옮겨지지 않았다
정말 사람들이 내 부탁을 들어줄까
세상이 얼마나 삭막한데
폐만 끼치고 다니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라는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정말 나는 처음 군위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해결하고, 또 그날 마을에서 주민분이 밥을 주고 잠까지 자게 해주셨을 때
단지 난 운이 너무 좋았을뿐이도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람들은 못 만날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이렇게 밥을 주고 잠을 재워주겠나 정말 운 좋게 하루를 버티긴 했지만 오늘은, 내일은 어떡 할지 여전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난 정말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고생을 한 것도 없다 힘들거나 어려워지려고 하면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내가 단지 운이 좋았던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지역인지를 떠나서 정말 어디든지 잘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물론 잘해주는 사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고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
내가 다 원인제공을 한 거니까 내가 사실 터무니없는 행동을 한 게 맞으니까
그 사람들은 하필 그때의 기분이 정말 안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겁이 나서 그랬다면 그건 나를 겁내는 것이 아닌, 세상에 일어나는 소수의 위험한 사건사고 같은 것이 겁나서 내게 그랬을 뿐이지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은 전혀 없다 
행여나 그렇게 거절을 당하더라도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어딘가에는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좋은 사람을 찾아다니기만 하면 됐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강원도 인제를 지나 갈때의 일이다
그 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한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 입구를 들어갈 때
마을 입구 근처에 있던 집 앞에 아저씨 한 분이 서 계셨고
나는 그분께 이장님댁의 위치를 여쭈어봤다

ㅍㅍ : 이장 집은 왜?
 
나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장님 댁을 찾고 있다고 대답해드렸고


ㅍㅍ : 이장 집은 저~~~~~~~기 끝에 멀어
       그리고 이장 집 가봤자 잠 재워줄 데도 없어

 

나는 그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이 마을엔 잠을 잘 곳이 없으니 허튼 짓 말고 어서 나가라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곧 말을 이어나가시길 

ㅍㅍ : 우리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자고 가게
       괜히 쓸데없이 먼 데까지 가지말고
       가봤자 잘 데도 없어

라고 하셨다
;;
거기에 더해

ㅍㅍ : 우린 지금 읍내에 좀 다녀와야되니까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
집 안엔 사람이 없었다
뭐지?

ㅇㅇ : 저기.. 지금 저 혼자 두고 가신다는 거에요??? 혹시 불안하지 않으세요? 제 물건이라도 타고 가시는 트럭에 실어드릴까요??

ㅍㅍ : 허허.. 사람을 그렇게 못 믿어서야 어떻게 살겠나
       괜찮으니까 안에 들어가서 쉬고 있어


그렇게 아저씨 아주머니는 만난 지 5분도 안되는 내게 빈집을 맡기고 읍내로 나가버리셨다


;;;

 

 

 


정말 잘해주는 사람이 너무 많았음

 

내가 처음 말을 걸어보려고하는 순간부터 미소를 띠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내가 말을 거는 순간 내 자신도
아 이 사람은 왠지 나에게 잘해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들게끔 했다
그리고 또 
미소는 아니라도
처음 내가 거는 말에
딱..표정이.. 정말 진지하게 잘 들어주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다 잘해주셨다
나는 내 상황을 계획하고 내 표정 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만들어 낸 것이지만
그분들에겐 전혀 예상치 못하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낯선 나를 처음부터 그렇게 친절히 대해줄 수 있는지
사람에게 너무 벽을 쌓고 사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순수하게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그런 사람들을 언제 한번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근데..
그냥.....
그분들은 내게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정말 그저 지나가는 인연에 순수한 도움을 주신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다시 찾아가게 된다면 내가 그때 받은 도움에 뭔가 큰 보답을 해야할 것 같은..
근데 난 그럴 수 있는 것도 없고.. 때문에 난 마음속으로 부담스러워 할 거고..그러면 불편한 만남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또 도움 준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분 찾아가고 저분 안 찾아가면 내가 저분한테는 고마움을 못느낀건가 그래서 차별하는건가 혼자 찝찝하고..
그분들은 날 다시 만나는 게 싫을 수도 있고.. 내가 찾아오나마나 신경도 안 쓸 것 같기도 하고.. 어색하기만 할 것 같고..
ㅡㅡ;;
그래서 그냥 추억의 일부분으로만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분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후기에.. 도움을 받았던 곳의 실제 이름을 밝히는 게 
그 곳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정말 여기 어떻게 쓸 수는 없지만
모두모두 너무 고마웠다

 


좋았던 점
자유로웠던 거
더 이상 나는 방 안에서 썩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밖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걷고 있다고 난 죽은 게 아니다 살아있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있다고
간다~~~~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내 혼자만의 공간
그렇다고 폐쇄된 방구석 안이 아닌 바깥 세상
실컷 으아~~~~~~~~~소리를 지르고 마음껏 노래를 부르고 지금까지 눈치보여서 못 불러봤던 노래들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땐 정말 기분이 너무 좋고 편안하고 즐거웠다
때로는 그렇게 신나게 노래부르면서 걷고
때로는 너무 덥고 힘들어서 바닥만 보고 걷고
때로는 쪽팔릴린다고 어울리지도 않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슬픈 생각에 질질 짜면서 걷고
사소하지만 너무 소중했던 것들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
내가 앉아서 쉬어갈 수 있었던 의자들
내가 잠을 자고 갈 수 있게 나와준 정자들
따뜻한 햇살 시원한 바람
나와 함께해준 작은 물건들
마실 물 음식 건더기 하나까지도 귀중했던 시간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했던 우연들
음?ㅋㅋ 하는 나만의 작은 웃음거리들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모든 것 하나하나가 즐겁고 의미있고 소중했었다

 

아쉬웠던 점
그냥 무식하게 걸은 거? 
그건 근데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계속 회의를 하면서도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마음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편지를 3통밖에 쓰지 않은 것, 내 생일을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지 않았다
어떤 말을 써야할지..................
많이 썼어야 하는데..
누나와 형에게는 편지를 한 통도 쓰지 않은 것..
형들의 집 바로 앞까지 찾아가지 못한 것
일기를 너무 형편없이 쓴 것, 내려올 때는 이리를 아예 쓰지 않은 것
너무 쫓기듯이 보낸 것
하루 중 찬찬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두지 않았던 것
메모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것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아 아쉬운 건 너무 많다

ㅇㅇㅇㅇ
그리고 지금 내 자신
내 부끄러운 모습
한심한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지금 내 자신이 제일 아쉽네

 




엄마
도대체 엄마라는 존재는 왜 그렇게 자식을 위하는 것인가
엄마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존심도 있고 욕심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잘 되어야 엄마 체면도 살고 엄마 인생도 편해 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엄마한테는 왜 그런 모습이 하나도 안 보이는 건지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절대적인
오직 자식만을 위한....그것도 특히 나에게 더....
조금의 티도 보이지 않는.... 어떠한 자기 자신의 이득도 생각하지 않는...
죄송합니다..
나는 그저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생일 날짜에 맞춰 편지를 보냈고
무슨.... 높이 날아올라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다는... 말 뿐인 말을 써버렸습니다..
사실 난 그때 역시 꿈도 없었고....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구체적인 계획도 없었고.... 앞 날이 막막하기만 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또 다시 이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여전히 나를 감싸주려고 하는 우리엄마...
이런 사람 구실도 못하는 나에게 원망은 커녕 오로지 나를 위하기만 하려는 우리엄마.....
누나
어릴 적 내게 그토록 엄했던 누나
열심히 살았던 우리누나
집에오면 잘해주겠다고 말했었는데
신경질을 내서 울리기까지 하다니
누나가 내 신경질에 울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릴적엔 내가 찍소리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커벼려서 이제 내가 누나를 울리는 지경까지 와버린 건지
큰형 작은형
어릴 적 나의 우상들
의젓한 형들
항상 내가 도움만 받고 필요할 때만 찾고
형들에게 무관심하고 무뚝뚝한 내 자신
나약한 내 자신을 밑에서 받쳐주던 우리 형들
내가 그렇게 찾아가서조차
밝게만은 행동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찾아가서 하고싶었던 말은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지만...
어....각자의 인생을 위해.. 떨어지고 흩어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서로를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는 악의 덩어리가
어쩌다 우리 가족에게 떨어져서
어쩌면 행복하기만 했을 우리 가족의 삶을
내가 다 좀먹어버린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들께 부끄럽지 않고 떳떳한 사람이 되었을 때
나의 이 이야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비록
형편없지만
내게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을
집에 와서도 자세하게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라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 날이 늦지 않아야할텐데

 

세상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겠는
복잡한 곳
어릴 적에는 지금 이 나이가 그렇게 어른스러워보였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
방황의 연속
힘든 일도 없지만 힘들어 하기만하는 나약한 내 자신
모순되고 거짓된 나
집에 돌아와서는
정말 그렇게 걸어다닌 걸 마지막으로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게만 살고 있다
내게 새로운 세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도망다녔다
집에 돌아가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막막하기만 해서
차라리 이대로
걷고 걸어서 
갈 수 있으면 달까지라도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
그건 내가 뛰어들어야할 사회라는 곳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한번에 곤두박질치는 내 엉터리 자신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혼란스럽다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냥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그만 써야겠다
어디를 고쳐야할지
무엇을 더 써야할지
무엇을 빼야할지
더 이상은 모르겠다
이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찝찝하지만



  • ?
    구경꾼 2012.05.04 09:01

    잘 읽었습니다.. 이건 뭔가 싶어 문득 봤던건데 첨부터 보게 되네요 ㅎㅎ 중간에 많이 빼먹엇는데 ㅎㅎ

  • ?
    203.226.212.24 2012.07.17 23:26
    그냥걷기...
    괜찮은듯...!
  • ?
    203.226.212.24 2012.07.17 23:26
    그냥걷기...
    괜찮은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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